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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an 27. 2021

내 글쓰기의 원천(源泉)

늘 머리맡에 두고 잠이 들었던 종이뭉치 그리고, '쓰고자 하는' 마음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읽지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육아이다. 사정상,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셋을 혼자 키우다 보니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물론 하루 10분, 15분의 짬을 내서 읽을 수는 있지만 책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두고 읽고 싶다. 흠뻑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독서를 좋아하다 보니, 감질나게(?!) 읽는 것은 나와는 안 맞다. 그리고 사실, 책을 읽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책에 빠져드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 20분 이상 읽어야 제대로 글이 읽히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읽는 행위' 자체가 쉽지가 않다. 예를 들자면, 계속 같은 줄을 읽거나 읽은 문단을 다시 읽는 식이다. 한 페이지 읽고 남은 페이지 수 확인하고, 한 페이지 읽고 그다음 페이지가 궁금해 미리 2-3페이지 뒤적거리는 식이다. 이렇게 읽다가 활자가 매끄럽게 읽히기 시작하는 게 평균 20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20분의 여유가 없다.(여유가 있을 땐,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이유들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지 꽤 되었다. 막내 임신 때 책을 읽고 못 읽었으니 1년 반의 시간 동안 책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요즈음 나의 생활에 활자는 티브이 예능 자막과 카톡, 그리고 브런치 작가님들 글이다. 브런치 없었다면 사실상 문맹 수준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글을 읽지 않으면서 글을 쓰는 나의 생활과 태도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 비슷한 감정에 늘 시달려 왔다. 함께 글 쓰던 이가 말해 주었다, '독서의 최종 목표는 글쓰기'라고. 나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으나, 긍정의 대답을 하거나 하다 못해 끄덕거리지도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나는 독서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텅 빈 글쓰기. 그러다 보니 내 밑천이 드러나는 글을 써야 했다. 나를 뒤집어 내고 발가벗기고 내 안의 것을 꺼내는 글쓰기. 그러나 그 글쓰기가 너무나도 술술, 쉬이 쓰여 더 난감했다. 책을 읽지 않으나 글은 잘 써졌다. 그에 대한 변명에 대해서도 글을 썼다.


https://brunch.co.kr/@1kmhkmh1/23


   30분, 한 시간이면 뚝딱 썼다. 퇴고도 한두 번 읽으면 더 손댈 것이 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매일 쓸 수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하루 종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글 쓸 소재, 글 쓸 마음과 에너지, 글 쓸 공간(식탁과 '브런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데 딱 하나, 시간만 없다. 그래서 잠을 줄인다. 그렇게 쓰고 나면, 다음날 머리는 띵하지만 마음은 개운했다. 글을 써낸 마음으로 며칠을 살 수 있었다. 마음이 턱턱 막히고 머리가 꽉꽉 채워지면 다시 잠을 줄여 글을 썼다. 사실 이 과정은 매일이었다. 월요일-오도독, 화요일-공모전, 수요일-브런치, 목요일-쓰러져 잠, 금요일-브런치 이런 식이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아직 글감 수첩은 그득하다. 그래서 또 쓴다. 역시나, 쉬이 쓰인다.


   이상한 일이다. 인풋의 글 없이, 도대체 나의 글은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중고교 문학동아리 6년? 그렇다고 하기에 그건 너무 오래전 일이고, 문학동아리는 즐겁기도 했지만 지겨웠던 기억이 더 많다. 내 글의 원천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보다가, 드디어 답을 찾았다. 답은 멀리 있었다. 무려 30여 년 전이었다.






   국민학교(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4학년 어느 날, 피디ㅅㅊ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본 다음 날이었다. 아침에 아빠가 신문을 가져왔는데, 전날 본 주제가 1면에 있었다. 단숨에 읽었다.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한 건 그날부터 10년 넘게 내 꿈이 '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티브이 시사고발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른 심층보도였다. 읽는 내내 나는 그 사건의 전말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있었다.(그렇게 느껴졌다.) 이렇게 글로 세상에 알리고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글로 사회를 보고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날부터 나의 곁에는 늘 신문이 있었다. 매일 신문을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재미있었다. 신문에는 사회의 부정부패와 고발뿐 아니라, 전 세계 소식,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감동적인 우리 이웃의 사연이 가득했다. 하다 못해 광고마저 재미있었다. 늘 아빠보다 신문을 먼저 봤다. 내가 본 신문을 내 방에 두어서 아빠가 신문을 찾기도 했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은 국민학생 때처럼 매일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신문을 보지 못한 날은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어느 날은 못 본 신문들을 몰아서 보기도 했다. 신문 못 보았는데 아빠가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괜히 짜증을 내었다. 아빠, 신문 버리지 마, 내가 보고 버릴게. 못 본 신문이 마늘 다듬는 데 밑에 깔리거나 삼겹살 굽는 데 기름받이로 쓰이면 그 역시 화를 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쓰냐고, 나 못 본 거라고. 어느 순간 아빠는 신문을 버리지 않았고, 쓸 일이 있으면 꼭 딸에게 묻고 사용했다.


