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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6. 2021

글 근황에 관한 글

에라이, 쓰기나 하자

  오늘은 고민을 좀 했다. 고민을 좀 하다, 몸이 지쳐서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잠을 자려고 누웠다. 한쪽 구석에서 노트북이 째려본다. 나 안 볼 거니.. 에라이, 댓글만 쓰고 자자. 이불을 걷었다. 인공 눈물을 들이붓고 노트북을 켰다. 대댓글을 쓰다가 아기가 깨서 다시 재웠다. 댓글을 다 썼고, 자면 되는데 나란 인간은 글쓰기를 눌렀다. 하아, 분명 내일 아침 찐한 후회를 할 게 뻔하다. 후회할 걸 잘 알면서도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왜 쓰는 것에 미련이 이리도 진득하여 놓지 못하는 것일까. 전에는 돈이라도 벌어보자 하며 썼다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닌데 뭐가 아쉬워 이리도 쓰고 또 쓰려고 하는 것일까. 독서라는 밑천도 없는 주제. 


https://brunch.co.kr/@1kmhkmh1/75 



  어느 작가님 글을 보니, 작가의 서랍이 가득하다고 했다. 부끄럽게도 나의 서랍은, 휑하다. 텅텅 비었다. 글 소재나 몇 개 끄적여 놓은 것뿐, 쓰다 말았거나 다 쓰고 발행을 못했거나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인 글은 단하나도 없다. 내 글은 모두 단타성, 일회성이다. 한큐에 '훅' 쓰고 맞춤법 검사 한 번 돌리고 한 번 더 읽어보고 미련없이 발행. 모든 글이 그렇다. 그래서 대부분 읽고 나면 남는 것이 없고 휘발성이 강하다. 써 뒀다가 며칠 후 다시 읽어 보고 고치고 좀 묵혀 놨다가 다시 퇴고하고 해야 진한 맛이 남는데, 내 글들은 하나같이 가볍다. 어쩔 수 없다. 글의 주인이 그런 사람이고 그런 상황이라(상황 핑계 중), 글도 그러하다. 나 역시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건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다. 글이 농익으려면 사람도 성숙해야 하고 시간도 같이 익어야 한다. 나의 글이 설익은 이유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설익은 글들을 매일 토해내 듯 써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나에겐 노트북이 있고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나만의 소우주(안방 화장실)가 펼쳐진다. 그러면 됐다. 그저 쓰는 것이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이 명확하고도 분명한 사실, 이것으로 살아가는 요즘이다. 물론 눈은 뻑뻑하고 머리는 띵하지만 마음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다. 글 거리가 쌓이고 쌓여서 무거워지면 엉덩이도 같이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일상을 잘 살아내려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기 때문에 일상에 약간의 무리가 갈 때도 있다. 괜찮다, 인생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





  글을 잠시 쉬고 난 후, 약간의 부채가 생겼다. 

  글을 쉬는 동안 친구 집에 가서 점심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친구는 글을 쓰지 않는 나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맛있는 스파게티를 얻어먹고 디저트까지 손수 해주었다. 카스테라였다. 흰자를 돌리는 기계(믹서?)가 멋져 보였다. 친구는 중고로 팔고 새 것을 살 생각이라고 했다. 나한테 중고로 팔라고 하자, 친구는 '아이고 언니' 하며 거절했다.

  "언니는 이런 거 하지 마요. 내가 해주는 밥 맛있게 먹고, 언니는 글이나 써요. 사람들은 자기가 할 줄 아는 거 하면서 살면 돼요. 나는 요리 좋아하니까 요리하고 언니는 글 잘 쓰니까 글 쓰고, 그러면 돼요."

  황급히 아이를 안으러 주방에서 벗어났다. 뜨거운 고마움이 훅 일어나 눈으로 나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글이나 쓰라니, 이렇게나 큰 감동을 주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면 사람 놀랜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 인생 대수인가, 글이나 쓰면서 살자. 


해물 스파게티와 수제 카스테라를 얻어 먹고 글을 쓸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 문우가 출판 소식을 알려 왔다. 기쁜 마음에 서평 요청을 보냈다가, 또 거절을 당했다. 

'작가님은 지금 이런 서평 쓰실 때가 아니에요. 지금 작가님은 작가님의 글을 쓰셔야 해요. 다른 곳에 힘쓰지 마시고 작가님을 생각하세요'

라며 온전한 내 편이 돼주어 빵꾸를 내주셨다. 

  

  그러고 나서 보니, 적잖은 이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렇게나 교훈도 없고 남는 것 없고 휘발성 강한 글들을 배설하듯 쏟아내는데, 그게 뭐라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글이나 쓰라는 친구, 다른 곳에 힘쓰지 말고 나의 글을 쓰라는 친구, 그리고 내 글을 기다리는 이들, 이 모든 이들에게 나는 일종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언제나 감사하고 즐거운 빚이다. 언제까지고 안고 가며 행복해할 부담이다.


  그래서, 매일 변기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브런치를 보다 보면 글에 관한 적잖은 고민들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더 잘 쓰고 싶은 고민, 글의 방향성과 나아갈 길, 글 소재에 대한 고민과 갈등, 구독자와 조회수, 라이킷에 대한 번민(이건 나도 피할 수는 없다, 숫자 앞에 나약한 인간이다), 모든 것에 공감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전과는 조금은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글은, 그저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며 그렇기에 그저 써내는 것뿐이다. 글을 써낸다, 그것 하나로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충만한 나날이다. 늘 그렇듯 딱 하나, 잠이 부족한 것 빼고 말이다. 


  오늘도 이렇게 글 같지도 않은 글을 써냈다. 이젠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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