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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01. 2021

핑계

혹은 변명

  정형외과에서 모든 바닥 생활을 금지하라고 했다. 바닥에 상 펴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게 좋은 나인데, 이렇게 데스크 위에 앉고 보니 영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깨어있는 것도 너무나 오랜만이라 이것도 어색하다. 이래저래 어색해서, 에라이 글이나 써야겠다, 하고 노트북을 켰다.



  그러니까 이게 다, 소설 때문이다. 11월 들어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두 권을 읽었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과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였다. 주변에서 하도 말들이 많아 '그래, 나도 읽어나 보자'하며 펼쳤다. 그리고 약 일주일쯤 나름의 깊은 시름에 빠졌다.


  


  글은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지, 글은 이렇게 쓰는 거지, 글이라는 게 결국은 이렇게 태어나기 위해 쓰여야 하는 거지, 이런 게 글이지. 읽다가 도저히 안 읽혀 도대체 몇 번을 접었다 한숨을 쉬고 또 펴서 읽고 또 멈추고 또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었는지 모른다. 그저 순수하게 '독서(讀書)'만 한다면야 즐기면 되지만, 쓰는 마음으로 읽는 독서는 즐길 수가 없었다. 그 문장들을 태어나게 하고 적절한 위치에 놓으면서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글의 명도를 더 밝혀주는, 그 행위를 하는 작가의 손놀림과 눈빛을 생각하며 읽다 보니 이것은 차라리, 꽤나 적절한 고문이었다.

  게다가 매가아진의 필요로 한국근현대단편소설을 읽어야 했다. (소나기 너 이 녀석) 문체를 공부해야 했고, 구성을 배워야 했다. 그러면서 한숨은 더욱 늘어만 갔다. 나는 도대체 고딩 때 무얼 한 거지. '동백꽃'을 분명 교과서에서 전문을 배웠는데, 어느 부분 밑줄 치고 어느 부분에서 '작중화자의 심정'이라고 썼는지도 다 기억나는데, 왜 그리도 지겹게만 느낀 겐지, 이렇게나 재미있는 소설을.

  스무 편 정도를 읽었는데, 이번에 만난 작품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이광수의 '무명(無明)'이었다. 작가 개인의 사정은 차치하고, 작품에 드러난 대화체와 묘사는 탈지구급이었다. 와-와-하며 읽다가 어느새 끝이 났다. 다른 작가들 글은 '쓰는 마음'을 헤아리며 읽었는데, 그 작품은 그저 감탄만 했다. 도저히 나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한껏 글로 고문당하며 내 자존감이 쪼그라드는 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듣는 며칠을 보냈다.

  그래서 며칠간을 브런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싸지른 글들에서 시궁창 냄새가 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도대체가 이딴 걸 글이라고 배설해 내는 자가 누구인지,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열심히 양질의 글을 발행해 내는 이웃 작가님들의 부지런함과 재능이 부러워서, 심통이 나서 배가 아파오는 것만 같아 더 볼 수가 없었다. 어디 가서 절대, 취미가 글쓰기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자고 다짐을 연속으로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괜히 짜증이 나서 유튜브로 에스이에스와 핑클과 베이비복스 90년대 무대 모음이나 한참을 봤다. 덕질의 또 하나의 주인공 SES는 여전했고, 핑클은 이렇게나 사랑스러웠는데 왜 그렇게나 미워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베이비복스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련되었다. 시간을 그렇게 죽이느라 애를 썼다. 다행히 시간은 잘 갔다. 그러다가 글이 쓰고 싶어지면 괜히 인스타나 뒤적였다. 나는 글 쓰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쉬지 않고 딴짓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 발견한 글귀에 마음이 또다시 침착(沈着)될 수밖에 없었다.



정여민 학생, 조금만 옮겼어요, 혹시 문제 되면 꼭 연락 줘요, 꼭. 이모가 밥 좀 사고 싶어서.

  전국 초등학생 수필대회에서 대상 받은 작품이라고 했다. 전문을 단박에 읽고 나는 머리를 한 번 감싸고 깊은 한숨을 쉬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 하늘 끝에서 숨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나는 원래, 문장을 수집하지 않는다. 은유 작가처럼 부지런하지도 않고 그만큼 열정적이지도 못하다. 그저 좋고 아름다운 문장이 있으면, 조금 시샘하고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것으로 치부하고 넘겨 버린다. 저 문장은 저 사람의 몫이야, 쳇, 하는 심정으로 심장박동에 맞춰 뭉개버리는 것이다. 이래서 발전이 없다.

