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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Aug 05. 2020

영화 [남매의 여름밤] : 여름밤공기 같던 불안과 추억



7월 30일 시사회 초청으로 <남매의 여름밤>을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좋게 관람했다. 독립영화 특유의 느낌을 드러내고 있다. 투박한 카메라 앵클과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서사다. 이런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나는 그 느낌들이 모두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름밤의 그 공기 같은 영화다.

두 남매가 여름 방학에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소소한 가족의 행복이 기분 좋게 배어 들어가 있고, 동시에 아직 철 없이 해맑은 남동생 동주와, 막 사춘기에 접어든 옥주의 ‘현실 남매스러움’이 잘 드러난다. 배우들의 연기가 귀엽고, 진실되다. 그 안에서 단순히 아름다운 가족 영화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행복한 가운데에서 서서히 해체되어가는 마지막 가족의 추억들을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쓸쓸하게 묘사한다.

조용히 행복했고, 또 조용히 아픈 그런 영화. 춥지 않아 짧은 옷을 걸치고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닐 수 있었던 그런 여름밤. 그러나 습한 공기가 무겁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그런 여름밤이다. 그 안에서 쓰레빠 찍찍 끌고서는 맥주 한 캔이라도 깔 수 있을 그런 여름밤에. 그러나 그 한철 뜨거운 열기가 최고조가 된 순간 다시 가을을 향해 접어들고, 유년 시절과 사춘기 시절은 그 계절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런 추억과 불안이 함께 스며 있다. 그런 감수성에 고무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꼭 관람을 권하고 싶다. 8 20 개봉 예정, <남매의 여름밤>이다. 이하로는 스포일러가 있다. 주의를 요한다.

여름밤의 존재론


우리 살았던 날의 그리웠던 날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리워졌는가? 그날은 정말로 맑고 투명하게 빛나기만 했던 그런 날일까?

그리운 여름밤. 추억은 종종 여름밤 같고, 고독한 세상 살이는 겨울낮 같다. 겨울에는 껴 입지 않으면 죽는다. 추위는 생명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껴 입으려거든 거추장 스럽지만, 살기 위해서는 껴입어야만 한다. 그만큼 우리는 여름이 그립다. 쓰레빠만 찍찍 끌고 나가서는 맥주 한 캔을 사서 어디에서든 마실 수 있을 그런 여름 날. 그러나, 막상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우리는 실제 그 순간의 공기를 마주하게 된다.

습하고 더운 공기. 그 공기는 버거운 공기다. 그날은 우리가 쓰레빠 하나만을 찍찍 끌고 마실 나갈 수 있을 그런 날이지만, 동시에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그래서 또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습해서 무거워진 공기는 우리를 답답하게 만든다. 모기는 언제라도 우리를 물어뜯으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런 여름밤은 우리를 결코 죽이지는 않지만 때때로 성가시다.

그러면서도 더위의 절정을 찍는 그 여름방학 어느 날엔가는, 우리의 한 해는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었고, 이제 다시 또 긴팔 옷을 입어야만 하는 새로운 계절을 예감하게 한다. 모든 것은 달라질 것이고, 모깃소리와 매미 소리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다시 살아가야 할 준비를, 찬 공기에 마주해야 할 준비를 미리 해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안이 씻어질 무렵에, 우리는 언젠가 다시 그 뜨거웠던 계절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손과 손 사이에 차는 땀에도 불구하고, 내가 맞잡던 그 손의 느낌을 되찾고 싶다. 습한 날의 불쾌함은 잊어지고, 다시 가벼운 복장으로 마실을 나가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길을 되걸어 보고 싶다. 그러나 그날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금 그리워진다.

여름밤의 추억과 불안


누나 옥주와 남동생 동주의 여름 살이.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한다. 그 여름방학의 날들은 그야말로 여름밤 같다. 이혼한 편부 가정에 사는 이들은 여름방학을 맞아 친할아버지 댁으로 온다. 아버지는 신발을 팔아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여전히 그 사업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낮 시간이라도 그들을 돌보아줄 사람이 필요해 할아버지 댁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낮에 아버지는 신발을 팔러 나가고, 동주와 옥주에게는 한낮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그렇게 그 둘은 여기저기를 쏘다닌다. 동주는 공을 주워 밖으로 나가고, 옥주는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나간다. 그렇게 놓여 있던 그 자유 시간은 그들에게 여름의 추억을 쌓을 하나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불안하게 놓여 있는 공허한 시간이기도 하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해야만 하며, 아버지의 사업에 그 가정의 향방이 결정된다. 그래서 불안하다. 다시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여름은 가장 뜨거운 최고조의 시기이자, 미결정적인 미지의 계절을 기다리는 불안함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 우리의 여름은 겨울처럼 우리를 쉬이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만큼 노인들에게는 겨울만큼이나 어려운 계절이기도 하다. 더위에 의해서 할아버지의 건강은 많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건강 때문에야 고모도 함께 만나게 되고, 가족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그 여름밤을 나게 된다.