   대학을 다니면서는 본격적으로 신문을 봤다. 기숙사 문 앞에 기본 2개 신문사의 신문이 배달되었다. 아침에 못 보면 저녁에 보았다. 중국어 전공이었는데, 언어는 문화에 기인한다는 생각에 '중국'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무조건 오리고 잘라 스크랩했다.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신방과와 정외과를 복수 전공하며 기자 준비에 들어갔을 때는, 메이저 5개 신문사의 신문을 매일 읽었다. 모든 기사를 읽었으니, 하루 평균 4시간을 신문을 보는 데 썼다.

사진출처 미디어오늘


   시간이 부족하니, 등하교 버스에서는 무조건 신문을 봤다. 아무래도 앞자리가 흔들림이 약해서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서 신문을 보곤 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기운 넘치는 소리로 '요즘 젊은것들은 어르신을 봐도 자리도 안 비키지!'하고 목청을 높이는 일이 있었다. 나는 신문에 얼굴을 파묻은 채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슬쩍 보니 등산가방을 메고 허리가 꼿꼿한, 머리만 하얗게 센 분이셨다. 지팡이 하나 없이, 분기탱천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요즘엔 '꼰대'라는 말이라도 있지만, 그때는 무조건 젊은이가 잘못하던 시절이었다. 쪽팔림이나 죄송함보다는, 깊이 있게 읽어 내려가던 기사의 흐름이 끊긴 것이 더 속상했었다. 어쨌든, 버스에서 앉아 신문을 보면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선 상태였다. 한 손은 손잡이나 등받이를 잡고 한 손은 칼럼만 볼 수 있게 접어 짧은 기사를 읽곤 했다.

   도서관에서 신문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민폐지만, 어쨌든 큰 책상에서 늘 두 개의 신문을 양옆에 하나씩 펴놓고 보았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도서관 하얀 형광등 아래 그렇게 앉아 형광펜 잡아들면, 그때부턴 나만의 세계가 펼쳐졌다. 내 미래도 하얗게 빛날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은 1면 헤드라인을 모조리 비교 분석하고 어느 날은 맨 뒷면부터, 어느 날은 국제 면부터 보고 어느 날은 각 신문사의 사설을 하나씩 다 필사하곤 했다. 기자가 되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즐거웠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신문 냄새가 좋았고, 점잖은 척 글 쓴 기자들이 뒷면에 숨긴 칼날을 찾아 함께 갈아보는 기분은 더 좋았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매일 글을 쓰며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이들의 글을 나 역시 매일 3-4시간씩 온몸으로 흡수하고 있었다. 그 세월이 장장 10년이었다.