  그러나 이 수필의 첫 문단은 하도 많이 읽어 거의 외우다시피 하였다. 6학년, 12살 주제 감히 이렇게나 투명하고 영롱한 문장을 써내다니. 이 아이는 10년이나 15년 후 한국 문단을 뒤흔들 아이가 될 확률이 매우 높은 아이이다. 이 아이는 벌써부터 이렇게 나 따위는 감히 근접도 못할 글을 써내는데, 30대 후반에 글 좀 써볼까 하며 끄적이는 내가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썽사나워 더더욱 브런치를 멀리하였다. 에라이, 무슨 글을 써보겠다고 폼 잡다가 지금 이 꼴이 뭐냐, 우습다, 우스워,라고 내가 나를 깔아뭉개는 날들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11월 때문이다. 11월은 늘, 항상, 언제나 애매한 달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10월은 완벽한 가을이지만, 11월은 가을의 끝이긴 해도 완벽한 끝도 아니고 낙엽색들도 영 어정쩡하고 어느 각도에서 보면 조금 지저분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겨울도 깔끔하게 '시이~작!'되는 것도 아니다. 가을은 꽤나 추잡스럽게 막을 내리고 겨울은 쓸데없이 조용히 침입한다. 겨울이겠지, 싶을 때 새벽에 흰 눈을 발사시킨다. 이 모든 일이 11월에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11월은 그 자체로 애매하다. 그 애매함을 그나마 이기게 해주는 건, 바로 '아빠'이다.

나에게 11월은 아빠의 달이다. 어느 깨달은 스님이 아빠에게 전생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빠는 전생에 11월에 죽었다고 한다. (진짜 엄청 매우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저작권자인 아빠가 허락을 하지 않아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아빠는 11월만 되면, 11월 특유의 으슬으슬한 추위가 싫다고 했다. 11월이 되어 온도가 툭 떨어지는 날이 오면 영락없이 아빠가 떠오르는 이유이다.

  아빠를 제외하면, 11월은 나에게 '매달 29일'같은 달이다. 별 뜻 없다. 매달 29일,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 날이던가. 30일 날 월급을 받던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나에게 30일은 소중했고, 29일은 무가치한 날이었다. 매월 초, 중, 말 언제나 특별한 날들이 있다. 1일, 10일, 15일, 30일들은 여지없이 특별했고, 17,18일 이런 날들은 주말이거나 '데이트'인 날이 꽤나 많았다. 29일은 그렇게 뭣도 아닌 날이었다.

  회사에서 스탠딩 달력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다, 29일의 하찮음. 생일이나 주변인의 기일을 제외하고, 일상으로서의 '29일'이 갖는 하찮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필요한, 그 무게에 대해. 국가공인 휴일도 없고 기껏해야 시시껄렁한 '-데이'만 있는, 그러나 수능같은 - 한국인이라면 모든 인생의 한 획을 긋게 하는, 지나고 나면 하찮아져 버리는- 이벤트를 담은, '11월이 갖는 하찮은 필요의 의미'에 대해 골몰하느라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다, 나이 때문이다. 어느 작가님의 글에서 마흔은 '마음이 흔들리는 나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옳다구나, 싶었다. 어느 작가님은 마흔을 '불혹이 아닌 만혹(滿惑)'의 나이라고 하시며, 곧 마흔을 앞둔 내게 '마흔이 되심을 축하한다'라고 해 주셨다. 옳다구나, 싶었다. 어느 작가님은 '어른들이 마흔을 보고 한창 때라더니, 내가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보면 한창때가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옳다구나, 싶었다.

  뭐가 이리도 이것저것 흔들리는 게 많지, 하고 보니 '마음이 흔들리는' 나이어서였다. 혹할 것이 천지삐까리이다. 그야말로 만혹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작가님을 보며 '난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오로지 읽기와 쓰기 뿐인데. 그러곤 곧 머리를 흔들었다.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고 쓰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내가 한창때가 맞는구나 싶었다.

