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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28. 2020

'작가'라는 호칭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기에, 오늘도 작가입니다

   2020년, 저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두 개나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도 쉽지 않은데, 두 개나 말입니다. 


   먼저, 마을 문집 작가입니다. 지난해 도서관 '북요일' 모임이 자연스레(책방지기 선생님의 큰 그림 아래) 글쓰기 모임이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작가 제안?! 을 받았을 때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약간의 주저함을 보이긴 했으나, 그 주저함 따위 의미도 갖지 못한 채 거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곁에는 5살과 24개월 갓 지난 3살, 그리고 100일이 지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님도 들어와 지내신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글이라니요, 글이나 쓰는 한가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스치듯 뵈었던 한 분이 개인 연락을 해 오셨습니다. 아이는 돌아가며 봐 드릴 테니 글쓰기 모임에 함께 하시길 바란다 하셨어요. 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없는 오지랖입니까! 실로 구원과도 같은 문자였습니다. 이 짧은 메시지로, 저의 인생은 전혀 다른 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민샤도 없었을 겁니다. 단지 폰 게임으로 육아의 빈 틈을 헛헛하게 채우는 아줌마만 있을 뿐. 

https://brunch.co.kr/@1kmhkmh1/15

   감사한 마음 받들어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매주 책 리뷰를 제출해야 하는데, 글 쓸 시간도 없는 제게 책이라니요. 급박하게 그림책 1분 만에 읽고 그 느낌을 카톡으로 써서 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쓴 것 같은 글들을 매주 내었습니다. 그러다가 틈틈이 읽은 책의 리뷰를 내기라도 하면, 괜히 뿌듯해하였습니다. 그것도 잠시, 다른 이들은 소설이나 산문집, 인문학 책을 읽고 리뷰를 내는데, 나만 그림책이나 겨우 에세이 한 권 읽고 카톡으로 글을 써내니 갈 곳 잃은 시기심이 가슴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막내만 없었더라면, 시어머니만 안 계셨더라면, 노트북만 있었더라면 저들보다 훨씬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써낼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다 아기 때문이야! 어머님 때문이야! 하며 잠들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 시간에 잘 자고, 다음 날 웃는 얼굴로 아이와 아침을 맞아야 했는데, 저는 태생이 속이 좁은 사람이라 그러지 못했습니다. 책과 글로 마음이 불편한 날은 유난히 더 밤의 속을 썩이곤 했습니다.

 https://brunch.co.kr/@1kmhkmh1/22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책방지기 님이 '시詩'를 써 보자고 합니다. 중고등 시절, 문학동아리 내내 쓴 것이 시였습니다. 이따금씩 기척도 않고 갑작스레 들어오는 시상詩想들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았습니다. 시, 그래, 나 시를 썼었지. 그러자 갑자기 시가 마구 쏟아졌습니다. 새벽 모유수유 할 때나 아이를 재우려 포대기를 하고 검은 방을 헤매일 때나 하얀 밥을 저을 때나 어린이집 하원 길에 돌연 시를 끄적였습니다. 출처도 모른 채, 아무 준비도 못한 채 다시 시들을 맞이했습니다. 나의 시가 시로 존재할 수 있는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보고야 만 것입니다. 인스타에 오른 '브런치 작가' 자랑 뿜뿜하는 사진들을. 

https://brunch.co.kr/@1kmhkmh1/36

   작가, 작가. 그런 것도 있나, 브런치 작가. 검색해 보니, 별 거 아닙니다. '브런치'라는 글 쓰는 곳에 글 쓰는 사람이고, 거기 글을 쓰려면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하면 됩니다. 게다가,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올리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흠, 아무나 하는 건가 보네. 앱을 깔아 봅니다. 훑어봅니다. 괜찮은 시를 많이 보게 됩니다. 나도 해 봐도 되겠네, 하며 살짝 지원해 봅니다. 살짝 지원해서인지 광탈합니다. 어쭈, 건방지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시는 계속 떠올라서 더는 지원해 볼 생각도 없습니다. 마음이 길어 올리는 시를 널어 말려야 했고, 마을 문집 글만 쓰기에도 벅찼습니다.

