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지금도 나의 하루의 시작은 같았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아이의 기저귀를 갈며 아침을 맞는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의 지린내는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아이가 크면서 소변의 냄새도 더 커진다. 나는 아침을 알리는 그 냄새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는 글을 쓰며 진정한 ‘삶의 향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낳아 키우며 만 5년 하고도 6개월을 하루도 쉬지 않고 기저귀를 갈았다. 1년 동안 두 아이의 기저귀를 동시에 갈기도 했다. 매일 아이를 안고 기저귀를 가느라 손목의 어디 즈음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온 지 꽤 되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무시뿐이었다. 손목뿐 아니라 골반과 무릎과 발목과 어깨도 각자의 아우성을 쳐댔지만, 나는 엄마를 하기에도 바빠 아우성을 제대로 들을 시간이 없었다.
아우성이 가장 크게 들려온 곳은 다름 아닌 영혼이었다. 엄마 자아가 꽉 들어찬 까닭에 진짜 나는 납작하게 눌려 있었다. 자주 멍하니 벽을 바라보게 되고 이따금 눈물이 나면 흘리곤 했는데,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의 기저귀는 파란 선을 보이며 엄마로서의 나를 소환했다. 내 손은 늘 기저귀함 근처에 머물러야 했다.
지금도 여전하다. 아직 배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막내 덕분에 내 손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기저귀함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의 내 손이 가장 많이 머무르는 곳은 키보드 위라는 것이다. 요즈음의 내 손은 노트북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엄마 자아에 눌려 있던 본래의 나를 천천히 일으켜 주고 있다.
도서관의 책 읽기 모임이 쓰기 모임으로 바뀔 때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위태로웠다. 아이들이 예쁜 것과 힘든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내 안에 쌓여 썩어가는 것들을 꺼내 말리는 행위와 실천이 필요했다. 그렇게 ‘쓰기’가 시작되었다.
각오한 대로 장애는 많았다. 첫째와 둘째를 등원시키고 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으로 무언갈 썼다. 막내를 재우고 밤에 화장실에서 썼다. 깨서 울면 젖을 물리고 재우고 다시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장을 보러 갔다가, 해산물 코너 앞에서 쓰느라 고등어를 사 오는 것을 깜빡하곤 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글을 쓰면 나는 이상 신호를 잊을 수 있었고 내 안의 아우성을 없앨 수 있었으며 잊고 있던 진짜 나를 데려올 수 있었다. 나에게 쓰기는, 잔잔한 일상을 침범한 수호신, 그런 것이었다.
‘삶의 향기’라고 적힌 공모전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도 나는 화장실 불빛에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허리는 구부정했고 눈은 건조했으나 마음은 정갈했다. 써야겠다, 단 하나의 마음뿐이었다. ‘써야겠다’라는 마음과 동시에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일곱 살의 나와 젊었던 아빠의 그 순간, 삶이 가끔 물음표를 이끌고 와 묻던 그 순간, 내 생의 가장 큰 비밀이자 같은 이유로 가장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그 순간. 어차피 예선에서 떨어질 테니까, 그러면 기껏해야 심사위원 한두 명만 읽는 이야기일 테니까, 얼굴도 모르는 그들에게는 털어놓아도 될 것 같은 그 순간.
쓰는 순간은 담백했다. 그날의 나와 아빠와 풍경을 썼다. 시간이 지나 그날을 떠올린 나와 아빠와 우리의 마음을 썼다. 그런데 퇴고가 난감했다. 나는 자꾸만 울었다. 30년도 넘은 그날을 들쑤시고 털어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안의 쓸데없는 성숙’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고백이 지금에 와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퇴고는 가슴이 아팠고, 세 번을 더 읽어 보고는 그만두었다. 어차피 안 될 소재와 글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유년의 비밀을 떼어내어 홀가분해진 기분 때문이었을까, 응모를 마친 날은 좀 더 깊이 잘 수 있었다.
기저귀를 가는 날은 계속되었다. 기저귀의 크기는 점점 커졌지만 진짜 나는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었다. 육아의 노곤함에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만큼 마음이 묵직해졌으나, 나는 그러한 묵직함을 어쩌지 못하고 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내 안의 묵직함을 해소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엄마 자아에 혼나기 일쑤였다. 엄마 자아는 늘 힘이 셌다. 나는 함부로 내 안의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유난히도 이상한 꿈에 대해 반복해서 생각하던 날이었다. 남편과 심하게 싸우는 꿈이었다. 왜 그런 꿈을 꾼 걸까, 믹스커피를 저으며 생각했다. 믹스커피의 고소함이 난데없는 알람을 울려왔다. 나와는 상관없을 수상자들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쥐었다. 커피는 천천히 식었고 나의 시선도 천천히 수상자들을 훑었다. 수필 수상작의 마지막 칸에 익숙한 제목이 있었다. 부끄럽고 낡은 비밀이 세상에 나온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기에, 당선 역시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축하하고 혼자 기뻐했다. 한편으론 심사위원들을 의심했다. 비루하고 얼룩진 이야기에 왜 관심을 가졌을까. 아빠의 검은 봉지에 일곱 살짜리가 울었다는 이야기에 어떤 가치를 발견한 걸까.
“누나, 실은 나도 그랬던 적 있어.”
당선작을 읽은 동생의 첫마디에, 궁금함에 대한 답이 실려 있었다. 실은 내가 비밀이라고 여겼던 삶의 못생긴 부분이, 누구에게나 있었던 이야기였다. 우리는 각자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지만, 비밀의 모양은 사실 비슷하게 생겼다. 멍, 상처, 미련, 애환, 서글픔, 아쉬움 같이 다른 단어로 치환되지만, 결국엔 그것이야말로 삶의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였던 것이다.
막내의 지린내는 갈수록 심해진다. 글을 쓰면서 나는 기저귀에서 나는 냄새마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순수하고 무해한 그 냄새의 정체가 실은 ‘성장의 증거’ 임을 알려준 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내 육체의 두 손은 키보드에 머물며, 영혼의 두 손은 육아에 잠겨 있던 나를 건져 올리고 있다. 그 기점에 동서문학이 있었고, 그때부터 나는 진정한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