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폴폴 Nov 29. 2022

너 아닌 무엇을 너라고 부를 때

- 시가 된 산문을 찾아서



  이제부터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속삭여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실 입구 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참을 수 없이 거슬렸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

멍하게 나는 되물었다.

...... 신경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데?

불쑥 인선의 얼굴이 아이처럼 밝아져 하마터면 함께 웃을 뻔했다.

뭐, 썩는 거지. 수술한 위쪽 마디가.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하고 되묻는 것 같은 그녀의 동그란 눈을 나는 여전히 멍하게 마주보았다.

그렇게 안 되도록 삼 분에 한 번씩 이걸 하는 거야. 이십사 시간 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삼 분에 한 번?

상대의 말을 따라 할 줄밖에 모르게 된 사람처럼 나는 되물었다.

그럼 잠은 어떻게 해?

난 그냥 누워 있고, 밤에 오시는 분은 깜박깜박 졸다가 바늘로 찔러주셔.

얼마나 오래 이렇게 해야 해?

앞으로 삼 주 정도.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중


안녕, 말고 어떤 말로 시작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하루가 지났어. 나는 이 편지를 이렇게 시작하기로 했어, 하루 동안 첫인사를 고민한 사람의 고백으로.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독자는 거의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한강이라고 말하는 독자를 만나는 일은 여전히 귀해. 한강의 글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상냥한 표정을 짓지 않거든. 독자하게 해 주려고 유머를 섞지도 않는 데다 안도의  내쉬게 하는 문장도 안 쓰고. 그녀는 우리를 괴롭게 해. 머리를 쥐어뜯게 하는 괴로움이 아니라, 빠져나올 방법을 몰라 거기  있어야 하는 슬픔 주는 괴로움이야.


그 괴로움 안에 있어좋은 점도 있어. 우는 걸 들키지 않을 수 있는 . 붙인 두 손으로 문장을 떠서 얼굴을 씻는 시늉만 해도 눈물 씻기는데, 급한 상황일 땐 그냥 얼굴을 속에 집어넣으면 거든. 그녀의 에는 페이지마다 넘치도록 출렁이는 물이 있어서 젖은 얼굴을 말릴 순 없지만,  얼굴이 더 젖을 일도 없어. 읽으려고 마음먹은 순간 거기 잠기게 되니까, 수생 식물이나 해양 동물처럼.


거기서, 물에 젖지 않는 플라스틱이나 코팅된 종이나 인조 가죽 같은 건 될 수 없어. 물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니까. 둥둥 떠 있기만 하는 게 아니라 문장이랑 같이 호흡해야 하니까. 삼 분마다 바늘로 찔려야 사는 사람에 대한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나허공에 자꾸 찔리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었어. 허공은 눈에 띄는 형태가 없어서 뾰족함을 피할 수 없었지. 고통을 느낄 때마다 시계를 보지 않은 건 이미 충분한 실감을, 더 구체적으로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


쉬지 않고 피 흘려야 다시 살아나는 봉합 부위를, 신경이 거기 있 걸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일러 줘야 하는 시간을,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막으려 했어. 시간을 잊을 만한 영상이나 영화를 보기도 했고, 음악을 틀어 놓고 눈을 감기도 했고, 후들거릴 때까지 뛰거나 걷기도 했어. 네 연락은 그때 나를 찔러주던 바늘이었을까. 아프지만, 그래서 신경을 죽이지 않고 살아있게 만 통증처럼. 괜찮냐고 넌 묻지 않았고, 늘 더 울라고 했으니까.


가 없을 땐 책을 읽었어.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눈에 글씨를 담기만 하면 내 몸이 여기 아닌 곳에 있을 수 있으니까. 한강을 읽기 좋은 때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한강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때는 분명 있어. 살아있는 모든 시간이 생생한 아픔일 때. 그때만큼 온몸으로 한강을 읽게 되는 때는 없어. 한강은 언제나,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해저로 우리를 데려가니까. 우리는 잠수하거나 솟구쳐 오르려고 하거나 적응하면, 거기 머물 수밖에 없어. 해변을 발견할 때까지 쉴 수 없는 잠수함처럼.


이게 왜 시냐고 네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게. 상상도 못 한 광경을 본 사람이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 하고 할 말을 잃는 것처럼, 한강의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멍해져. 멍해져서, 내 아픔을 잠깐 잊기도 해. 꿈을 꾸는 것처럼, 그게  도 모르고 꿈을 꾸는 것처럼. 깨어 돌아갈 현실을 잊을 방법 하나뿐인 사람처럼 그렇게.



