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Nov 22. 2022

목적지를 향하는 슬픔

심보선 시에 부쳐



사랑이라니요,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넘치고 넘치는 것이 그리하여 질리고 질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질리도록 뻔한 사랑에 둘러싸여 살고 있음을.     


우유 2리터를 쏟고도 눈만 껌뻑이는 여섯 살 둘째를 저는 사랑합니다, 그럼요, 사랑하구말구요. 

디즈니 프린세스들의 새침한 표정, 시집 사이사이 끼워져 있는 가을 냄새, 구(자경)씨와 손석구, 차돌 된장찌개, 따뜻함을 간직한 주머니, 기다리던 메시지, 동시에 터지는 웃음소리. 그래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사랑하지 않을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아주 잠시 실망을 했습니다. 사랑이라니, 이토록 뻔하디 뻔한 대답이라니.

그래서 꽤나 오랫동안

읽지 못했습니다.

그대의 길고 긴 대답 속에 누워있을 사랑은 

그렇게 뻔한 사랑이 아닌, 뻔할 수가 없는 사랑임을 직감했으므로

그 사랑을 마주할 어떤 용기도 자신감도 없어서 

답장을 받고도 펼치지를 못했습니다. 

위에 허접하게 늘어놓은 사랑하는 것들 그 어디에도 그대가 기술한 사랑이 묻어있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대가 일컬은 사랑은, 어디에 있냐고 질문하는 사랑임을, 머물러 있지 않고 끝끝내 움직이는 사랑임을 알기에 시린 눈과 지친 마음으로 읽어야 했습니다.       

사랑이라니요, 

그 사랑의 행선지에 기어코 동행하고자 하는 그대의 등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저는 뒤를 따르려다 잠시 멈춰 

우리의 사이에 놓인 슬픔이 몇 가닥인가 세기 시작합니다. 

사랑이 알려주는 행선지, 그 길에 슬픔이 11월의 은행잎처럼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사랑,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 사랑의 발밑에 널린 슬픔 그것의 재질과 컬러와 밀도와 내구성과 사용기한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교재는, 제 손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시집의 이름, 그렇습니다, 심보선입니다.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심보선은 탁월한 환멸 전문가입니다. 생이 군데군데 심어둔 슬픔과 허무를 잘도 알아보고 찾아내는 데 타고난 소질을 지녔습니다.(그래서 환멸 전문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겠지요) 낮달은 태양이 쥐어뜯는 가슴을 무심히 바라봅니다. 시인은 그런 하늘의 풍경을 유심히 바라봅니다. 멸망은 치욕을 주제로 우리 곁에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길들이 사방으로 휘는 데에는 변명이 필요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지 않고 시인은 존재들의 변명을 들으려 애씁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침묵, 시인의 바람은 오직 늙어가는 것뿐입니다. 가능하다면 조용히 오래.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든 존재는 늙어가고 그 시간만큼 비를 맞습니다. 그러는 사이 사랑을 꿈꾸기도 하고 실제로 사랑도 하지요. 그러나 둘러보십시오. 어떻습니까, 현실이라는 간판 아래 누렇게 시들어가는 우리의 주변, 우리의 상황, 우리의 표정.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독하게 고독한 현실을 우리는 모를 수가 없습니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 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태양의 고된 노동의 결과로 우리는 간신히 오후를 보냅니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해왔던 진리를 시인은 굳이 밝힙니다. 우리는 조금 수치스러워집니다. 과거와 미래 같은 허황된 시간들이 도시의 아파트에서 추락합니다. 시인은 시간의 낙하를 황망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이 부분까지 읽고 신문을 찢어 도서관에서 나왔어요, 여기까지 다시 소리 내어 읽었지요. 내 안의 울컥거림을 뱉어내는 행위가 필요했어요. 과거와 미래가 순서대로 떨어지는 난간을 위태롭게 잡고 섰어요. 그로부터 15여 년이 지나 ‘미래인 줄 알았던 자리에 과거가 털썩 주저앉아 있다’로 시작하는 시를 썼어요. 맞아요, 그에게 홀로 화답했어요. 제발 알아차려 달라는 미묘한 주저함을 실어.)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시인은 결국, 슬프다고 고백해버립니다. 고백의 장소는 꽃 앞, 고백의 시간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 그래서 더 슬퍼졌습니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모든 풍경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합니다.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곧 밝혀지지요, 길 가운데 홀로 선 시인의 눈에는 그 뒤에 가려진 슬픔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인간 앞에 놓인 운명이란 허무하고 슬퍼서, 남자도 알고 시인도 알아서, 끝내는 시를 읽는 독자마저 알아차리게 해서, 우리 모두는 그의 자전거가 넘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도 – 슬픔과 허무, 환멸과 생의 얼룩 같은 것들 – 가만히 목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슬픔만으로 가득 찬 하늘과 시간과 자전거와 고양이와 여자와 길들을 지켜봤으면서 시인은 태연하게 말합니다.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고. 그렇다면 십오 초 경계 밖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머릿속 꿈동산에 입장하여 현기증을 지나면, 얼마만큼 묘막하게 펼쳐진 서글픔을 경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전문  


