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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27. 2020

내 삶의 향기가 당선이 되었다

기대도 않던 공모전에 당선되다

노트북 사고 신나 하던 9월, 군인가족생활수기 응모하고 나니 마음이 허해졌다. 나는 최신 노트북까지 있는데, 글 안 쓰고 못 배기겠는데! 브런치는 브런치고, 마치 사냥꾼처럼 글 쓸 곳을 두리번거렸다. 공모전을 두리번거리다가 '동서문학상'에서 멈칫했다. 그래, 여자로 태어나 글 쓴다 하면 동서문학상 한 번은 건드려 봐야지.(건방지기가 이를 데가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시상내역이 가장 눈에 띄었다.(나만 이런 거 아니길 바란다.) 당선은 못될지언정 내보기라도 해야 했다. 나는 노트북이 있으니까.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글을 쓸 수 있는데, 동서문학상 같이 멋진 공모전에 응모도 안 한다면 내 노트북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를 맘껏 혹사시켜 주겠어!


그동안 써둔 시들을 만지작거렸다. 공모전의 꽃은 시라고 생각했다. 소설은 내 영역 밖의 영역이고, 동화나 동시는 부모가 물려준 인자가 없다. 시 아니면 수필인데, 수필은 길게 써야 한다. 귀찮고 시간도 없다. 시를 열심히 가다듬어 8편을 응모했다. 나름 추리고 추려 시적 허용과 은유를 내 멋대로 품은 시들을 응모했다. 3편인가 5편 이상이지만,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8편 응모했다. 욕심이 차고 넘쳤다.

응모하고 나니 중복 응모가 가능하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어차피 건드린 공모전, 끝을 파보자. 수필은 두 편 이상이었다. 바로 글감이 떠올랐다. 둘 다 주제는 아빠였다. 참... 친정아빠는 어지간히도 애증의 대상이다. 3,4일을 애들 재우고 열심히 썼다. 그 와중에 브런치도 쓰고 오도독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코피가 날 만 했다.

https://brunch.co.kr/@1kmhkmh1/33


수필 분량이 2,000자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아이들 재우고 채우기에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잠을 줄이며 쓰고 읽고 퇴고했다. 시간이 부족하여 두세 번만 읽고 퇴고해야 했다. 그래도 한 번은 검증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동생에게 보여줬다. 동생은 '잘 썼네' 정도의 반응을 보여주며, 응모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정도 반응이면 됐다, 싶었다. 책도 많이 읽고 나름 객관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기에, 나 스스로 응모의 7부 능선은 넘은 느낌이었다. 며칠간 이루어진 '글쓰기 혹사'로 나도 지쳐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응모해 버리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




야심 차게 써서 냈던 군인가족생활수기에 낙선했다. 2,3회에서 보란 듯이 입선하고 상품과 상금도 받고 국방 라디오 출연도 하고 즐거운 기억이 많았던 터라, 아쉬움이 가을 하늘만큼 컸다. 응모하고 난 후에야 알았지만, 강원일보에서 주최하여 '도내' 국군과 군인가족 대상이었기에 그들의 작품이 다 당선되었다. 나는 군인가족이 되고 나서 경기도를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그 심사위원들 눈에 들리 만무했을 것이다.(게다가 내용은 미군 복무로 인해, 광명-성남-평택-이천 이사 다닌 이야기다. 보란 듯이 경기도만 나열했다. 경기일보 군인가족생활수기 공모전이 시급합니다.)

https://brunch.co.kr/@1kmhkmh1/31

쳇, 강원도 끼리 잘해봐라, 강원도 아니고 전국 공모전이었으면 최소 대상이다, 이런 옹졸한 마음으로 정신 승리하려 노력했지만, 허탈함은 어찌할 수 없었다. 바닥 친 자존감을 질질 끌며, 작은 공모전을 돌아다녔다. 문화상품권 상품이거나 1등 10만 원 이런 공모전만 찾아 헤맸다. 그래도 그런 상금과 부상이 있어야 글이 써질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공모전을 찾아다닐수록 자존감은 더 지하로 파고들었다. '그냥 브런치나 열심히 해. 무얼 공모전에 내보겠다고.. 그 시간에 애들이나 돌봐' 내 안의 '엄마' 자아가 고개를 들고 노려보았다. 몇몇 점찍어둔 작은 공모전들은 그렇게 지금도 내 목덜미와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응모해봤자 당연히 떨어질 건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잠이나 자.