   파스테르나크의 대작을 읽은 뒤 당신에게 남는 건 무얼까. 한 얼굴이다. 사랑하는 여자와 무수한 겨울을 떨어져 지내야 하는 한 남자의 얼굴. 어둠 속에 머무는 얼굴. 남자는 숲속 어느 외딴 나무집, 탁자 앞에 앉아 있다. 그는 편지를 쓴다. 끝이 나지 않는 긴긴 편지다. 종잇장들이 검은 잉크로 물든다. 그게 전부다. 이름들과 사건들은 잊힌다. 모든 것이 지워진다. 연못 같은 책장 아래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그래도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을 휩싼 흥분은 남는다. 사라지기까지 여운이 너무 긴, 기분 좋은 무력감이다.

-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중


그런 편지를, 너도 받은 적 있겠지. 끝나지 않는 긴긴 편지를. 어떤 소설가가  얘기가 생각나. 그 두메산골로 초임 발령을 받아 교직 생활을 시작는데, 밤엔 할 일이 없어 밤마다 편지를 대. 어떤 밤엔 편지를 방바닥에 펼쳐 았더니 방이 꽉 찼고. 그렇게 무시로 편지를 쓰다 보니 소설도 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다는 이야기.


그 밤들에 대해 생각해 봤어. 등보다 밝은 밤의 흰 꽃들에 대해. 여름밤의 녹 방까지 너울거리며 들어와 이 본래 어떤 색이었든 초록으로 물들이는 일에 대해. 단감이 젖었다 말랐다 하며 곶감이 되는 스무날 동안 산짐승의 발자국이 얼마나 분주했을지에 대해. 눈이 오면, 세상이 하얗게 변 순간 보고 싶어지는 흰 이마를 볼 수 없는 슬픔에 대해.


편지에 관해서라면 우리, 할 얘기가 많을지도 몰라. 편지 지금 날 수 없는 사람 당장 만날 수 있유일한 문이니까. 편지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시가 어떤 존재인지 여태 몰랐을 테니까.

편지는 생명에게 동을 주는 물이나 빛이랑은 다르지만 마치... 밥처럼 우리를 살게 해. 며칠 안 먹어도 살 수는 있지, 쌓아  사연이 우리 속에 남아 있는 동안은.


그래도, 긴 시간 편지를 못 받영혼 허기지고 바짝 말라 걸을 힘도 없을 거야. 누워서 떨리는 손으로, 눈길을 뚫고 온 차에서 내린 편지를 뜯어 허겁지겁 읽을 때 영혼에 피가 돌고 살이 오르경험을, 너도 해본 적 있겠지. 그래, 그때 내가 편지로 사랑하는 사람인 걸 알았어. 과거의 몸이나 미래의 말 없이, 완전한 현재로 존재하는 시간이 거기 있어서.


답장을 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말을 다 꺼내올 수도 있어. 말들이 는 그 광은, 곤히 잠든 식혜 홍시가 귀한 손님이 을 때만 빛을 보는 그런 광이야. 김치와 장과 쌀과 말린 무청이 있어, 겨울의 우리를 기지 않는 곳. 편지가 태어나기 적합한 장소지. 서늘하고 어두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함박눈 쏟아지는 풍경 같은 식혜를 대접에 따르고 윤기 도는 홍시를 조심히 낼게. 밥을 다 먹은 네가 단 것을 먹고 마시며 한숨 돌릴 수 있.



   바닥을 더듬어 그것을 주웠을 때 d는 표지까지 열세 장인 두꺼운 마분지와 좁은 간격으로 말린 스프링에서 온도를 느꼈다. 달력을 올려두고 식탁을 짚어보니 역시 미지근했다. 그 밖에도 더 있었다. 가구와 식기, 유리, 각종 손잡이들. d는 서서히 그것을 눈치챘다. 공기보다 싸늘해야 마땅한 사물들이 미묘한 생물처럼 미열을 품고 있었다. 그 미적지근한 온기를 참을 수 없어 d는 사물과의 접촉을 줄였다. 모든 것이 이렇게 될 수는 없으니 변한 것은 내 쪽이다. d는 생각했다.

내가 차가워졌다.

- 황정은, <웃는 남자> 중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차가워진 남자에 관한 이야기야. 이 남자를 녹인 것은, 남자만큼 외로운 한 사내의 손가락. 등을 쿡 찌르며 아는 척을 하던 사내의 수리점에서 들은 한 곡. 음악이 좋은 건 그래서야. 음악은 우리를 어디 데려갈 수 있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


내 체온이 그의 체온과 같아질 때까지 가까이 있어본 적 있겠지. 같은 체온이 되면, 전에 다른 온도였던 걸 잊게 돼. 그건 좋은 일일까, 타인과 나의 구별이 없어지는 .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인 건 확실할 거야.