인생이라는 길이 내어주는 길은 다 이모양입니다, 변명이 필요하고 침묵을 연탄재처럼 쌓아두고는 끝간에는 사라지도록. 그리하여 길 위를 걷는 이들이 묘연한 고독과 슬픔을 미리 예감할 수 있도록.  


         


그대는 허수경 시인의 전 생애를 걸쳐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안겨주었습니다. 저는 꽤나 긴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을 밝혀도 될까. 좋아하는 이유가 경중을 가진다면, 우리가 아주 좋은 예시가 되겠구나. 고민의 끝에 저는, 당신의 사랑만큼 내 사랑도 무겁고 빛난다는 오해를 쓰다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대의 사랑처럼 오랜 사랑은 아닙니다. 저는 이 시, 단 한 편으로 심보선이라는 절벽에서 그의 시어들에 제 영혼을 던졌습니다.

아직 얼굴을 보이지 않은 고독과 공허와 슬픔 즉, 살아간다는 것의 핵심이 내 젊은 날 사방에서 수시로 출몰할 때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은(청춘)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이 시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누군가 좋아하는 시인을 물어오면 대답했습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지나고 말해도 되겠니.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와 그 뒤에 도사린 삶의 허무, 허무의 내핵에 위치하는 슬픔, 수시로 습격해오는 환멸의 정체를 마주하면 그대는 어찌합니까. 저는 어찌할 수 없어 무력하게 심보선을 더듬습니다.           


나는 우연히 삶을 방문했다             

                                                    - <지금 여기> 처음


아무 거리낌 없이 인생은 시작됐다                  

                                                    - <변신의 시간> 처음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

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                        

                                                    -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처음

               

이곳은 오늘도 변함이 없어

태양이 치부처럼 벌겋게 뜨고 집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넋 놓고 살고 있습니다         

                                                   - <편지> 처음

          

무의미로 가득 찬 인생에 던져진 목숨의 나날을 헤아리는 아침이 잦아집니다. 이런 오전을 몇 번을 더 보내야 하는가. 위의 시구로 시작하는 심보선을 소리 내어 흡입하고 나면, 제 앞에서 컬러풀한 치장을 뽐내던 허무는 흑백의 차분한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시인이 생의 본질로서의 허무를 예습하고 족집게처럼 알려주었거든요. 다음 중 삶의 허무를 드러낸 부분을 고르시오. 외우세요, 문제를 풀 날들이 앞에 수두룩하니까요.

때론 기쁘고 때론 아름답지만, 인생은 대체로 우울하고 슬픕니다. 지리멸렬한 먹고 자고 싸는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는 무슨 의미를 찾아야 합니까. 찾을 의미가 있기는 한 겁니까. 진리는 이정표를 감춘 지 오래고, 허무가 이끌고 온 질문에 예열시켜 둔 예비 대답들은 장례식장의 육개장처럼 식어만 갑니다. 그 와중에 생활은 우리의 진지한 꼴을 견디지 못합니다. 금리와 세금과 환율과 선거와 회식과 친인척의 입원과 옆집 자식의 대학 입학과 친구의 승진은 끝내, 우리를 환멸 가까이 데리고 가지요. 거기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역시나, 낯익은 슬픔입니다.           


