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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ul 04. 2020

<광주비디오 : 사라진 4시간> : 왜 아직도 광주인가


들어가며


7월 1일. 시사회 초청으로 용산 CGV에서 관람. 이 영화는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시피,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이다. 사실 나는 이 다큐를 관람하기 전에는 어떤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물음이다 : “왜 아직도 광주인가?” 어쩌면 이것은 나의 역사 지식과 관련된 ‘상식’ 때문이다. 80년도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배우고 자란 세대이며, 그에 관련된 다른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그때를 기록한 영상물들을 이미 수도 없이 보아왔다. 더불어 영화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와 같은 영화로도 간접적으로 접했다. 우리 부모님은 학생운동을 하던 세대이며, 나는 그들과 같은 생생한 체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때 일어났던 그 일에 대해서 나는 나의 부모 세대와 유사한 태도로 그 사건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단순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적 태도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되새길 뿐이라면, 이 다큐멘터리의 특수성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공영방송이나 종합편성 채널로 방영되는 것이 아니라, 극장가에서 제 돈을 받고 개봉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 다큐만이 독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광주”가 아니라, 광주 “비디오”다. 그 “비디오”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 다큐멘터리는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5.18에 관련된 이야기와는 다른 구석이 분명히 있다.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그 역사적 사실을 당시 정권의 언론 통제와 발언의 자유 탄압에도 불구하고, 그 광주의 진실들이 어떻게 퍼져날 수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국민들을 향해서 발포 명령까지 떨어졌던 그 위기와 탄압의 시대에서 어떻게 우리는 광주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었던 것인가? 이 다큐멘터리는 그 하나의 일환으로서 ‘비디오’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광주의 진실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직접 유통하며 전파하던 과정이다. 그 과정들을 다룬 것은 신선하다 할 만하다. 각종 비하인드와 그때 그 시절 활동하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이러한 점이 궁금하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직접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7월 25일 개봉 예정이다. 이하로는 비판적인 분석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를 직접 관람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관람 후에 읽기를 권한다. 



자연스럽게 알려졌지만, 당연하지 않게 전해진 것들



영화 <1987>은 6월 항쟁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광주’에서 벌어진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학생회에서는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비디오로 틀어주면서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리고 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그러한 ‘상영회(?)’를 영화를 통해서 접한 우리는 그러한 학생회의 전파 활동이 있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전해진 당시의 생생한 영상들에 기반한 2차 창작 영화들을 우리는 자연스럽게 보고 관람했다.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이다. 하지만 도대체 그 학생회에서 몰래몰래 틀어주던 그 비디오는 어떻게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인가?


이 다큐멘터리는 그 과정들을 추적하고 있다. 우선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은 ‘외신 기자들’의 활약에 대한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 독일 기자가 택시를 타고 광주로 들어가게 되는 과정과 계기가 서사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언론 탄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광주의 일화가 “기록”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당시에는 광주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오로지 왜곡보도를 통해서 폭도들이 폭력투쟁을 일으켰다고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통제를 통한 왜곡 보도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었을 뿐, 외국에서의 사정은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낌새들은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은, 국내의 탄압이 미치지 않는 나라들에서는 알아채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일이지만, 각자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취재를 감행한다.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그 기자들이 처할 수 있었던 위험성, 가령 그들을 향한 계엄군의 격발과 같은 일화들에 대한 그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광주의 이야기는 외신기자들에 의해서 “기록”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된다고 한들,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기록물을 보고 들을 수 없었다. 당시 해외에서는 우리나라의 사정에 대해서 뉴스 기사로 분명히 다루고 있었으나, 그것이 우리나라로 유입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때에는 되려 재외교포들에 의해서 알려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해외에서 보도되는 뉴스를 통해서 조국의 사정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소문하여 영상물을 얻어내고 국내에 반입하기에 이른다. 그러한 다각적 노력을 통해서 비디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다. 밤을 새워가며 비디오를 복사하고, 그것을 몰래몰래 전국으로 전파한다. 그 비디오는 학생회의 손에 들어가기도 하고, 성당에서 주기적으로 상영회를 하게 된다.


지금에야 유튜브를 통해서 누구라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때에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비디오를 손수 복사하고, 그 비디오에 테이프를 붙인 뒤 이름을 적는다. 그리고 그것을 유통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걸리는 순간 잡혀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항거하고 운동하며, 피를 흘리던 이들의 이야기만큼 그러한 상황을 알리려는 움직임도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그때의 그 영상물이 매우 중요했던 이유는 다만, ‘진실의 전파’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왜 아직도 광주인가?”에 대한 물음은, 실제로 그 비디오에 들어 있던 참혹한 현장의 그 “참혹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알려진다. 그 비디오를 처음 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말한다. “이 비디오를 보고서 내가 모르던 끔찍하고 아픈 세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는 것이다. 힘들게 비디오를 복사하고 전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내용이 그만큼 충격적이며, 누구라도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역사적 사실을, 다시 제 눈을 통해서 보게 되니 마음속에서 무언가 뭉클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매를 맞아 쓰러진다. 얼굴은 짓이겨지고, 잔혹하게 살해된다.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용기 있게 저항하러 거리로 나선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였으며, 또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으나 그 현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살아 숨 쉬던, 그리고 그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던 순간의 기록들을 그저 머리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할 때, 그 사건은 결코 잊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들 : 사라진 4시간(?)



