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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31. 2020

육아는 장비빨, 내 글은 브런치빨!

브런치와 구독자분들께 감사의 마음 듬뿍 담아

   초록창에 '국민 문짝'이라고 치면 나오는 유아용품이 있다. '러닝홈'이라는 완구인데,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길게는 36개월까지도 잘 가지고 논다고 한다. 육아하는 친구들 집 어디를 가도 이 것 없는 집은 못 봤다. 딱 한 집, 우리 집만 빼고 말이다.


   경제권이 남편에게 있다 보니,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것에 많이 주저되었다. 육아용품들은 대부분 사용 기간이 짧고, 은근히 비싸다. 나는 육아용품 사용에 익숙지 않은 엄마이다. 그 육아용품들을 열심히 사용하며 아이를 볼만큼 육아에 열성적이지 않다. 대부분은 아이를 방치하고, 아이가 짜증내면 같이 짜증 내는 식의 육아를 한다. 아주 불량한 육아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큰 문제없이(정말?!) 크고 있어서 (나 편한) 내 위주 육아를 하고 있다.

   국민 문짝 러닝홈을 비롯해, 쏘서 보행기도 없이 아이 셋을 키웠다. 점퍼루는 첫째 때 한 번 대여하고 둘째 때 맘 카페 드림받아 몇 달 썼다. 창고에 방치했더니 곰팡이가 피어서 미련 없이 버렸다. 국민 치발기라는 기린 치발기도 받아봤으나 어디 뒀는지 깜빡하고 치발기 써야 하는 시기를 지났다. 신생아 필수템 스와들도 한 번 안 입혀 보고 그저 배넷저고리로 키웠다. 신생아 욕조 또는 아기 욕조 같은 거 없이 그냥 큰 대야 하나, 작은 대야 하나 물 받아 씻겨 키웠다. 모유 수유했기에 분유 워머포터, 젖병건조기  분유 관련한 육아용품에는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셋째 때는 마지막 육아여서 이것저것 남들 다 쓰는 육아용품 써보고 싶었다. 조리원에서 나와, 아파트 커뮤니티 카페에서 슬링 드림받아 몇 번 아이를 품어 봤다. 아기 비데를 쓰기에 이미 나는 그냥 안고 응가 씻기는 게 더 편했다.(덕분에 손목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머미쿨쿨이불을 사기에, 집에 돌아다니는 베개 한두 개면 모로 반사는 해결되었다. 둘째 때만 해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셋째를 낳아보니 역방쿠(역류방지쿠션)가 필수품이었다. 조리원을 나오면서 꼭 사야지, 했건만 검색해 보니 5만 원이 넘어서 또 주저주저했다. 뒤집기 하기 시작하면 쓸모없다는데, 100여 일을 위해 5만 원을 낭비?! 하기 싫었다. 다행히 옆 동 친구가 첫째 때 쓴 거 있다기에 일주일 대여를 해 보았다. 쿠션이 많이 죽은 역방쿠여서인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쇼핑 목록에서 미련 없이 삭제!

다시 쓸 일 절대 없을, 역류방지쿠션(아이들이 잘 게워서, 자는 동안 역류하지 마라고 조금 세운 듯이 신생아를 재울 수 있는 역류방지쿠션)

   오히려 셋째를 키우며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포대기'였다. 시어머니와 1년을 함께 지내면서 포대기가 필수품이 되었는데, 지내보니 포대기만큼 편한 육아용품이 없다. 뒤로 업기 때문에 두 손이 자유로웠고, 아이는 등에서 놀자 곧잘 잠들었다. 익숙해지면 눕히기도 편했고 깊이 잠든 아이는 꽤 오래 낮잠을 자주곤 했다. 아기띠와는 차원이 달랐다. 왜 이걸 이제 제대로 알게 되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럴수록 나는 육아용품계에서 '퇴화의 아이콘'이 된 것만 같았다. 둘째 때 중고로 샀던 모빌마저 막내 6개월 즈음에 고장 나서 처분해 버렸다. 애셋 키우는 집 치고 이렇게 휑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자리 차지하는 육아용품 없이 아이들을 키웠다. 미니멀리스트인 건 아니지만(매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나, 애셋 키우면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적잖이 힘들다), 적어도 육아용품에 있어서는 의도치 않게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첫째 때 만원에 우리 집으로 와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다른 집으로 드림 간 K-포대기


   덕분에, 나의 육아는 몸이 고됬다. '육아는 장비빨'이라는 대진리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서도 나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의 몸이 힘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또는 도움이 되는 장난감이나 용품이 있을수록 덜 고되고 덜 아프다. 그러나 '장비'없이 키우다 보니 내 육아는 더욱이 힘들었다. 게다가 남편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였기에 고되고 수고롭고 아프고 고독했다. 자꾸만 그 서러움과 고됨의 원인을 밖에서 찾았다. 돈이라도 많이 주면 나도 남들처럼 육아용품 뿜뿜해 가며 편하게 육아할 텐데. 남편이 조금이라도 도와주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텐데. 모두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에, 그 불평들은 고스란히 내 안에서 우울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내 안의 우울은, 외부에서 찾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게끔 하다가 결국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다 내 탓이야, 내가 잘못 키워서 그래, 내가 능력이 없어서 그래, 내가 소질이 없어서 그래, 내가 미련해서 그래,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난 잘할 수 있는 게 없어, 나처럼 못난 엄마, 못난 사람이 또 있을까. 우울과 자책은 나의 '자화상'을 벌레로 만들었다. 밟으면 꿈틀댈 힘도 없어 꿈틀대지도 않는, 자기 혼자 죽을 방법도 모르고 그저 살아있기만 하는 벌레.

