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하 Apr 01. 2020

만우절 다음 날 고백할래

"왜 사람들은 만우절을 좋아하는지 알아?"


사람들은 거짓말을 말하고 싶은 게 아냐.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고 싶은 것도 아냐. 그냥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거야. 아무 말은 거짓도 아니지만 진실도 아니야. 참는 말이지. 참는 말은 말야, 가끔은 진실이어서 참는 게 아니라, 차라리 거짓이어서 참는 거야. 너무 미워서 저주를 퍼붓고 싶을 때에도 그 말을 참는 이유는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이고, 사실은 보호하고 싶기 때문인 거야. 그 안에 진실도 거짓도 아닌 말들을 우리는 감추고 있을 뿐, 감추는 모든 것들이 진실은 아니니까.


오늘은 거짓을 말하는 날이 아니라,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날인 거야.


그래서 만우절에 고백하는 것은 비겁한 거야. 그 말은 거짓이 되는 것도,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은 그냥 아무 말이 되는 것이고, 말은 진실을 잃는 게 아니라 무게를 잃게 되는 거야. 무게 잃은 낱말은 힘을 잃은 낱말이니까. 힘을 잃은 낱말은 그것이 진실이더라도 누구도 믿지 않게 되지. 그렇게 해서라도 참아왔던 마음의 해방을 이야기하기에는, 나의 마음은 오히려 갈 곳을 잃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말야. 우리는 언제 어떻게 참답게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오늘은 만우절. 그러나 우리는 어제까지는 진실을 이야기했던 걸까.


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무 말이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거야.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어제도 아무 말로 나를 숨기고, 또 오늘은 만우절이라 거짓말로 나를 숨기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날은, 거짓말 행세를 하며 다시 또 내 마음을 숨기는 그런 날.


왜냐면 우리는 나약하니까.


함께 걷는 날에도, 나는 나의 떨리는 눈빛이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너를 보고 싶은 것인데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라고 말해. 모든 진심을 농담처럼 말해 버리고, 다시 또 웃으면서 나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했을 뿐이라고 덧붙여 버리는 거야. 다시 또 보자는 말이 어려워, 시간이 나는 날에 어쩌다 다시 한번. 그리고 또 날이 좋아서 한 번. 취하고 싶은 날이라서 한 번 더. 그렇게. 모든 만남의 이유는 그저 마음 때문이면서, 나는 구실로 내 마음을 거짓 고백해 버리는 거야.


그렇다면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함께 걷는 날에, 나의 떨리는 눈빛이 떨리는 채로 너를 바라보고, 너를 보는 김에 영화도 보자 말해보며, 하나도 재미없는 말로 나의 마음을 말해보는 것이며, 웃으며 말하지 않고 떨리는 목소리와 불안한 눈빛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는 그저 너를 보고 싶어서, 그래서 시간이 나지 않으면 시간을 내서라도 한 번, 날이 궂은 날에도 나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 한 번, 취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다시 또 한 번. 그렇게 말해 버리면 되는 걸까.


하지만 말야.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우리는 차라리 봄이 만개하는 이 4월에, 나의 마음에 내가 낯간지러워서 말야. 그러나 숨겨놓은 말들이 스스로 버거워져서는. 이 봄의 새로운 시작이 정말로 시작하는 바로 그 첫날을, 만우절로 정해버리고 말았던 거야. 그래서 나의 눈을 들쳐 올려, 너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애당초 내게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면 비겁하게. 오늘 같은 날 내 마음을 아무런 것으로나 만들어서, 될 대로 되라지-라며, 그 안에서 애처롭게도 내 진심을 네가 알아서 찾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거짓말처럼 내 말을 띄워 보내고 싶은 거야.


하지만 나는 그런 내가 애처로워서. 나의 비겁에 내가 다시 또 부끄러워져서는 말야. 오늘은 그저 늘 어제처럼. 당연한 거짓 제스처로 손 하나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서는, 눈 마주치는 것이 어려워 그저 함께 걸어가는 저 앞만을 바라보면서는, 거짓말도 진실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래.


그러고 나서 이렇게 또 하루가 가고. 나는 나의 눈빛을 고쳐 잡지도, 가까스로 용기를 내 서툴게 말해보지도 않을래.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고.


그러나 대신해서 말야. 나는 만우절 다음 날에야 말할래.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오늘, 나는 이 모든 말들을 아무 말인 것처럼. 그래서 이 말은 도무지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그런 말인 것처럼 말하고 나서. 사실은 다 뻥이야 -그렇게 말해버리고서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렇게 하루가 흘려보내고서, 더는 공식적으로는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되는 그런 날에, 여전히 장난처럼, 그러나 더 이상 장난일 수 없을 그런 날에, 진실을 거짓처럼 말해도 진실일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고백할래.


"그래서 일단은 다 뻥이야."








4월 2일. 


그리고 어제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 날에, 항상 하던 눈빛과 그런 체스쳐로. 항상 하던 그 화법으로. 그러나 이제는 모든 의미들이 뒤틀려버린 그런 날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사람이 어떻게 말해도 진심이 되는 날이 일년에는 한 번정도 있는데, 그 날은 거짓말을 해도 되는 그런 날의 다음 날이었던 것이다. 그 날은 그저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그런 날이었고, 그러나 그 날은 모든 것이 진실로 보여, 차라리 전부 거짓말인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너는 그 날 고백했다.

이전 27화 잠복기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