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을 함께 지냈던 시어머니가 분양받은 집으로 가시고 나서 내게 '무지의 자각'이 일어난 곳은 다름 아닌 주방이었다. 아주 단순한 차원의 각성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뭔가 다른데. 밥 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대충 정리하는 건 다 똑같은데도, 어머님이 정리하시고 난 후와 내가 하고 난 후는 뭔가 달랐다. 정체모를 찝찝함이 있었으나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각성만이 주방 어딘가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주말에 어머님 집을 가서 주방을 찬찬히 살폈다. 깔끔하고 깨끗하다. 음식을 해 먹고 정리하고 설거지하는 건 다 똑같이 하는 건데 도대체 뭐가 다른 거지. 눅진거리는 의문을 닦지 못한 채 어머님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지한 나의 정신에는 나와 구별되는 어머님의 행동을 찾아낼 눈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님 집을 갈 때마다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왜, 뭐 물어볼 거 있어,라고 하시는 어머님의 등에 '아니요'라고 대답하고도 어머님 곁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어머님 주방의 비결은 분명히 존재했다. '새 집'은 정답이 될 수 없었다. 우리가 함께 살았을 때도 어머님의 손길이 닿으면 새 집 같아졌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해, 나 몰래 쓰시는 세제나 특제 수세미나... 혹시 침 뱉으시고 닦으시나? 오 마이 갓, 이러지 말자, 나여, 제에발.
설거지를 마치신 어머님은 수세미에 다시 퐁퐁을 퐁퐁 누르시더니 지난주 고은성이 티브이에서 불렀다는 노래를 흥얼거리시며 가스레인지를 닦으셨다. 구석구석 닦으시고 행주를 헹궈 꼭 짜내시더니 두어 번 더 닦으셨다. 노래 한 곡을 고스란히 가스레인지에 바쳤다. 흠, 흠..... 흠? 허? 어어어? 어!
가스레인지를 닦는 일, 바로 그 것이었다. 집안일의 가치, 그 낮은 섬김을 소중히 하지 않은 탓에 나는 가스레인지를 닦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매우 부끄러운 고백이어서 하기 싫은 정도이지만 해야만 한다.)
이전까지 나에게 집안일은 설거지, 빨래, 청소 위주였다. 쓰레기는 남편이 버려주었고 나는 설거지와 빨래와 청소를 했다. 나머지는 할 여력도 없었고, 일단 '나머지 집안일'에 해당되는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참으로 순수하고 게으른 무지였다.
어어어? 어!로 2차 각성이 온 순간부터 어머님을 다른 눈 정확히 말하면 새로 뜨게 된 눈으로 바라보았다. 가스레인지를 닦으신 어머님은 옆 타일을 닦으시고 상하부장을 닦으시고 조리대를 닦으시고 냉장고 손잡이를 닦으셨다. 행주로 두어 번 더 닦으시더니 그제야 주방을 벗어나셨다. 십오 분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주방은 비로소 내가 봐 온 그 주방이었다. 깔끔하고 깨끗한 주방, 나의 주방과는 뭔가 다른 그 주방. '뭔가'의 정체를 나는 드디어 알아냈고 그 중심에 가스레인지가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설거지 싱크볼을 벗어나 주변을 닦는 기분은 흡사 가스레인지에 눌어붙은 기름과 같았다. 찐득하고 더러웠다. 어머님이 가시고 삼사 개월 만에 처음 닦는 가스레인지엔, 삼사 개월 내가 해 먹고 해먹인 음식과 나의 노동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기름때라고 간단히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이었다. 게으름이라고 일컫기 이전의, 나의 무지였다.
나는 왜 이리도 둔하고 센스가 없고 영민하지 못해 가스레인지 한 번 제대로 닦을 생각조차 못한 건지, 어쩜이리 무명(無明)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지 자신에게 속이 상해서 불쑥 화가 나버렸다.
괜히 엄마를 탓했다. 엄마는 나한테 이런 것도 안 가르쳐 주고! 내내 손에 쥐고 있던 수세미를 싱크볼에 홱 던졌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딸을 키우면서 어쩜 그리도 무심했던 건지! 그만 펄썩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아니었다. 엄마도 자주 가스레인지와 타일과 상부장, 하부장, 냉장고 손잡이 같은 것을 닦았다. 나에게 시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끔, 넌 이런 거 하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시집가라,라고 한 두 마디 하셨다. 그냥 시집을 안 갈 건데,라고 대답하면 엄마는 '그래, 그래도 되고'라며 텅 빈 웃음으로 대답하곤 했다.
그랬던 엄마가 짜증을 낼 때도 있긴 했다. 다 닦아 놓으면 뭐하노, 아무도 못 알아볼 거. 엄마의 찐득한 분노, 거기서 나의 3차 각성이 일어났다. 나의 무지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집안일의 속성이었다.
하면 티 안 나고 안 하면 바로 티 나는 그림자 노동. 엄마는 계속 닦고 닦고 닦고 닦았지만 엄마를 제외하곤 아무도 엄마가 닦고 닦고 닦고 닦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집안일이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어머님도 쉬지 않고 가스레인지를 닦고 닦으셨지만 티가 나지 않았기에 나는 순수한 무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집안일은 그런 거였다.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는 할 일이 넘치지만 모르는 이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그제야 나에게 주방은 새로운 일터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밥과 반찬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설거지 후에 가스레인지와 타일과 싱크볼을 닦고 조리대와 수전을 닦고 상부장, 하부장을 닦고 밥솥을 닦고 에어프라이어를 닦아야 하는 곳이 되었다.
닦아야 한다면, 닦을 수밖에. 한 시간 동안 가스레인지와 타일을 닦으면서 마지막 각성이 일었다. 내 손으로 직접 닦아야 한다는, 깔끔하고 깨끗한 진리였다. 내 주방은 나 아니면 닦을 이가 없다. 두 손이 고생하는 만큼 내 주방이 깨끗해진다. 비록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알아주지 못할 거지만 닦아야 한다. 하면 티 안 나고 안 하면 바로 티 나는 그런 거다, 나의 주 업무란.
받아들이고 하기로 했다. 억울해하지 않고 하기로 했다. 억울해할 대상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저 하는 것, 그 뿐이다.
가스레인지, 너 때문에 주방이 내내 더러웠고 네 덕분에 주방이 근본적으로 깨끗해질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아이처럼 울기도 했고 네 덕분에 각성이 있었다. 선승이 초선과 이선, 삼선을 거쳐 사선의 단계에서 평온을 얻는 것처럼, 나 역시 단계를 거치며 깨달음을 얻었다. 무지의 자각에서 가스레인지로 시선을 확장했고 그로 인해 집안일의 본질을 보았고 마지막 실천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가스레인지, 너 때문에 네 덕분에, 고맙고 기쁘다.
아, 이건 굳이 써야겠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니까. 가스레인지를 닦은 그 주말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말했다.(그땐 주말부부였다.)
"이야, 왠 일이야. 가스레인지를 다 닦고!"
그래, 알아봐주는 이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뭐지, 괜한 찝찝함. 예민한 남편이 그동안 '기름때 좀 닦아라' 잔소리 참느라 얼마나 애먹었을까. 나도 그 마음을 알아주니 서로 되었다 싶었다.
가스레인지, 너 때문에 찝찝하고 네 덕분에 칭찬도 듣는다. 고마운데 기쁜지는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너 때문에, 네 덕분에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