10월의 마지막 월요일. 뭔가 있는 날인데.. 싶었지만 뭔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남편이랑 대판 개싸움을 하는 꿈을 꾸고 아침 내내 머리가 띵 하는 것을 매 순간 느끼며 오전을 보냈다. 믹스 커피를 휘젓다가 생각난 것이다, 아 동서문학상! 오늘이 수상작 발표날이었다. 굳이 볼 필요도 없었지만, 어떤 제목을 쓴 어떤 이름을 가진 자들이 수상했나 보기로 했다. 상처 받을 것도 없었다, 나는 당연히 안 될 거니까. 9조억 분의 1 정도의 기대는 있었으나, 그 기대가 힘없이 내 안에서 휘발되는 것을 보고는 동서문학상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역시, 멋들어지는군. 나와는 상관없으니 더 그렇게 보이는군.


시시시시시시... 역시나 없다. 그럼 그렇지, 하고 다른 부문을 둘러보았다. 문학의 향기 폴폴 풍기는 제목의 수상작들이 줄지어 있었다. 부럽다, 이런 글을 써내는 저 이름들이. 그런데 입선 수필의 가장 마지막에 많이 보던 이름이, 작품명도 많이 보던. 진짜?? 나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약 2시간여 만에 다 쓴 글이었다. 200자 원고자 10장 분량을 막힘없이 쓰고는, 3번 정도 읽고 퇴고하고 동생 보여주고 미련 없이 응모한 글이었다. 차라리 다른 한 편이 더 정성 들여 쓰고 많이 읽고 고치고 또 고쳤다. 그 글 말고, 더 들여다보기 싫었던 글이 떡하니 당선작에 포함되어 있다.

수필은 응모작이 3,171편이었다고 한다. 금은동상과 가작과 입선 10편으로 따져 보면, 3171 편 중 21등을 한 셈이다. 도대체 왜? 저 못난 글이 왜?

그동안 동서문학팀이 지원한 멘토링 클래스나 여러 이벤트를 한 번도 참여하거나 들어본 적도 없이, 그냥 무식하게 써서 지원했다. 검색해 보면 이 공모전에 몇 차례 응모하시는 분도 계시고, 공모전 스터디를 하시는 분도 많아 당연히 안 될 줄만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당선과는 거리가 있는 글 같이 느껴졌다.


내 유년의 가난에 대한 글이었다. 가난은 글쓰기의 좋은 소재다. 마음의 생채기가 아물기가 쉽지가 않다. 가난은 거시적인 삶과 미시적인 일상을 모두 덮어 버리니까. 그 흔적은 오래 남는다. 그 흔적에 대해 썼다. 다시 읽어 보니 울적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 울적함이, 7살짜리가 품었던 가난의 구석이 심사위원들에게 모퉁이를 만들었나 보다. 부모의 가난이 못났다고 쓴 글이라 부모님께 당선됐다고 자랑도 못하겠다. 동생과 남편에게만 당선을 전했다. 못난 글이라 축하도 많이 못 받겠다.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어디 말도 안 해서 더더욱이 당선 소식을 알릴 데도 없다. 글만큼 가난한 당선이다. (그래도 괜히 축하받고 싶어 이렇게 구구절절 쓰고 있는 것이다. 참 못났다.)




브런치 작가로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글을 잘 쓰는 작가님들과의 교류가 너무나도 즐겁다. 보고 배울 글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공모전에서 인정받아 보겠다고 빽빽 거렸다. 내 안의 인정 욕구가 나를 괴롭혔다. 일희일비가 가득한 나날을 보냈는데, 오늘이 '일희'의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 내일은 또 아무렇지 않은 하루로 보낼 것이다.

그래도 또 다른 의미로서의 작가, 공모전 당선 작가의 타이틀을 하나 더 보태게 되었다. 죽기 전에 내 이름 하나만 쓰인 책을 내보자, 라는 작은 꿈(요즘은 정말 작은 꿈이 되었다, 글을 쓰시는 분들은 다 책을 낸다.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다들 잘 쓴다. 그들 사이에 괜스레 껴보고 싶은 욕망이다.) 다가가는데, 반보 정도 내디뎌 본 기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 공모전 수색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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