   봄과 여름이 되고 '오도독' 첫 결실을 손에 쥐었습니다. 제 필명이 들어간 책을 받아 들었지만 사실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쫓기듯이 읽은 책을 쫓기듯이 쓴 글들이었습니다. 이미 번역서나 공모전 당선 모음집에도 이름을 몇 번 올려 본 후였고, 동네에서 취미로 쓴 글 모은 책이 나왔다 한 들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페미니즘을 극도로 혐오하는 남편에게, 꽤나 여성주의적 위치에 서 있는 나의 글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더더욱 어디 보일 곳 없는 책이라 출간의 기쁨은 금방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잠깐의 여름 방학을 보내고, 겨울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 자꾸 책이 팔려 나갔습니다. 제주도로 광명으로 대전으로 대구로.. 내 글은 부끄럽기만 한데 누군가 사간다고 합니다. 훨씬 흥미로운 다른 작가님들의 글만 봤으면 좋겠다, 내 부분은 찢어 버리고 판매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겨울호 글들을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겨울호는 조금은 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트북이 생겼고, 네 번 만에 브런치 입성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https://brunch.co.kr/@1kmhkmh1/14

   네, 그렇습니다. 저는 마을 문집 '오도독' 작가이면서, 하반기에는 '브런치 작가'까지 이력에 추가하게 된 것입니다. 매주 쓰는 글은 자신 없던 리뷰와 더불어 소재 글쓰기, 장소 리뷰처럼 다양해졌습니다. 문집 글도 쓰고 브런치 글도 쓰고 하다 보니, 신나서 공모전 글도 썼습니다. 크고 작게 결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여러 작가님들과 소중하게 인연을 맺으며 글을 쓰고 있고, 공모전 수상작을 브런치로 내놓을 수 있게 되었으며(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낙선작은, 부끄러워서 노트북만이 품어주고 있습니다), '오도독' 겨울호가 판매를 앞두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1kmhkmh1/40

https://brunch.co.kr/@1kmhkmh1/55    



   작가作家. 글을 쓰는 모든 이는 작가입니다. 문집 발행 주관자인 책방지기 님도 그렇게 힘을 주시고, 교류 중인 수많은 브런치 작가님들도 글을 쓰는 우리 모두 작가라고 말해줍니다. 브런치 또한,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을 주고 글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오도독 작가', '브런치 작가'라고 나의 필명들(그렇습니다, 복수입니다) 뒤에 숨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서 들여다보게 됩니다. 바람이 휑휑 드나들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역시나 속이 좁은 사람인 까닭에, '출간 작가'만을 진짜 작가로 인정하고 싶어 합니다. 책 한 권 제대로 못 내고 어딜 함부로 '작가'를 들이밀어. 어디 감히 '작가' 운운하며 글 쓴다고 하는 거야. 

   브런치에는 출간 작가 분들이 많습니다. 마을 문집 작가분 중에도 출간 작가가 계십니다. 그런 분들과 어깨 나란히 해 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어깨만 빠질 듯이 아픕니다. 그래도 브런치에 글도 쓰고 출간 작가 분이랑 책도 내잖아. 너도 아주 나쁘진 않을지도 몰라. 정말? 바닥 좀 봐. 어깨동무한답시고, 발이 동동 떠 있잖니. 한참 더 크고 오너라. 

   괜히 초록창에 '독립출판'을 쳐 봅니다. 강의도 있고, 사이트도 있습니다. 어찌어찌하면 책 한 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제목이랑 목차를 가슴속에 탁탁탁 치고 있습니다. 1쇄에 벌써 1,000부 나갑니다. 2쇄를 찍는 중에 대형 출판사에서 연락이 옵니다. 그러다가 막내가 똥 내음 풍기며 다가옵니다. 2쇄를 찍다가 이 쇠똥구리 같은 녀석에게 현실로 호출당합니다. 엄마, 어디 감히 나를 두고 출간을 꿈꿔?!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일개 엄마 나부랭이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글을 쓸 때면, 글을 쓰는 생각을 할 때면 자꾸 잊게 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애셋 엄마. 이 엄중한 현실이 자꾸만 저로 하여금 제 발을 보게 합니다.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 어디인 지 보게 합니다. 주방, 욕실, 세탁실, 어린이집 앞. 그렇지, 엄마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 엄마. 