   육아용품 운운하다가 벌레까지 되어 버렸다. 참 이상한 의식의 흐름이지만, 정말 그러했다. 애 키우면서 남들 다 쓰는 육아용품 쓰지도 못할 정도로 능력 없는 엄마, 능력 없는 나. 그렇기에 그 모든 육아의 수고를 몸뚱이로 받아내고, 그 까닭에 비루한 몸뚱이가 벌써부터 많이 삐그덕거린다. 수리할 곳이 넘쳐나지만 수리할 시간이 없다. 모든 원인은 역시나 나였다. 남편한테 이것저것 더 필요하다고 박박 악이라도 써야 했다. 미련 없이 할 거 다 해보고 속 시원하게 아이 키워야 했다. 답답이 맹꽁이마냥 이것저것 해보지 못하고 속으로 자기 자신이나 미워하고 있었다. 우울해지는 건, 쉬운 일이었다.






   육아는 장비빨 받지 못했어도, 다행스럽게도 내 글은 브런치빨을 받고 있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진다.

육아로 자존감이 바닥일 때, '이렇게 살다가 빨리 죽어버려야지'라고 매일같이 생각하던 때 구원같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브런치에 입성했고 노트북이 쥐어졌다. 막혀있던 숨통을 틔워야 했다. 살아야 했다. 벌레에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을 줄이며 글을 썼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축복 같았다. 종교는 없지만, 나에게 신이 있다면 그것은 '글'이었다. 쓰는 시간만큼은 축복받았고 은혜받았다. 글은 나에게 대자대비를 베풀었으며, 육도윤회의 굴레에서, 무간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https://brunch.co.kr/@1kmhkmh1/17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나날이 이어졌는데, 브런치는 내게 생각지도 못한 두 가지 선물을 더 주었다. '작가님들과 소통'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을 쓰는 마음, 방법, 글에 대한 어려움, 글에서 오는 기쁨을 서로 말했다. 글로 풀어내는 일상을 주고받았다. 위로와 용기, 응원, 감동과 공분이 넘쳐흘러내렸다. 내 육아의 고통은 문맥 사이에서, 작가님들과의 교류 어느 즈음에서 어렵지 않게 녹아내렸다. 난리 나는 브런치 생활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브런치 글 쓰니,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브런치 글쓰기의 행복은, 몇 번의 조회수 폭발로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브런치는 나의 글들을 대중에게 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공간에 예상치 못한 글들을 드러냈다. 적게는 몇 천, 많게는 몇십만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었다. 적잖은 이들이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감동해 주고 응원해 주고, 그 마음을 역시 '글'로 표현해 줬다. 내 글이 브런치를 통해 읽히고 있었다. 내 글들이, 브런치빨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50개가 넘는 글 가운데 10개가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올랐다. 때로는 한 나절, 때로는 며칠씩. 도대체 어떻게 드러나는가, 나름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와, 글이 작품이 된다더니 정말 꽤나 그럴듯한 글이 되었다. 워드 프로그램에 자판을 두드리면 그저 '흰 바탕 검은 활자'로만 고체화될 글들이, 적절한 사진과 구성으로 꽤나 멋진 '시각화'를 갖게 되었다. 정말 '작품'처럼 느껴졌고, 먹어보고 싶은 '브런치'같은 글로 여겨지게 되었다. 브런치의 여러 작가님들에 비하면 한참 많이 부족하지만, 나는 그저 나만의 기준으로 나의 글들을 아껴줄 수 있게 되었다. 요즈음의 나는, 절망에 가까웠던 일상을 희망 쪽으로 끌어다 준 글들, 그리고 그 글들이 일상의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해 준 브런치의 힘으로 육아의 고됨을 너끈히 헤쳐나가고 있다.  

최근 '브런치빨' 받은 나의 글들. 관종답게 보일 때마다 깨알같이 캡처해 두었다.


   지난 6년의 시간 동안 나의 육아는 장비빨 제대로 받지 못해(꼭 그 때문은 아니긴 하지만) 구렁텅이에 빠져있었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나의 글은 브런치빨 제대로 받아 빛나고 있다. 4개월의 글이 6년의 육아를 보상해 주고 있다. 나의 글과 브런치는 나를 벌레에서 인간, 나아가 '글쓰는 민샤'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많은 이들에게 내 글을 보여 준 브런치는, '너 글 계속 써도 돼', '다른 이들에게 너의 글이 힘이 되어 주고 있어', '너 나쁘지 않아, 꾸준히 써 봐'라고 토닥토닥해 주고 있었다. 2020년, 세 아이 육아와 코로나로 희망 따위 전혀 없을 것만 같던 내 삶에 글과 브런치가 다가왔다. 그 글에 희망과 행복과 공감, 희열이 있었다. 그리고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 이거면 됐다. 내 앞날에 다른 장비는 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글쓰기, 이것으로 내 앞에 놓인 육아와 일상을 지탱해 나갈 것이다.


   다가올 새해가 기대된다.







부족한 제 글 읽느라 소중한 시간 써주시고 댓글 달아주시고 마음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어리숙하지만 진심 담아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2020년 해끝 잘 보내시고, 다가오는 소의 해 우직한 마음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브런치 민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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