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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17. 2020

100원 주세요!

브런치 100일 D-3

   어린이집 휴원 공고가 떴다. 휴원 명령 기한은 12월 17일(목)부터 별도의 기한 해지 시까지,라고 한다.

   내일 아니 오늘부터 애 셋과 시쳇말로 지지고 볶아야 한다. 왠지 나의 글들이, 나의 브런치가 오랜 동면에 들어야 할 것만 같다. 낮동안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밤에는 쓰러지듯이 잠들 것만 같다. 노트북 앞에 앉을 시간이 없을 것만 같아 이렇게 밤을 몰아내고 안 방 화장실 불을 켰다. 나의 동면 중에 브런치 100일이 지나갈 것 같아서, 그것이 아쉬워서이다.





   9월 11일 브런치 합격하고 12일 첫 글을 발행했다. 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며 글을 썼다. 지금까지 49편의 글을 발행했고, 140명에 가까운 구독자와 관심작가를 곁에 두게 되었다.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도 몇 번 오르는 호사도 누렸다. 매주 오도독 글도 제출했고, 그 와중에 공모전에도 두 번 당선되었다. 약간의 상품과 상금, 포인트를 받았다.

   돌아보면, 100일에 가까운 나날을 나름 열심히 글을 읽고 썼다. 49편, 이 글 포함하면 50편이면 그리 많은 글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 셋을 키우며 밤잠을 몰아내며 쓴 글 치고는 적지 않은 글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밤을 갉아먹으며 쓴 글이기에, 치열하게 썼다. 그 치열함을, 브런치 다른 작가님 글을 보며 느꼈던 점들을 통해 간단히 정리해 보려 한다.



   먼저, 글을 쓰는 시간이다. 다른 작가님들은 잘은 모르겠지만, 한 작가님은 글감을 생각하고 글을 쓰고 퇴고하고 발행하는 데 평균 3시간이 걸린다고 쓰셨다. 나는? 긴 글은 다 합쳐서 1시간 반이 걸렸지만, 대부분 쓰고 퇴고하고 발행까지 거의 한 시간이다. 짧은 편인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나도 신기할 정도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글은 쓰는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내 안의 것을 토해내듯 쓰는 글이다. 막 쏟아지는 생각을 글자로 받아 적을 뿐이다. 글 자체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빨리 쓰고 빨리 자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내일 덜 몽롱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쓰는 중에 아이도 몇 번이고 깨기 때문에 더더욱 빨리 써야 한다. 속도감 있게 써서인지, 적잖은 분들이 댓글로 '술술 읽혀요'라고 써주신다. 나의 생각을 막힘없이 적어 내려 간 탓에, 그 느낌이 읽는 이에게도 전해지는가 싶다. 어찌 되었든, 칭찬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고 감사하는 마음이 커진다.


   '내일은 종일 글만 쓸 것이다'라는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귀도 자주 본다. 하아, 제발 하루만 바꿔 주세요, 라는 생각이 마구 간절해진다. 대부분 직장 다니는 미혼 작가님이나 비혼의 프리랜서 작가님들이 저런 내용의 글을 쓰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글을 쓰는 기분은 어떨까. 해가 떠 있는 시간에 글을 쓰면 그 기분은 또 어떨까. 늘 아이들 재우고 졸음을 쫓아가며 안 방 화장실 불을 밝히고 변기를 의자 삼아 글을 쓰는 나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종일 글을 쓰면 머리가 아플까? 머리보단 어깨랑 허리가 더 아플 것 같은데. 종일 글을 쓰면 글감이 바닥나려나? 나는 글감이 차고 흘러, 글감 적어둔 쪽지를 잘 안 보게 되는데.. 자꾸 보면 쓰고 싶어 지니까, 쓰고 싶은데 쓸 시간이 없어 또 서러워지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괜히 '라이킷'만 누르고 빈약한 내 브런치로 돌아오게 된다. 글쓰기를 누르고 싶어도 누를 수 없는 나의 브런치. 조금 서글퍼지다가 이내 괜찮아진다, 막내가 호출하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기가 두려워', '글쓰기가 어렵다'라는 작가님들도 꽤 종종 만나게 된다. 나는 오히려, 나를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다 보니 글이 쉬이 쓰인다. 일상생활에서도 나는 충분히 나를 꽁꽁 싸맨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 저 쪽에 꾹꾹 눌러 담아 새 나오지 않게 밀봉한다. 야구가 보고 싶고 좀 자고 싶고 글을 읽고 쓰고 싶고 영화가 보고 싶고 운동을 하고 싶고 매운 것을 먹고 싶고 산책을 하고 싶지만, 이 모든 욕구를-일상의 가벼운 욕구들이다- 무시한다. 억누른다. 그렇게 산 지 꽤 되었다. 아내와 엄마는 하고픈 거 다 하고 살면 안 되니까 참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통해서만이라도 나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짜 내가 숨을 쉴 수 있고 나를 위한 나만의 처방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 역시 나를 드러내는 일이 달갑지만은 않다.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의 사람인지, 부족하고 모자라고 비겁한 사람인지를 내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드러내니까, 나의 상처도 드러나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상처가 드러나자 사람들이 공감해 주고 같이 아파해 주고 위로해 주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물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쓴다. 낮의 일상에 봉인한 나의 욕구들을 밤의 고요에 풀어헤쳐놓는다. 잠의 저편에 하루의 피로를 던져두고 아침의 문을 열면, 내 밤에 놓아준 욕구들을 좋아해 주고 함께 해 준 이들이 치유의 손길로 남긴 흔적을 맞이한다. 그렇게 또 내 안의 상처가 낫는다.


   상처 치유와 욕구 해소의 어느 즈음에서, 공모전을 헤매었다. 나의 글이 나를 치유하고 있었노라고, 글을 업으로 하는 이들에게 보이고 인정받고 싶었다. 또 다른 차원의 인정 욕구가 나의 밤을 간지럽혔다. '취미가 글쓰기'라고 하기엔, 잔혹할 정도로 치열했지만 그 치열함은 어느 정도의 결실을 맺었다. 나는 나의 상처가 치유되는 만큼 나의 글들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스무 살의 초여름, 그러니까 6월 기말고사를 앞두고 과 커플들이 책상을 돌며 손을 벌린다.

   "우리 오늘 100일이야. 100원 줘."

   당당하고 유치하고 풋풋한 그들의 손에 500원을 쥐어줬다.

   "500원짜리 밖에 없다. 500일까지 가라!"


   그 풋풋함을 내 손에도 어설프게 얹어, '100원 주세요' 하고 싶다. 이 밤의 잠에 빠져 있는 구독자 분들을 톡톡 깨워 '나 브런치 100일이에요, 100원 주세요' 하고 싶다. 100원 모아서, 내가 좋아하는 붕어빵 단팥, 슈크림 골고루 사서 나눠 드리고 싶다. 글이 주는 치유의 힘을 얹어서.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나의 브런치는 동면에 들지도 모른다. 나의 글이 웅크리고 깨어나지 못하는 사이, 그 시간 동안 나는 아이 셋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아침부터 샤우팅 하느라 목이 쉬고 그럴 것이다. 완전하게 엄마로서 기능하다가, 문득 글이 내 안의 진짜 나를 깨울 때 '민샤'가 되어 올 것이다. 그때 다들, 100원 주세요!






이러고 내일 뿅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제 주특기 중에 하나가 변덕 부리기니까요! 금방 돌아와도 미워하지 말고, 100원 주세요! 기승전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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