표정이 생생해.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을 벌렸다 이내 다표정. 찬 물에 씻고 나면 내 손차가워져. 물기를 닦아도 여전히 찬 열 개의 손가락 녹일 때 그 표정을 봤어. 손을 빼거나 옮기지 않고, 소리를 내거나 찡그리지 않고 가만히 손을 덥 순간 표정. 지금도 나는, 찬 손을 아무 데나 척척 내놓지 못해. 누군가의 온기를 받는 일이 마음을 받는 일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어서.


   

   샤워를 하다 문득, 이별이 인간을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고통보다도, 잠시나마 느껴본 삶의 느낌... 생활이 아닌 그 느낌... 비로소 살아 있다는 그 느낌과 헤어진 사실이 실은 괴로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었다.

생활

생활

생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영영 이어질 생활과... 어느 순간 배수구 속으로 맴돌며 사라질 허무한 삶... 아니, 삶이 아닌... 생활... 잘 말린 옷을 입고 앉아, 선풍기 앞에서 시원한 참외를 깎아 먹던 그날 저녁을 잊을 수 없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이었고, 그저 무료한 마음으로 무료한 드라마를 지켜보던 여름밤이었다. 아무 일 없고, 아무 문제도 없는 생활이지만... 이것이 <삶>은 아니라고 참외를 씹으며 나는 생각했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


 삶에서 빠져나가면, 그제야 그것이 존재했던 시간과 이유, 이후의 삶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지. 나 같은 사람. 구멍이 뚫린 채  때도 있고, 구멍을 막을 만날 때있어.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게 왜 중요할까. 우리가 그걸 생각하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쉼 없이 이름을 불러주는 , 내가 에 있다고 알려주는 . 그것 말고 우리가 삶에게, 삶을 구성하는 존재들에게 뭘 해 줄 수 있을까. 기껏해야,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도장을 찍어주는 일 말고.



   중력도 마찰력도 없는 조건에서 굴린 구는 영원히 굴러간다.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난 종종 떠올렸어. 영원히 천천히 굴러가는 공을 생각했어. 그 꾸준함을 상상했어. 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보면 쓸쓸해지더라. 데굴데굴 굴러가는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여서. 그래도 우린 중력과 마찰력이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구나. 가다가도 멈출 수 있고. 멈췄다가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거지. 영원할 순 없겠지만. 이게 더 나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 최은영, <모래로 지은 집> 중  


세 살에서 열여덟 사이의 친구들과 토론을 했을 때 일이야. 영원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니 모두 영원하지 않은 삶을 택하더라. 놀라어. 나이가 몇이든 자기 인생에 확신과 의지가 있다는 것보다, 누구도 영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는 다양했어. 사랑하는 사람 없는 세상에 혼자 살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대답부터, 삶이 영원면 소중한 게 없고 무료하기만 할 거라는 예측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또 생길 수 있고, 무료함은 새로운 걸 창조할 때 사라질 거란 얘기는... 하지 않았어.


짐 자무쉬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를 생각했거든. 거기 나오는 영원히 사는 뱀파이어들표정을. 영원히 사는 이들은 급할 게 없으니까 말도 행동도 느리고, 질투도 분노도 반가움도 환희도 반 박자씩 늦어. 간격을 두고 감정을 드러내는 무심함이 그들을 더욱 쿨 존재로 만들어서, 뭐든 가질 능력이 있어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설득해.


가장 멋진  제목이지, 역시. 그들이 살아남 이유는 명확하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사랑하는 '너'가 없다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니까. 땅에 발붙이고 있서, 숨을 쉬고 있어서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오직 사랑하고 있을 때사는 거란 걸 보여주는 문장. 그건 죽지 않는 존재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메시지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지고, 못 견디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살갈 수 있어. 사랑하는 존재만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 제대로 사는 세상 어떻게 만 수 있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시인들이 고민하고 있 거야.


소설 수필 속에, 문자와 편지 속에서, 표정과 풍경 속에서 홀로 번뜩. 함께 있는 게 뭐든 최종적으로 그걸 문학이 되게 하면서, 말이 가진 모든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꿋꿋하게 숨어 있다, 발견하려고 애쓰는 사람 눈에만 띄면서.


우리는 시가 될 수 있고, 시가 아닌 걸 지울 수 있고, 시를 부르거나 그리거나 그 옆에 앉아 있을 수 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주 그러듯이.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눈 소식을 기다리는 이유는 하나뿐이에요.

같이 캐럴을 듣고 싶어서요.  





매거진의 이전글 목적지를 향하는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