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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26. 2019

여름바다와 복숭아

저기 이거 먹을래?


그 말에 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짓으로 둘러대 버린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신경쓸 겨를이 없으며, 누군가를 신경쓴다고 한들, 나의 고귀함을 위해서 그 관심이라는 것을 내가 쉬이 누군가에게 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중했던 사람과 이별을 한지 벌써 일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그런 중요한 날에 저런 말도 안되는 싸구려 멘트로 작업해오는 것에 내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가장 특별해야 할 날에 흔하게볼 수 있는 옷을 입고 어디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사람.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


이거 복숭아 아닌데?


순간 나는 자존심이 팍 상한다. -- 잘 들어 복숭아 알레르기는 복숭아 끝에 나 있는 털에 있는 성분에 과민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야. 그래 말 잘했어. 여기에는 털도 없지? 그리고 크기도 작지? 그래 이건 천도복숭아야. 하지만 진짜 과민한 사람은 천도복숭아에도 예민할 수 있는거야 - 이렇게 쏘아 붙여 버린다. 기껏 서울에서 기차타고 내려와, 여기 해운대까지 왔는데 저런 것들이 나를 귀찮게 한다. 내가 지금 복숭아와 천도 복숭아 차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결코 지방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페이스북 메인에도 "학벌주의에 찬성하지 않기에 학교 이름을 명시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어 두었다. 그러나 역시 아직 수 많은 기업들이 출신 학교를 보지 않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차별이 아니다. 오히려 차별하는 사람들이 생각까지도 이해하는 것이다. 역시 나는 차별주의조차도 차별하지 않는 그런 사람인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아하하 너 엄청 웃기는 애구나? -- 라고 저 여자가 말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한가지 간과한게 있는 거 같다. 저 여자는 이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군. 고로 여기 부산 사람은 아니겠군. 그렇지만 내가 심각하게 하는 말에 웃는 것을 보니 매우 천박한 여자가 분명해. 그래서 나는 말한다 -- 너는 알레르기가 웃겨? 복숭아 한번 먹으면 목이 퉁퉁 붓고 숨도 못쉬다가 나중에는 죽을 수도 있는거야. 네가 웃는 건 말이야 지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차별하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물론 나는 알레르기 같은거 한번도 겪어 본 적 없지만, 이미 나무위키에서 예전에 다 찾아 봤다고. 그리고 내가 비록 내 상태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런 상식은 알아 두는 게 좋다는 말이지. 이 말 하나로 인해서 사람을 어떻게 살리고 죽이게 될지 저 사람은 과연 알기나 할까?


그런데 말이야, 나를 진짜 그냥 좀 내버려둘래? 나는 지금 심각하다고. 내가 소중했던 사람이랑 헤어진지 오늘 딱 일년이나 되었고 말야,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해서 머릿속으로 시라도 한편 써야 겠는데 말이지, 지금 내 머릿속에는 이름 모를 너로 온통 가득해서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없어. 멍청한 복숭아는 저기로 좀 치우기를 바래. 복숭아 아니라는 말 하지마. 내 생명이 걸린 일에 천도복숭아든 복숭아든 그것이 중요한줄 아니. 나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예민한 사람이거든. 그래 나는 타인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고, 그래서 나는 소개팅 장소에만 가도 그 사람과 결코 1분을 넘겨서까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 그리고 나와 헤어졌던 그녀는 나를 1분을 넘어서까지 붙잡아 두는 데 성공헀고, 그래서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어.  잘 들어- 나는 지금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어. 그녀와 나는 그 자리에서 한시간 정도 이야기했고 나는 아주 완전히 사랑.. -- 뭐? 마시라고? 내가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거 안보여? -- 잘들어.. 사랑은.. -- 내가 지금 이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말이야, 네가 오늘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매우 지성이 요구되는 그런 얘기를 하느라 목이 마르기 때문이야. 주량? 나는 그런 거에 끄덕 없어. 아무튼 잘 들어 보라고 -- 그녀와 나는 그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헀고 나는 아주 완전히 사랑에 빠져 버렸지. 비록 그녀는 장염에 걸려서 당분간 입원해야 하기 때문에 저녁까지 먹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떠나갔고, 마침내 내게서 한시간이나 시간을 빼앗았다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나머지 더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 


