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된 첫째를 매일 왕복 한 시간씩 등원 라이딩을 해주고 있다. 차에서는 아이의 리스트가 귀를 채운다. 어제오늘은 '내가 바라는 세상'. 좋은 노래다. 운전이 지겹지 않다. 곡이 좋은데, 랩핑 실력도 곡 못지않게 좋다. 아이 딕션 보소. Yeah~ Yo, Yo, 그러다 울컥.
어른들이 말해 아이다워야 해요, 이것저것 모두 안 된다고 해요, 그러면서 다른 친구와 비교해요, 나는 그럴 때마다 우울해져요, 그대로 우릴 봐줘요, 우리들은 놀고 싶어요, 그래도 될 나이잖아요, 우리들을 아프게 하지 말아요
아이는 다행히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긴 복의 끝 1-1반, 그 세상에서 하루를 살다 올 것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아이를 아프게 했는지를 복기하며 집으로 복귀했다. 요즘 한창 듣고 있는 '문어의 꿈'도 그랬다. 발랄한 음률에 발랄하지 못한 가사였다. 노래는 '참 우울해'로 끝난다. 우울한 현재를 잊기 위해 잠들고 꿈꾸는 자아라니. 요즘 아이들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고 다닌다니.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 불렀던,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서 '천사 얼굴 선녀 얼굴 마음속에 그려보는' 그런 노래와는 사뭇 달랐다.
더불어, 진실된 마음이 간단하고 명료한 문장 안에 들어가면 얼마나 감동적인 문장이 될 수 있는지 절감했다. 우리들을 아프게 하지 말아요. 깊은 바닷속은 너무 외로워, 춥고 어둡고 차갑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애애애애 애애 참 우울해. '아프게 하지 마, 우울해' 같은 짧고 진실된 문장에 나는 압도되었고, 그리고, 이런 나에게 절망했다. 아이의 페이보릿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아이 생각보다 문장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요즈음의 나는, '아프게 하지 마'나 '우울해' 같은 문장을 좀 더 화려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소설가들의 문장을 훔치고 시인들의 감성을 좇기 위해 시를 필사한다. 혼자 애끓고 열등감에 익사하고 종내는 맑은 채도의 포기로 기화되고야 마는 것이다. 나 따위가 무슨 좋은 글이라고, 무슨 소설이라고. 다음날은 어제보다 좀 더 짙은 의욕으로 시작해서 열패감의 지옥을 들렀다가 가뿐한 비움의 마음을 안고 저녁의 시간으로 되돌아온다. 그럼 그럼, 나는 못 쓰지, 나 따위가 어딜 감히.
이런 나날이 반복되었다. 날짜는 술술 넘어가고 날씨는 포근해져 갔다. 차 스피커에 흘러나오는 '아프게 하지 말아요'를 듣는 순간, 나는 왜 이 문장을 꼬고 꼬고 꼬아서 풀어내려 했던 걸까, 싶어졌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어쩌다가 이 지경, 그러니까 문장 속에 갇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까지 오게 된 걸까.
얼마 전 브런치 친구 작가님과 이야기하다가 '작가병'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퍽 재미있는 단어였다. 작가도 아닌 주제, 대작가인 것처럼 생각하고 쓰고. 기가 막혀, 얼마나 대작가가 되려고 작가병 같은 거에 걸리고. 이 생각을 자꾸 하면 할수록 마음속 그림자가 짙어졌는데, 그 이유는 내가 심각한 작가병에 걸렸다는 걸 나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만 보면 김영하 급이다.(김영하님의 일상이 어떠한지 잘 모른다 아니 아예 모른다) 머릿속은 온통 글감과 문장으로 가득 찼다. 아이들과 남편이 나간 시간은 읽고 쓰기만 한다. 오늘 오전도 시를 필사하고 단편 소설 네 편을 읽고 짧은 리뷰를 썼다. 좋아하는 작가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다음 연재 글에 대한 구성을 대충 짜고, 저녁엔 설거지하고 애들 씻기기 전 잠시 시를 몇 편 읽는다. 이 정도면 베스트셀러 소설집 두 권, 시집 세 권은 낸 작가 수준의 삶이다.
한심하고 한심하다. 실상은 오늘 저녁 애들 뭘 먹일지 고민해야 하고 겨우 해 먹인다. 다행히 아이들은 잘 먹어 준다. 남편은 집안일을 고작 이 정도로 해나가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일단 참아보고 있다. 나는 그게 다 보인다. 고맙고 미안하다. 한편으론 글 쓰는 걸 지지해줬으면 싶다가도, 집에서 낮에 뭐하느라, 이런 말을 참는 게 보여서 나 또한 참는다. 나의 작가 시대는 평일 낮뿐이다. 그것만 해도 어디냐. 참을 인을 써본다, 忍忍忍, 칼을 품은 마음이라니, 이 글자 만든 사람 최소 외계인급 천재.
너무 웃기는 거다. 그냥 애셋 엄마 하면서 취미로 글 쓰는 것뿐인데, 그걸 잘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글 잘 쓰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와 동경과 팬심으로 부글대느라 소화도 안 된다. 문장들은 쉭쉭 소리를 내며 소란스럽게 지나가는데 어째 남는 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매일 하루의 끝이 빈곤하다. 뭐 남는 게 없어.
그 와중에 요즘은 시가 쏟아진다. 받아낼 그릇을 할 시간이 없어 줄줄 샌다. 어쩔 수 없지, 안녕, 괜찮았던 시구들이여, 언젠가 꼭 다시 찾아와 주길 바라, 제에발. 그 와중에 '우리를 아프게 하지 말아요'나 '참 우울해'처럼 그냥 간단명료하고 진실된 문장으로 꽉꽉 찬 글을 쓰고 싶다. 방금 찾아온 시구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런 문장들에 더 마음이 간다.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 문장을 담백하게 써내는 것, 이 쉬우면서도 결코 하기 힘든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이런, 제대로 작가병에 걸렸다. 하아, 약도 없다. 그냥 이렇게 평생 살아야 하는 건가, 생각하니 조금 머리 아프고 많이 행복하다. 진짜 작가가 못 되는 건 조금(아닌가) 서글플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허황된 작가병에라도 걸려 문장들에 사로잡히고 좋은 문장을 찾으려 구걸하고 애쓰는 내가 좋다. 누군가 지나고 보니 전성기였다는 마흔의 나이에 글에 파묻혀 지내고 있어 행복하다. 이런 병이라면 완치되지 않고 싶다. 평생 작가병에 시달리며 살고 싶다.
쓰고 싶은, 써야 하는 글들이 밀렸는데 이런 뻘글을 먼저 쓰는 이유는 내가 관종 이어서이기도 하고, '작가병'에 걸린 나의 상태를 중간 점검하고 싶어서이다. 중간점검 결과 작가병 3기 정도로 꽤나 중증이다. 더 악화될 기미가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련다. 혹시 아는가, 작가병이 더 깊어졌을 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게 될지. 아무 일도 없을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무조건 좋은 일일 테니까. 그건 인간과 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헤아리는 심안心眼, 그 시력을 높이는 일일 테니까.
글 쓰는 자아를 가진 모든 이들이 작가병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름시름 봄의 시간을 건너길 바란다. 동요처럼 간명하고 맑은 문장을 봄의 공기 속에, 우리 삶 속에 울컥하고 붉게 뱉어내길 바란다. '우리들을 아프게 하지 말아요'를 아픈 심정으로 읽고 써낼 수 있길 바란다. 문장들은 일상과 인생을 기름지게 할 것이다. 우리가 봄을 거치는 내내 병들어있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