슬픔이 서류첩 사이사이 켜켜이 쌓여가는데 회사 인간들은 야근을 마치고 룰루랄라 노래방으로 향하네 당신의 십팔번이 나의 십팔번일 때 한없이 흐려지는 존재감 

                                          – <그녀와의 마지막 테니스> 부분

      

군대 가서 절망한 친구는 자살했지만 절망해서 군대 간 친구는 잘 살았다 안을 수십 번 접어도 바깥은 한 치도 구겨지지 않는다          

                                          - <금빛 소매의 노래> 부분

     

“자네는 여전히 착해 보여.”

“그렇게 보이는 건 제가 지금 조금 슬퍼서입니다.”

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말년의 양식> 부분          


그렇게 느린 속도로 슬퍼하다 보면 늙음은 빠른 속도로 인생을 덮칩니다. 시간은 우리를 한순간도 그냥 두려고 하지 않아요. 어느새 내 몸의 연식은 나의 인식보다 앞서 있습니다.      


늙음은

별안간 거울에서 나타나 너희를 경악게 할 것이다             

                                            - <극장의 추억> 부분     


나는 지금 유언장을 몇 번 접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나는 너무 젊었으나

내 주위에는 늙디 늙은 비밀들이 가득하다            

                                             - <성장기> 부분

     

내게 인간과 언어 이외에 의미 있는 처소를 알려 다오

거기 머물며 남아 있는 모든 계절이란 계절을 보낼 테다       

                                             - <웃는다, 웃어야 하기에> 부분

     

어느덧 우리는 ‘유일하게 아는 어른이 죽음인 사람’(염천교 생각)의 자세로 생의 종착지에 앉게 됩니다. 청춘을 제외한 나머지 생에 대해 불충실하게 지내 온(나날들) 시간을 후회도 해보지만, 그것이 바로 허무의 장점이자 특기인 걸요. 후회, 미련, 치욕, 눈물과 비슷한 단어들 말이에요. 끝내 ‘이 삶은 내가 살고도 내가 살지 않았으니’(노스탤지어)라며 깨달음의 모서리를 쥐어보지만, 우리의 호흡은 기껏해야 서너 번 남았을 뿐입니다. 그때 문득 이런 시를 떠올려 볼 수 있을까요.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 <이 별의 일> 전문           



그렇군요,

죽음 직전에 ‘너’를 떠올리는군요, 그 후에 멸망과 이별을 경험해야 하는군요. 

그래서 저는 어찌할 바 없이,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의 행선지를 그려봅니다. 비록 누군가를 잊기 위해 여러 번 개종해야 하는 수고를 치르더라도(종교에 관하여) 결국에는 종착지에 다다를 그대의 뒷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 어느 순간 저 역시 발을 떼겠습니다. 종종걸음으로 그대에게 다가가 인생이 우리 주위에 거미줄처럼 이어놓은 허무와 슬픔과 환멸을 걷어내고 손을 잡겠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이기 위하여 

사랑하기 위하여    

                                             - <지금 여기> 부분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이 알리는 행선지와, 그곳을 향하는 슬픔.

그렇습니다. 슬픔의 목적지도 결국은,

사랑이었습니다.  


   

삶을 통과하는 모든 순간이 우연과 우연으로 점철된다고 허수경 시인이 그랬던가요(시인이라는 고아 중). 심보선이 답합니다.      


우연이란 운명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에 그대와 나는 또 다른 운명으로 만났다.                                                   -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부분     


그렇게 만난 우리, 

슬픔 가득 안고 

사랑이 알려주는 행선지를 향해 함께 갑시다. 

어쩌면 우리의 할 일은 그것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보선, 인중을 긁적거리며 中






<이 별의 일>을 필사하다가 문득 떠오른 소설의 구절이 있어요. 

최은영, <밝은 밤> 중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시 필사 노트에 옮겨 적은 소설의 문장입니다. 소설 속에 가만히 몸을 숨긴 시. 

폴폴의 소설 속 시를 꺼내어 보여주세요. 네, 맞아요, 책장 속 그 소설, 펼쳐서 읽어 주세요. 

소설책을 들고 시 낭독을 하는 그대의 옆모습을 고요히 바라보겠습니다. 




진샤와 폴폴 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허수경과 심보선을 오래 뒤적인 시간들을 들추어봅니다.
꽤나 귀여운 간이역이 세워져 있군요,
역명은 '행복한 가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선지를 알리는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