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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08. 2020

나는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의 너를

나는 서쪽으로 모험을 떠났다. 걷고 걸었다.


그곳에 네가 있었다. 


해가 지는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붙잡았다. 나도 모르게 네게 쉬이 죽지 말아 달라 간청했다. 나는 이곳이 처음이었고, 목이 말랐다. 나는 목이 말랐고, 어디서 물을 구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었고, 나는 외로웠다.


나는 네게, 왜 죽고 싶은지를 물었다. 너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해가 지고 있었고, 자신이 태어나서 본 것은 언제나 저 절벽 너머의 죽어가는 진실뿐이라고 말했다.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하루 하루 살아가며 그 의미를 찾지 못한 나는 마침내 오늘 저 해가 저물어가던 차에 함께 저물어 버리겠다 결심했다고- 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런 네게 나는, 해가 뜨는 곳에서 온 사람. 


너는 말했다. 


네가 걸어온 저 너머는 해가 늘 떠오르는 곳. 언제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곳. 그런 곳에서 온 너는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런 곳에서 온 너는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이 해가 지는 노을을 보면서도 다시 새로운 것이 떠오를 것을 기대할 수 있는 힘과 포부를 가진 사람이라고. 그런 너는 삶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기는커녕, 떠오른 그 삶을 힘 있게 영위해서는 짊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삶을 너무나 비관한 나머지, 그런 너를 질투조차 하지 않는다고. 그런 너라서 누군가를 붙잡아 줄 힘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그래서 그것은 고맙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늘의 태양이 지기까지의 일일뿐, 나는 내일도 다시 죽음을 꿈꾸고, 내일의 하루와 함께 사라질 것을 다시금 욕망할 것이라고.


이런 내게 너는, 해가 지는 곳에 있던 사람.


그런데 너는 알고 있니. 내가 있는 곳에서도 늘 해가 졌단다. 내가 있던 곳은 언제나 해가 뜨는 곳이었지만, 해가 뜨는 만큼 언제나 해는 졌고, 새벽이 있듯이 언제나 노을도 있었단다. 그래서 나는 해가 뜨는 곳으로 갔어. 원래 이곳으로 오려던 것이 아니었어. 오랜 모험이었지. 언제나 해가 뜨는 곳. 언제나 해를 만들 수 있는 곳. 모든 것이 태어나고, 언제나 새로운 것들이 살아 숨 쉬는 곳. 그러나 그곳에서도 말야 언제나 해는 졌어. 언제나 모든 것은 태어나서 죽어갔고, 언제나 모든 것은 가장 밝고 행복한 날과 건강한 날들을 지나서, 위축되고 늙어갔고, 바스러져서는 사라져 버렸지. 이 세상에 해가 뜨는 곳은 없어. 이 세상에는 해가 지는 곳만이 있단다. 내가 있던 그곳에서도 늘 해가 졌고,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하염없이 외로워져서는, 나 역시 죽음을 생각했고, 나 역시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정확히 태어나는 그만큼 죽어갈 운명의 개수도 늘어났고, 내가 해가 뜨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들의 속도는 더욱 빨라만 졌단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뒤돌아 걸었어. 내가 처음 출발한 그 도시를 지나, 해가 늘 지던 바로 그곳으로. 그때 점점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어. 점점 저녁이 오는 시기가 늦어지더니, 어느 날에는 한낮이 계속되기도 했어. 그때에 나는 해가 뜨는 곳의 비밀을 알아낸 것만 같았지. 해와 함께 달리는 거야. 그래서 달렸어. 태양을 따라 걸을 수 있다면 해는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리고 또 걷고 걸었어. 해가 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해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해와 함께 걷는다는 것을. 나는 달렸어. 태양보다 더 빨리 달렸어. 그때는 좋았어. 영원히 늙지 않는 방법을 알아낸 것처럼.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다시 지쳐 버렸지. 다시 낮의 길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어. 나는 내가 발견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애를 쓰다가.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가다가. 그러나 해가 기울고 기울었어. 그리고 지쳐 쓰러졌단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찾아왔어. 거기서도 해는 졌단다. 거기서도 노을은 붉게 타올랐고, 어둠은 모든 것을 삼켜 버렸어. 그리고 알게 됐어. 어디서든 해는 떴고, 어디서든 해가 졌어. 그리고 나는 어둠이 싫어서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해가 뜨는 쪽으로 나아가다가,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는 해와 함께 걸어가다가, 마침내 그 해를 놓쳐 버린 어느 날에. 뛰어내릴 용기가 없어서. 그게 두려워서. 걷고 걸어서,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다가. 그러다가. 


그 해가 지는 곳에서 너를 만난 거야.


그리고 맞아. 해가 지는 곳보다 더 해가 지는 곳. 그곳에 있던 너는 해가 지는 곳에 서 있었어. 그리고 그날도 해가 졌고,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냥 땅거미 진 지녁 그림자와 함께 깊은 어둠으로 파묻혀 버릴 것을 알았어. 그리고 그날 그곳에는 정말로 끝없는 어둠만이 영원할 것을 알았어. 내일에는 다시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는 말조차도 무색해질 것처럼.


그래서 오늘의 내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내게도 어둠이 있다는 것은 아냐. 너의 저녁과 나의 저녁이 같다고 말하고 싶은게 아냐. 나는 네가 있는 곳까지 오기 위해서 땅거미를 따라 걸어왔고, 또 앞으로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며. 그리고 네가 있는 그 저녁에 비로소 함게 맞딱뜨릴 때까지. 나는 해와 함께 걷다가, 그리고 또 해를 놓쳐 버리고, 밤을 따라 또 걷다가. 비로소 모든 빛을 다 빨아들이는 바로 그 곳앞에서. 네가 있는 바로 그 곳앞에서. 나는 멈춰설 것이고, 멈춰서기 위해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라고. 해 뜨는 곳에서 온 나는 해 지는 곳의 너를 바라보고. 너를 이해하고, 너를 지켜주고 싶다고. 이제는 뜨고 지는 해를 부정하며 정처 없는 길을 걸어가지도, 뜨고지는 해를 홀로 바라보며 외로워하지도, 지는 해를 보며 죽음을 생각하지도, 영원한 하루를 갈망하지도, 말자고. 하루씩 하루씩.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곳에서. 내일 또다시 무언가 시작될 바로 그곳에서. 나의 삶이 하루보다 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삶이 오늘 밤보다 길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다면, 문득 하루보다 더 길게 남은 내 삶이 쓸모없이 지루한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너의 삶이 오늘 밤보다 더 길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 똑같은 밤이 찾아왔고, 어둠에 가려 나는 네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어서, 나는 네 실루엣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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