   그럴수록 지난 해 도서관 입구 현수막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나도 작가다'. 3월부터 글쓰기를 해서 연말에 책 한 권 출판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현수막 앞에서 조금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셋째 임신하고 딱 일주일 후였습니다. 9월에는 아이를 낳고 동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그때도 퇴고와 편집을 해야 하는 거겠지. 그 과정 내내 매주 금요일 저녁 7시마다 도서관을 가야 하는 데, 밤 외출이 아예 불가능한 제게 그건 판타지와도 같았습니다. 그래, 뭔 책이야, 뭔 작가야. 애나 잘 낳아 키워. 그때도 내 발 밑을 보았는데, 2년이 지난 지금도 내 발이 디디고 있는 곳만 보고 있습니다. 또 의미 없고 서러운 질문들이 가슴 여기저기서 무례하게 삐져 나옵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해서,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살아야 하지? 나만 이런가?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나, 뭐가 잘못된 거지? 아이들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닌데, 나 왜 자꾸 불행한 것만 같지? 


   서러움이 가득 차 눈으로 흘러내리려 할 때면, 브런치 작가님의 어느 댓글이 서러움을 쓰다듬어 줍니다. 

'박완서 작가님도 마흔 넘어 아이들 재우고 난 뒤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는데, 작가님도 그러시네요' 

   박완서 선생님처럼 대작가가 될 재능도 없고 야망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그분이 밤을 밝혀 글을 쓰신 마음, 그 댓글을 달아주신 작가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내 안의 서러움들이 황급히 진정됩니다. 이제 '출간 작가'라는 말은, 제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출간은 그저 글쓰기의 또 다른 형태의 결실일 뿐입니다. 저는 이미 많은 글쓰기의 결실을 맛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 마음 돌보고 일으켜 주고 보듬어 주는 글쓰기를 하는 것', 이 자체만으로 저는 충분히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로 그러합니다. 나아가 마치 저 스스로 대문호가 된 듯한 기분도 듭니다! 제 글이 저를 치유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의 문학이 나를 어루만지는 데, 이 어찌 작가가 아니겠습니까. 비로소 글을 쓰는 자체로서, 진정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책은, 언젠가 기회와 조건이 된다면 내어볼 수도 있겠지요, 그럴 날이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제가 좀 더 무르익어서 어떤 글을 써 내도 읽는 모든 이가 끄덕거릴 수 있는 그런 때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너무 설익어서 맛도 없고 떫기만 해서 퉤퉤 뱉어내야만 하는 글입니다. 여기저기 불편한 구석이 많은 글입니다. 이런 글로 부끄러운 책을 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지막 페이지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 오고 구수한 보리차 향이나 때로는 향긋하고 오래가는 모과 향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책을 낼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내지 못한다 해도 그저 쓰겠습니다. 엄마로 살다가 자주 혹은 가끔 작가로 살다가, 어느 날 '출간 작가'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 품고 그저 쓰겠습니다. '쓰고 있기에 작가'로 지내겠습니다. 


  


그런 제가, 작은 결실을 내보일까 합니다. 

오도독 겨울호가 1월 중순 판매됩니다. 브런치 작가 '민샤'로 쓴 글도 있지만, 대부분 글은 오도독 '임 작가'가 쓴 글입니다. 그 외에도 평범한 이들의 평범해서 특별한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참으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얼마나 부족하기에 그러나' 궁금하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시면 저자 할인가(10% 저렴합니다)로 구매 도와 드리겠습니다.(갑자기 분위기 판매 영업) 출판 매수 자체가 많지 않아 다섯 권 정도만 감사의 말씀 직접 담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2020년 가을과 겨울을 가득 담았습니다. 

시골 책방 '오월의푸른하늘'이 내고, '임 작가'인 브런치 민샤의 글과 그의 문우들이 함께 한 두 번째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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