   기자의 꿈을 접고 난 후에도 신문은 계속 보았다. '기자'라는 직업으로서의 삶의 목표가 없어져도, 신문을 보는 삶의 습관은 나를 여전히 신문 앞에 앉혔다. 다섯 개씩 보다가 하나씩 보니 허전했지만, 빈 시간을 운동이나 명상으로 채웠다. '사회'로 향하던 내 시선을 '내 안'으로 거두어들이는 데에 집중하기 위해 꿈을 바꾸었으니, 그런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취업을 하고도 늘 신문은 곁에 있었다. 특히 머리맡에 두고 자던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신문이 머리맡에 없으면 괜스레 불안했다. 차마 다 읽지 못한 기사를 다음 날 눈뜨면 보려고 머리맡에 신문을 두던 습관은 20년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이 습관은, 결혼과 동시에 고쳐야 했다. 남편은 '언론'에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신혼 때는 그걸 모르고 구독을 했다가, 신문에 대한 그의 태도에 눈치를 채고 구독을 끊었다. 마음이 너무나도 허전해 도서관으로 가서 신문을 읽고 오곤 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가졌고, 자연스레 신문을 보는 삶은 멀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매일 게걸스레 신문지면 상의 활자를 먹어치우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래. 나의 글은 모두 그 시간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물며 출간 작가들도 글을 쉬는 때가 있는데, 신문기자들은 기사의 길이만 다를 뿐 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글을 나 역시 매일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의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근래 6년의 시간을 활자를 가까이하지 못했을 뿐, 나의 그 전의 시간은 활자로 꽉 차 있었다. 비록 신문 기사 작성과는 결이 전혀 다른 글쓰기를 지금 하고 있지만, 어쨌든 '글'이라는 세계에서 나의 외연은 그때 많이 넓어져 있었다. 나는 그 영역에서 이제야 헤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자재로 헤엄치기에 수영 실력은 본래 부족하고 아직 배울 것이 한참 많지만, 그래도 내 앞에 바다는 펼쳐져 있다. 내가 만들고 일구어낸 바다이다. 이 바다가 얼마나 넓은 지는, 지금부터 확인해 볼 일이다.




   그러나 이 것만 가지고는 글을 쓸 수 없다. 아무리 바다가 넓어도 '헤엄칠 마음'이 없으면 바다는 그저 관상용일 뿐이다.





   브런치로 옮겨오면서 개장휴업 상태가 된 블로그를 훑어보다가, 지난해 8월 글에서 멈칫했다.


나 이런 사람이었구나, 글이 쓰고 싶어 우는 사람.
글이 쓰고 싶어 잠들지도 못하는 사람.


   웃겼다, 글이 쓰고 싶어 울다니. 그 웃긴 사람이 나였다. 약 보름 후 노트북을 사게 되었고, 나는 '첫 문장 고민하며 쓰고 마지막 문장도 고민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운이 좋게 여기저기 내보이게 되어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도 보내주신다. 생각보다 꿈은 빨리 이루어졌다.


   사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 그 자체의 원천은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냥 이건, 기자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DNA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소설을 돌려 쓰면서도 친구들은 '그냥 너 혼자 쓰면 안 돼? 너 쓴 것만 보고 싶어'라고 했던 기억, 교과서에 피천득 수필을 앞에 두고 혼자 훌쩍 거리며 속으로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일, 6년 내내 문학동아리를 장을 맡았던 사실 이런 것들도 나름의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나는 그냥 쓰고 싶은 사람이었다. 

https://brunch.co.kr/@1kmhkmh1/15


   바람에 행복하면 그 바람-방향과 온도, 바람이 쓰다듬은 내 볼과 그 부드러움, 마지막에 묻어난 아쉬움-에 대해, 야구장에서 맛보는 삼중살의 짜릿함에 대해, 혼자 떠맡는 육아의 처절함에 대해 그저 써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다. 내일 아침 내 마음은 또 20그램쯤 가벼워질 것이다. 나의 이런 마음이 일상의 모든 것을 글감으로 긁어모으고, 그러면 글 쓰는 마음의 무게는 다시 묵직해지고 만다. 무한반복이다.





   본 투 비 작가, 타고난 소질 이런 낯간지럽고 거리감 느껴지는 단어들은 가까이 오지 말길 바란다. 오히려 나는 그런 단어들과 멀기에 내가 해온 노력들,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들여다봐야 했다. 나는 내보일 거라곤 부끄러운 밑천뿐인데, 왜 자꾸 글을 쓰려하는 것일까, 에 대해.

   진정한 본 투 비 작가들은 이런 것들이 다 필요 없다. 그들은 그저 느끼고 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자연스레 적어내려갈 뿐이다. 타고난 이들은 나처럼 20년 동안 목숨 걸고 신문을 보거나 생존을 위한 글쓰기에 굶주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다져온 토양을 다시 뒤돌아 봐야만 했다. 내가 꾹꾹 밟아온 흙을 확인해 봐야만 한다.

   

   다행히, 아직 푸근한 흙냄새가 남아 있다. 이제 씨를 뿌리고 물을 줘볼 것이다. 결실을 맺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걸리지만, 앞에 놓인 시간엔 햇살이 충분할 것 같다. '독서'라는 양분만 잘 챙겨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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