그래, 아직 초여름인데 말야,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고? 그래 바람이 아직 결코 춥게 느껴져서 그런게 아냐. 나는 내 이야기를 네게 아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좋은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거든. 자, 들어봐, 고기는 네가 먹고 싶은 걸로 알아서 시켜. 너는 내가 얼마전에 기꺼이 위선주의를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채식을 그만두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거야. 사실 사랑이라는 건 말이야, 주변에 있는 사람부터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결국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인권이라는 가치로 되돌아 오게 되었지. 그런데 인권이라는게 또 엄청나게 어려운거야. 그 인권이라는게 정말로 있는 거 같니? 내가 손이 있고 발이 있지만 그 인권이라는게 어디 있느냐는 말이야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거야. 마치 사랑과 같은 거지. --뭐? 내가 재밌다고?-- 지금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웃음이 나와? 잘들어 나는 지금 아주 진지해. 내가 진지할 때에는 내 친구들도 나를 말리지 못하지. 술취한거 아니야. 지난번에도 말이야, 술이 누가 몸에 안좋다고 해서 나는 그것을 다 마셔서 없애버릴 요량으로 먹다가 병이 난 적도 분명히 있었어. 내가 조금이라도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말야 나름대로 이런 부끄러운 기억 같은 건 그 누구한테도 이야기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그날 알았어 내가 평범한 주량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또 일년을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내가 사랑이라는 것을 마침내 믿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한사람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도 특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고 믿는 그 인권이라는 것을 더 오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좌절했지. 그리고 또 그 좌절은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 바다까지 와서 누군가를 그린다는 건 말야, 그만큼 양심으로도 막지 못한 내 사랑이 아주 특별하다는 거야. 너는 그래본적 있니?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 오래 해본적 있냐는 말이야. 매일 매일 말라 죽어 가는 것 같아도 누군가를 생각하느라 차마 죽지 못하고, 그러나 그만큼 또 죽어가고 있는 기분이 뭔질 아느냐는 말이야. 좀 먹고 말하라고? 벌써 네가 다 먹은 거 같은데 뭘 또 먹어.-- 자 들어봐 이제 이야기는 시작 됐어. -- 네? 이제 영업시간이 곧 끝나간다고요? 죄송한데 지금 몇시인가요 12시요? 아 아직 초저녁인데 왜이러세요 저 안취했어요 사장님-- 야 놔봐, 우리 지금 엄청 중요한 얘기 하는거 너도 알잖아. 응 그래 우리가 벌써 이야기를 다섯시간이나 했다고? 거짓말 하지마, 나는 누구랑 이렇게 오랬동안 이야기 해 본적 없어. 그래. 아 잠시만 -- 나 조금 취한거 같기도 하고. 응 걱정하지마 이정도는 통제할 수 있지. 술은 말이야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고 말야, 지성으로 육체를 통제하는 것은 지성인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할 그런 일이지. 응 그래 거기좀 앉자. 응. 바쁘면 돌아가봐. 잘들어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은 그런 파렴치한도 아니고, 오히려 지금 나는 아주 혼자 있고 싶단 말이지. 지금 이런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너라고. 그러니까 밤도 늦었고 가야 한다면 지금 가. 나는 원래 혼자가 더 익숙하단 말이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많아. 먼저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말하는 것이 힘들다면 혼자서 생각을 하면 돼. 그래 그래 일단 앉을게. 안그래도 나는 바다를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니까 말야.


나는 말이야 산보다 늘 바다가 좋았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늘 산으로 가자고 하셨지.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오르는 것보다, 넓게 펼쳐진 것을 바라보는게 좋았어. 하지만 바라보는 것 보다 올라야 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말이 많아진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말하다 보니 욕심이 나고, 오히려 내가 말할 수록 사람들은 나를 멀리하고 떠나갔지. 그래도 거짓말은 아냐. 내가 잊지 못하는 사람과 내가 한시간 대화 했던 것이 네가 보기에는 우스울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말야, 그래도 꽤 특별한 시간이었어. 그리고 또 그녀는 사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겠지. 내가 별로여서는 결코 아니었을거야. 그렇지? 그래도, 그 사람과 그렇게 오래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응 그래, 네가 지금 신기록 세운거 같다고? 그래 그렇구나. 나에게 있어도 참 특별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자는거 아냐. 잠깐 눈만 붙이는 거야. 내일 또 얘기하자. 이렇게 오래 이야기해본 게 처음이라 나는 너무 많이 지쳐버렸어. 괜찮아. 이제 여름이고, 바닷물도 내 계산에 의하면 결코 여기까지 오지 않을거야. 내가 원래부터 바다를 좋아하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을 조용히 즐기는 사람으로 자랐다면, 처음부터 네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를 텐데. 가? 정말 가? 그래 나는 지금 눈을 감고 있어, 바다 바람을 느끼는 데에는 이렇게 있는게 제격이지. 나는 이제 내 옆에 아무도 없어도 몰라. 자는거 아니야. 이렇게 좀 있다가 내일 또 이야기하자.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계단과 내 볼이 밀착 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이에는 얇게 깔린 모래 알이 내 볼을 파고 들어 있었다.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고 볼에 붙은 모래를 털어냈다. 내 눈 앞에 바다는 펼쳐져 있었고, 저 먼 곳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내 옆에는 검정색 비닐봉지에 담긴 천도 복숭아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  





<이거 자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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