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이라는 말에 담긴 공적 의미를 다시 묻다
우리는 매일 계약을 한다.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거나, 쿠팡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순간에도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기로 한 약속이 성립한다. 작은 거래일 때는 단순히 결제 버튼만 누르면 끝난다. 하지만 대량으로 구매하려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더 좋은 품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얻기 위해 직접 생산자와 거래를 하고, 생산 증명서 같은 서류를 확인한다.
공공계약도 같은 흐름이다. 작은 지출은 간소화된 절차로 처리할 수 있지만, 금액이 커지면 계약 상대자의 자격과 품질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다. 법은 이를 위해 추정가격 1,000만 원 이상이면 생산자 확인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기준을 정해 두었다. 그러나 이 선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
결국 공공계약의 목적은 금액과 상관없이 좋은 품질을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하는 것이다.
공공계약은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같은 공공기관이 행정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체결하는 법률행위다. 2인 이상의 당사자가 청약과 승낙이라는 의사표시를 합치시켜 성립하는 점은 민간계약과 같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재원이 세금 등 공적 자금에서 나오며, 그 결과가 불특정 다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민간계약이 효율성과 경제성을 우선한다면, 공공계약은 다음 다섯 가지 원칙 위에 서 있다.
합법성: 법령에 따라야 한다.
공정성: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투명성: 절차와 결과가 공개되어야 한다.
책임성: 결과는 국민 세금으로 이어진다.
효율성: 제한된 재원으로 최대 효과를 내야 한다.
이 원칙들은 공공계약이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담는 제도적 약속임을 보여준다.
실무에서는 “소액은 계약이 아니다”라는 말을 쉽게 듣는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청약과 승낙이 합치하면 금액과 상관없이 계약이다. 다만 금액에 따라 계약서를 생략하거나 절차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감사에서 지적되는 이유도 바로 이 구분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볼펜 하나를 사더라도, 그 비용은 국민 세금으로 지출된다. 그래서 공공계약은 단순히 효율적인 구매가 아니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 속에서 책임 있게 집행해야 하는 행정의 언어다.
“공공계약의 본질은 금액이 아니라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