동주에게는 자기를 귀여워하는 고모와, 무뚝뚝하지만 웃어주고 보듬어주는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싫지 않다. 그는 아직 어려서 모든 것이 호기심 투성이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아직은 잘 모른다. 그만큼 옥주에게는 천연덕스럽게 쏘다니면서, 순진무구한 동생보다 그 시절이 더 많이 불안하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걱정스럽고, 이혼한 어머니는 우리를 버린 것만 같아서 원망스럽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믿은 어머니를 계속해서 만나러 가고자 하는 동생 옥주도 괘씸하다. 이혼할 준비를 하고 있는 고모의 사연도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연애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있다.

그 안에서 예민한 사춘기 시절의 옥주는 외모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에게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거절하자, 그녀는 돈이 필요해서 그만, 아버지의 신발을 훔친다. 중고거래를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 신발은 짝퉁이었고, 경찰서에 불려간다. 아버지는 옥주에게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할아버지가 노쇠하자,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려고 한다. 옥주는 그것이 달갑지 않다. 게다가 그렇게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을 앞두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집도 팔아서 고모와 나누려고 한다. 옥주는 그런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는 것이라고 나무란다. 하지만 그에 아버지는 옥주가 자신의 신발을 몰래 가져다 팔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그제야 윽박지른다.

아버지도, 옥주도 원망과 죄의식이 뒤섞여 있다. 제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면서도, 제 자식이 나중에 내게 그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착잡하다. 다 먹고 살기 위해서, 너희들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선택이라 믿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이 원망스럽고, 동시에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죄책감이 스스로를 자극한다. 옥주 역시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집을 몰래 팔려고 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자기 역시도 필요한 것을 위해서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 가책을 느끼게 한다. 지긋지긋한 가족의 굴레.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 나를 떠난 어머니에 대한 원망. 미안함. 그리움.

사춘기로 접어든다. 자신을 떠난 어머니, 이혼을 말하는 고모. 그 안에서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을 부인할 수 없는 마음. 그 안에서 마음은 불안하게 떨려온다. 엄마를 원망하지만 사실은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런 옥주이기에 할아버지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친가에 모여서 그나마의 가족들이 함께 식사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밤은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을 전제로 하여, 아슬아슬하게 한 가족이 모여서 오손도손한 날을 보낼 수 있을 마지막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 여름의 꿈, 한 여름의 끝

아버지와 다투고 난 뒤 옥주는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가 쓰려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뒤이어 옥주와 동주가 자고 일어났을 때, 불길하게 울리던 전화기. 그리고 할아버지의 부고. 옥주와 동주는 옷을 갖춰 입고 병원으로 나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옥주와 동주. 그들은 한 여름 할아버지 댁에 모여서 함께 밥을 먹었다. 함께 빨래를 하고, 할아버지의 생신 축하 파티를 했다.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소중한 추억들이지만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그런 추억이다. 그것이 언젠가 흩어져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애증의 감정과, 또다시 마주하게 될 새로운 이별의 예감이다. 한번 만나자고 말하던 엄마의 연락을 그렇게도 무시하던 그녀는, 내심 엄마가 장례식장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잠든 사이, 옥주의 꿈. 엄마와 아빠와 고모와 동주가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는 그런 꿈. 동주는 천연덕스럽게 재롱을 부리며 춤을 췄다. 그렇게 그리던 풍경들이 그녀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리웠다. 그리고 또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런 행복하고 즐거웠던 날의 추억. 어른으로 접어드는 하나의 과정. 아무것도 모르던 동생과는 달리, 많은 것들을 한 번에 신경 써야만 했던 사춘기의 날들. 그러나 모든 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무력했던 그런 시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날의 온도. 그러나 조금만 걸어도 지치고 습한 무거운 공기를 들이 마시며 나아가야만 했던 그런 순간이다. 그 순간들은 하나같이 어려웠고 버거웠으며, 그러나 찬란하게 빛나며, 즐거웠던 그런 한때의 여름밤이었다.

그렇게 옥주는 이별을 알았고, 죽음을 배웠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이별을 알기까지 사랑을 아는 과정이며, 죽음을 알기까지 생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다시 또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최고조의 여름밤은 꺾일 것이고, 지난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그때 그 여름밤을 그리워할 것이고, 보고 싶은 것에 대한 꿈을 꾸면서, 또 한동안을 잠꼬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언가를 바랐다. 그래서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워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 여름밤의 추억을 가진 이들의 삶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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