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Apr 25. 2022

허(虛)와 무(無) 사이

집, 안일_주방: 끓이기



  세상엔 미스터리한 일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나의 주방에서도 미스터리한 일은 일어난다. 분명 시어머니가 말씀하신 재료를 그대로 넣었고, 시어머니가 말씀하신 순서대로 넣었고, 시어머니가 넣으라고 하신, 하여튼 시어머니가 시키신 모든 것을 그대로 다 했다. 그러나 맛은 시어머니의 국경을 벗어난 맛이었다. 이 정도면 장비를 탓해야 한다. 우리 집 웍이 영 저질이고 우리 집 국자가 상태가 메롱이고 우리 집 가스레인지가 노굿인 것이다. 그래... 이래서 줄곧 내가 한 음식들이 맛이 없었던 거야. 

   이를 지켜보던 남편이 옆에서 쿨내 풀풀 풍기며 두 글자를 뱉는다. 

  "짬밥."

  시어머니의 짬밥과 나의 짬밥 차이라는 것이다. 흠, 일리 있는데? 그러니까 같은 재료와 레시피여도 결국 맛을 결정짓는 건 짬밥 즉 요리를 해온 세월이라는 거지? 그렇군, 이라고 단박에 인정하기엔 나는 조금은 억울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인데 짬밥 같은 실체도 없는 것 때문에 맛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다니. 

  억울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다음 주말 시어머니께 미스터리 사건의 처음부터 끝을 털어놓았다. 물론 나의 억울함을 중간중간 잘 배치하는 것을 잊지 않고.

  "앞으로 더 해볼수록 실력이 늘 거야."

  어머님은 끝까지 비밀을 말해주지 않으시고 짧은 문장으로 이 미스터리 사건을 마무리지으려 하셨다. 인자한 미소가, 그래서 더 수상했다. 이번 주말 다시 해 먹어 보자고 조르자 어머님은 짧은 문장으로 대답하셨다.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 남편 쿨내가 어머니한테서 온 거였군. 

  다시 봐도 똑같은 레시피였다. 생선 만지는 건 싫지만 내장까지 내 손으로 다 빼서 넣어야 하는 타이밍에 딱 넣었구만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거지? 아무리 봐도 난 잘못한 게 없다니까. 결국 동태탕 재수강은 그렇게 소득 없이 끝나버렸다. 어머님은 '왜 맛이 다를까' 덤덤하게 말씀하시고는 소파로 가 앉으셨다. 어제 못 본 신사와 아가씨 재방 봐야 돼, 너희 엄마한테 가서 놀아. 소파에 덕지덕지 붙은 손녀딸들을 몰아내는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도대체 나한테 뭘 안 알려주신 거지. 요리 과정을 그대로 다 보여주셨는데, 어머니 동태탕 특유의 깊고 진한 맛이 나한테는 없는 거지, 진짜 짬밥 문제인 건가. 

  드라마와 하나가 되시는 듯해 보이던 어머님이 갑자기 나를 부르셨다.

  "거기 가스불 좀 꺼."

  옛날 사람들은 진짜 신기하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가스불을 지켜보는 눈이 하나 더 있는 것만 같다. 약한 불을 끄는 손끝에서, 아하, 그제야 뜨거운 깨달음이 전해졌다. 뭉근한 불 그리고 시간차, 이것이 답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님은 매번 말씀해 주신 것도 같았다. 지금부터는 약한 불로 끓이기만 하면 돼. 재료 준비와 요리 순서에만 집중한 나머지 나는 '불의 세기'나 '끓이는 시간' 같은 건 철저하게 무시를 해온 것이다. 

  특히 국이나 탕의 경우 국물과 건더기에 맛이 배이게 하는 '약불로 끓이는 단계'가 중요했는데, 그런 시간이 나에게는 '없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끓기 시작하면 동태와 무를 넣고 간 마늘을 넣고 두부와 파를 넣고 간을 맞추는 일련의 과정만 중요했을 뿐이었다. 간이 대충 맞으면 '요리 끝'이었고, 요리 끝의 마무리는 늘 가스레인지 불을 끄는 행위로 대표되었다. 그렇게 식사 준비가 끝나고 그릇에 보기 좋게 담고 밥과 함께 먹으면 뭔가가 부족한 맛이었다. 얕고 설익은 맛, 말 그대로 짬밥 즉 '세월'이 들어있지 않은 맛이었다. 이 것은 다시다나 미원으로 대체될 수 없는 맛이었다. 나는 맛을 깊게 하는 '뭉근한 시간'은 보지 못한 채 나의 요리에 들어가지 않은 온갖 종류의 조미료 이름을 떠올렸다. 다음번엔 연두를 넣어 봐야겠어,라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에 채 깃들지 못한 것은 '시간'이었다. 


  진짜 요리는, 내가 '요리 끝'이라고 시작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손은 가스레인지의 '소화'까지 갔지만 시어머니의 손은 '미세'까지였다. 나에게 비어있는 '허(虛)'의 시작이었다. 그 시간은 국과 탕의 종류에 따라 15분도 되었고 30분도 되었다. 작은 불은 시간을 들여 국의 맛을 건더기에 전하고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국과 탕에 전했다. 맛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익어가는 거였다. 나에게 여전히 없는 '무(無)'의 시간이 끝나면 음식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시어머니 집에서 먹는 동태탕의 맛은 그러했다. 약한 불과 시간이 만나 이루어낸 깊고 진한 맛, 내가 미스터리라고 여겨온 그 맛, 주부 10년 차가 몰랐던 주부 40년 차의 '세월'이 만들어낸 맛. 






  세상엔 미스터리한 일이 많다. 그러나 그 미스터리를 잘 헤아려 보면 우리가 보지 못한 진실들이 숨어 있다. 우리가 진실을 보지 못한 탓에 '미스터리', '이해불가'라고 단정 짓고 만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주 조금은 알듯도 하다. 어떠한 사건의 결과나 표면만 봐서는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의 속에 실은 '시간'이나 '세월'이 숨어있음을, 그것은 허무한 실체 즉 비어있고(虛) 그리하여 없는(無) 것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진실에 가닿지 못한다는 것을. 하물며 동태탕을 끓이는 작은 일에도 '작은 불'과 '시간'같은 것들이 필요한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이 그러한 것들을 품고 비밀을 뿜어내며 존재할지, 40여년을 살아 겨우 어렴풋하게 감지하고 있다. 

  같은 이유로, 많은 비밀은 '시간'이 지나야 진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진실이 본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필수요소로 '세월'을 머금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세월을 먹고 자라야 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시간은 허무한 듯도 하지만 결코 허무하지 않다. 손으로 만져지는 물성만 없을 뿐, 그것을 제외한 모든 곳에 비어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그렇기에 가장 힘이 세기도 하다. 설익은 동태탕의 맛을 완전하게 만들고 세상의 많은 이해 못 할 일들을 이해 가능한 일로 만든다. 우리가 아직 이해 못 할 많은 것들에 필요한 건 어쩌면 시간뿐일지도 모른다. 


  허(虛)와 무(無) 사이, 거기에 충만(充滿) 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작은 힘과 오랜 시간,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전부일지도.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

이전 08화 피, 땀, 눈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