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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07. 2021

세상 하나뿐인 제 책이 나왔어요

첫 브런치북 출간

  공모전 응모는 처음에는 생각에도 없었어요. 공모전에는 치일만큼 치였어서, 공모전의 속성을 잘 알거든요. 공모전은 99.6%의 실망과 0.4%의 희망으로 가득차 있어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공모전은 안 되는 게 정상이에요. 그러나 중요한 건, 우리 모두 0.4%에 집중한다는 거죠. 0.4%는 갈수록 부풀려져서 40%도 되고 400%도 되요. 그리고 탈락을 확인하는 순간, 심사위원들에 대한 증오가 첫번째 감정이 되어요. 그리고는 낙담, 자기 증오나 자기 경멸, 슬슬 현실 자각과 인정. 이런 순차를 너무나도 많이 겪어와서 공모전은 생각에도 없었어요.

https://brunch.co.kr/@1kmhkmh1/75


  그런데 시모임이 저를 자극해 주었어요. 자작시를 내놓았다가 생각지 않은 환대를 받았고, 제 시를 세상에 꺼내놓아도 될 것같은 용기를 얻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자연스레 공모전이 떠올랐어요. 공모전은 여전히 안 될 거지만, 지금의 공모전은 오디오북 서비스가 가능한 공모전이잖아요. 시 문우 중 한 분이 제 시를 낭독을 해주셨는데, 음성 위에 놓인 제 시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어요. 아, 시는 여러 장르를 가질 수 있구나. 그래서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았어요. 순전히 그 생각으로 브런치북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책은, 처음으로 공저나 공역이 아닌 순전히 제 글로만 이루어진 책이에요.






  책을 만드는 것, 나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 저는 이 주제에 상당히 소심해져요. 순수히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해요. 자신의 비용과 시간을 들여 나의 책을 읽는 독자의 표정을 생각해야 해요. 이불 속에서 읽다가 '에라이, 이런 책은 나도 써', '구구절절 일기만 모았네', '아, 이런 거 읽는 내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을 하는, 그래서 제 이름이 적힌 책을 휙 던져버리고 폰을 잡아 드는 독자를 생각하면, 키보드 위의 제 손가락들이 부끄러워져요. 그래서 늘, 책을 낸다는 생각 앞에서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요. 작가가 독자보다 많은 세상, 개나 소나 글 쓰고 책내는 세상에서 작가가 된다는 것, 그러니까 '출간'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거든요. 글에 달리는 악플 하나에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제가, 한 뭉텅이의 물성을 가진 책을 낸다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독립출판이라도 책을 내보는 건 어때' 이런 질문들 앞에서는, 대답도 못하고 웃기만 했어요.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몰랐으니까요.



  2월 한달동안 글을 쓰지 못하고 브런치를 닫았을 때, 연락 주신 몇몇 분들께서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숨기신 줄 알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봐주시다니 진실로 감사할 일이에요. 제가 뭐라고, 고작 일상 이야기 끄적이는 제가 책을 내겠어요. 저에게 책은 늘, 인생이 많이 성숙한 지점에, 제가 2,3판을 내도 끊임없이 구입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 다음 책을 내도 믿고 사주시는 분들이 계실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주제예요.


  속마음은 사실, 당장이라도 어줍잖은 원고 몇몇 들고 동네 독립출판사에 가서 단 10부라도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이에요. 내 이름 석 자 박힌 내 책이 나온다는 것, 얼마나 기쁘고 가슴 설레는 일인가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어요. 그건 순전히 제 욕심이라는 것을요. 제 욕심 채우려고 얼마간의 나무를 소비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저를 모르는 누군가가 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인생의 깊이가 조금 더 깊어졌다거나 또는 '이런 글을 쓰는 이는 누굴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순간 책을 내고 싶어요. 비슷하게, 생의 결실을 맛보는 시절에 책을 내고 싶다는 글도 예전에 썼었어요.

https://brunch.co.kr/@1kmhkmh1/29



  그런데 시는, 조금 달랐어요. 시는 순전히 저만의 영역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 시는, 저만이 쓸 수 있으니까요. 제가 '잘 쓰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 술어의 주어는 '시'였어요. 유년 시절 글쓰기 대회 상은 '시'로만 받았어요. 20년을 글쓰기를 모른 체하고 살다가 다시 글 쓸 용기를 준 것도 시였어요. 브런치도 시를 검색하다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시만큼은 묶어서 내놓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기를 내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래도 해냈어요. 영원히 시는 내놓지 못할 것만 같았는데,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제 시가 세상에 책으로 나오다니! 시를 보이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한 적도 있는데, 그 글은 이미 계절의 뒤켠에 물러서 있고 저는 이렇게 시를 묶어내었어요.

https://brunch.co.kr/@1kmhkmh1/21



  고작 브런치북 낸 주제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 하시면 할 말은 없어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제게 시와 책은 결코 가벼운, 하나의 도전 같은 것들이 아니었어요. 제 인생을 함축한 제목들이에요. 그 두가지를 합쳐서 책으로 낸 날이에요. 브런치에서만큼은 오늘 제가 새로 태어난 날이에요.

  시를 읽고 아껴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글에서 다시 감사를 전해요. 제 시는, 제가 글을 쓰는 단 하나의 원동력이니까요. 그런 시와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야말로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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