  실은 '마흔'이라는 숫자보다, 내년에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나를 더 흔들고 더 혹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학부모가 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삶이 또 한 단계 다른 궤도에 들어서는 것일 텐데. 부모와 '학(學) 부모'는 차원이 다르다던데, 나는 좋은 또는 괜찮은 학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일찍 집에 오면 어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역시 학원 뺑뺑이가 답인 건가. 첫째에 초점이 맞춰지다가도, 둘째는 스스로 옷을 입게 될 것이고, 막내는 기저귀를 뗄 것이고, 그만큼 손이 덜 갈 것이고 지금보다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이 내게 주어질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하고. 그런데, 그러면, 글은? 이러면 다시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는 듯도 하고.

  언제 발송될지 모르는 취학통지서를 받아드는 마음으로 마흔을 기다리고 있다. 딱 취학통지서를 받아 든 마음만큼 심장이 쿵할 것 같다. 딱 그만큼 설레고 그만큼 긴장되고 그만큼 답답할 것 같다.

  스물아홉 일 땐 서른이 하루빨리 오길 기다렸다. 20대는 설익었고, 30대는 여유로울 것 같았다. 30이 주는 넉넉함과 뜻 모를 안정감을 기대했다. 그리고 30이란 숫자는 기대한 만큼 그러한 감정을 심어준 것 같다. 30보단 20이 끝났다는 안도감 - 인생에 다시 2를 달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 이 더 컸지만 어쨌든 그리했다.

  마흔을 기다리는 마음은 조금(이 아닌가) 다른 듯하다. 이제 겨우 이만큼 성숙했고 이제 겨우 이만큼 알게 되었고 이제 겨우 이만큼 키워냈다. 마음의 연료가 어디서 오는지 잘 모르겠는데 끊임없이 주어지고 그래서인가 내가 쥐고 있는 불쏘시개는 쉬지 않고 불을 지피고 있으니, 부글대는 마음은 도대체가 강약 조절이 안 된다. 글을 쓰면 조금 사그라드는 듯싶다가도, 같은 이유로 그러하기에 더욱 부글대고야 마는 것이다. 기승전 글, 기승전 나이. 유치하지만 이게 요즘의 나이다.

  5나 6을 앞에 두면 '몇 학년 몇 반'으로 이야기한다던데, 겨우 3학년 9반 주제 이러고 있는 꼴을 보면 우습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지점 심각하지 않은 적이 없듯이, 지금도 3학년 9반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것이다. 30대가 한 달 남았다.이 이유로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핑계 혹은 변명을 이리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뭐야, 뻘글이나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내가 문학(이라고 감히 들먹여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文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친한 척이라도 하고 싶다, 내가 아직 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고집 피우고 싶어진다)에서 아주 멀어진 것은 아니라고 우겨본다면, 그것은 온통 시 필사 덕분이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보내고 엉망진창인 집은 무시하고 시 필사 노트를 펼쳤다. 그러면 아침 내내 나를 들들 볶 엄마 자아가 한 발 물러서게 된다. 글 쓰는 자아가 힘을 받게 된다. 그 과정이, 그 한 발짝씩의 움직임이 좋아서 아침마다 시를 필사했다.

  나의 말과 문장이 빛나기 위해 나의 인생이 빛나야 할 텐데 그러하지를 못하니 이렇게 빛나는 시라도 베껴 쓰며 나아가 보고자 한다. 하찮은 것들의 이름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며 이렇게 비루하고 구차한 글을 쓰며 버텨보려 한다. 세상 무용한 이 글을 그럼에도 써내는 것은, 훗날 글이 인생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는 날이 올 때(그러길 바란다), 돌아보며 '이런 날도 있었지'하며 웃을 용도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마지막 한 달은 국어사전 창을 자랑처럼 옆에 열어 두고 서정시 비슷하게라도 흉내 내며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았으면 한다. 이런 변명 글이나 내뱉을 시간에 좀 더 무르익고 따습고 유익한 글을 써내고 싶다. 그렇게 내 남은 30대를 잘 접어 추억 속에 묻고 40을 맞이하고 싶다. 실로는 12월의 첫날이지만 체감으로는 11월의 마지막 날의 꼬랑지를 붙잡고 애가 타는 글을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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