이 영화의 두 부분으로 나눠서 요약될 수 있다. 위에서 살폈던 비디오가 기록되고 전해질 수 있었던 과정은 전반부와 중반부에 걸쳐 다루어진다. 한편, 후반 30분 남짓에는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은 21일의 네시간에 대해서 다룬다. 1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민주화 운동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민간인을 상대로 한 ‘집단 발포’상황일 것이다. 단순히 시민들을 때려잡는 것도 끔찍한 것이나, 그날 21일 광주에서는 집단 발포로 시민들이 ‘총에 맞아서 죽는’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에서 지적하는 하나의 사실은, 바로 그 집단 발포를 담은 영상물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러 영상물과 사진을 남긴 외신 기자들, 그리고 국내 기자들이 어째서 그 상황을 담을 수 없었는지를 추적한다. 당시의 상황은 너무나 위험해서 담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큰일이 벌어질 것이 예고되며 외신 기자들은 현장에 더는 남아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영상물을 담아서 알리는 것에 ‘우호적이었던’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찍을 수 없었다. 한편, 그뿐만 아니라, 광주에 있었던 일을 영상에 담은 것은 기자들뿐은 아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대 측에서 찍어 남긴 것들이다. 집단 발포가 일어나기 직전, 시민 측이 아닌, 군인들의 위치에서 찍은 영상물은 분명히 남아 있는데, 발포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 영상은 끊어져 있고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군 측의 입장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이후의 영상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폐되어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 집단 발포의 순간이 삭제되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의심이 가지는 ‘의미’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적어도 내 상식선에 있어서는 그 집단 발포의 네 시간이 결코 ‘사라진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집단 발포가 있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 분명하고, 그 당시의 사망한 사람들과, 그에 대한 증언들도 너무나 많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 영상이 군부의 측에서나 당시 권력자에 의해서 삭제되거나 은폐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영상일 뿐이며, 집단 발포의 현장을 의심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과격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없고,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있어 미지의 사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에서 확실히 밝혀야 하는 것은 그 사라진 네 시간의 영상이 실제로 무엇을 상실하도록 했는지, 그리고 그 네 시간의 영상을 찾아낸다면 어떤 것들이 실질적으로 해결되는지다. 그것을 밝히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그 집단 발포의 현장이 영상에 담기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게 되는가? 이것을 밝히려면, 실제로 법적인 차원에서 ‘집단 발포’에 대한 물증의 부재로 인해서 당시 사건이 실질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는지 어떤지를 보여주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집단 발포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당시 영상의 부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다큐멘터리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한 보강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비디오의 유통 과정’을 중점으로 다루다 후반에 급작스레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통해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다.


더불어 이 부분을 후반부에 다룸으로써 전반부의 내용과 충돌이 되는 문제점들이 있다. 전반부에는 국내외 기자들과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의 비디오 유통과정이 드러나는 하나의 ‘승리와 노력’의 기억들을 다뤘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광주에서 벌어진 진상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갑작스럽게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당연히 광주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이 부분을 갑작스레 강조하게 되니 전반부의 노력의 의미가 퇴색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물론 밝혀지지 않은 음영진 부분들을 전반부의 모토를 강조하느라 약소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 그 ‘사라진 네 시간’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사라지게 했고, 그것이 왜 ‘영상으로서’ 남겨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이 담기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영상으로 남겨지지 않은 것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영상으로 남겨지지 않은 것이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여전히 기억되어야 할 것과, 그가 기억되도록 한 것들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에 지나지 않는 방식으로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때의 참혹성에 대한 경악의 심정들을 유실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 참혹한 현장들을 목숨 걸고 취재해낸 사람들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것을 접한 우리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할 때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은 단순히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존중과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안에서 항거한 이들이 있어서 이제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은 기억됨으로써 반복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기억되도록 만든 사람들의 노력들도 이 다큐멘터리는 담고 있다.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기억들. 그것은 현장에서 항거하고 쓰러져갔든 이들의 노력과는 또 다른 의미로서 매우 중요한 노력의 흔적들이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역사적 이해는 단순한 개인적 이해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시민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가지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한 삶이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써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 여기 이 정치적 사안에도 옳다는 보장은 없으며, 그때의 기준들로 지금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세대를 사이에 두고서 지난 세대들과 정치적 대척점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뿌리로서 살아간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으며 그들의 그때 그 태도를 본 받는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아주 중요한 것들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발언하게 한다. 그를 이해하며 나만의 식견을 가지고서 살아갈 때, 그 사회는 여전히 복작거릴지언정, 건강한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생각하고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나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그에 살다간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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