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하는 날.
몇 개월 단위로 머리가 부스스해지면
자연스레 발길이 향하는 미용실이 하나쯤은 있다.
이리저리 여러 곳을 전전하다 마침맞는 그곳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그냥저냥 마음 밖으로 날 실력까진 아니기에 다른 곳을 찾는 번거로움을 피할 겸 다시 그 미용실을 찾기도 한다.
내 경우를 살피자니 ‘현재’는 고정적으로 가는 곳이 없다.
1년 전 사는 지역이 바뀌고 난 후로는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덥수룩한 상태로 지내는 시간이 꽤 길다.
어린 날에는 엄마가 지정해 주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다.
큰 변화 없이 3년 내내 똑 단발로 지냈던 중학생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 시절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쿠폰을 마구 뿌려대는 번화가의 공장형 미용실에서 몰래 파마도 했었더랬다.
자유를 얻는 성인이 된 이후엔 ‘근거리 미용실’이 조건 1순위였다.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주는 미용실을 찾기보다, 서 있는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 머리를 자르고 색을 입혔으며, 동그랗게 말아 파마도 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만져주는 미용실만큼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같은 브로콜리 형 머리를 만들어내는 미용실에도 자주 갔었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보기도 했지만, 정작 나에겐 별일이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크게 만족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어 나쁘지 않더라.
동네 목욕탕 옆에 붙은 10,000원짜리 뿌리 염색 후, 머리 색이 2단계로 나뉘었던 경험 외에는 대부분 수습이 가능한 정도였으니까.
나름 머리를 만지는 재주는 있어 드라이나 고데로 어찌하다 보면 나다닐 수 있는 지경은 되었다.
월요일 아침, 일주일째 계속되는 목과 귀의 통증으로 이비인후과를 갔다.
집에서 걸어 15분 정도 거리의 병원이었으며, 간단한 치료 후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병원에서의 모든 용무를 마쳤다. 건물을 나서 왼쪽으로 꺾어 30m를 걸었다. 평소 눈여겨보지 않아 존재를 몰랐던 자리에 자그마한 미용실 하나가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다.
빼꼼 살펴보니 아주머니 두 분께서 보글 파마를 하고 계셨고, 의자는 총 3개였기에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얼핏 유리창에 비친 내 머리를 봤다. 이미 자를 때가 한참 지나 얼른 잘라야겠다 생각만 한 게 한 달이 넘어가는구나. 잠시 망설였지만 다른 미용실을 찾기 귀찮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연세가 있으신 아주머니께서 혼자 일하고 계신다.
커트가 가능하냐 물으니 잠시 기다리란다. 이미 중앙자리에 앉은 아주머니는 머리를 거의 끝내신 상태였고, 탱글탱글하니 파마는 아주 잘 나왔다. 슬쩍 벽 한쪽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여성 커트는 17,000원으로 지난번 다른 미용실에서 잘랐을 때 보다 5,000원이 더 싸다.
곧 중앙자리가 비었다. 아주머니는 어떻게 잘라줄까 물으셨고, 머리 자른 지 두 달이 넘었으니 그만큼의 길이만 짧게 해 달라 간단히 대꾸했다.
커트가 시작됐다.
불안도 함께 시작됐다.
아주머니는 굉장히 빠르신데 산만했다. 이걸 어찌 표현해야 할까. 한 번 집어 한 번에 자를 수 있는 머리카락의 양을, 굳이 세 번에 나누어 집어 들고 자르신달까? 어찌나 서두르시는지 커트를 하는 동안 빗을 세 번이나 떨어뜨리셨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 번째로 빗이 바닥에 떨어졌고,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허리를 굽혀 떨어진 빗을 주워 터는 시늉도 없이 내 머리를 빗겨주셨다.
‘아, 내가 잘못 온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꿈틀거렸다.
어찌하리. 나의 선택이었으며, 굳이 정보 없는 미용실을 찾은 자의 업보이니라.
커트는 계속되었고, 가위질만큼은 그동안 다녔던 어느 미용실보다 움직임이 잦다. 통상 커트를 하고 마지막에 숱을 치던데, 아주머니는 연신 용도에 따라 가위를 바꿔가며 두 가지 일을 한 번에 하셨다. 약간 정신이 없더라. 평소 숱을 많이 치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왠지 그냥 두고 싶었다. 아주머니의 세계를 담뿍 느껴보고 싶었달까.
커트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이제는 본격적으로 숱 치는 가위를 드신다. 과장 없이 100번은 숱을 친 것 같다. 점점 많은 머리카락이 잘려 눈앞으로 떨어졌다. 머리끝이 얇아지고 있다.
‘아, 이런 머리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가만히 고개를 드니 거울 속 주인아주머니의 머리를 닮았다.
재미있다.
아주머니는 “이전 머리 나한테서 했었어요?”라고 물으셨다.
“아니요.”라고 짧게 답했다.
머리를 말리고 한 번, 드라이를 마치고 한 번.
아주머니는 계속 보자 하시며 추가로 가위질을 담뿍 해주셨다.
커트를 마친 나의 머리는 수습이 가능할 정도로 적당히 짧다.
아직도 재미있다. 커트 내내 긴장된 마음이 되돌아보니 그냥 웃기다.
이래서 아무 미용실 가기를 멈추지 않는 것일까.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한번 건너봐야 하나.
열심히 머리를 해주시는 주인아주머니의 열정만큼은 대단한 전문가처럼 보였다.
다시 머리를 하러 올진 모르겠지만,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도 하지 못하겠다.
가까운 동네 미용실, 그것도 처음 가는 곳에서 머리 하기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작은 미용실마다 개성이 있어 나름 즐겁다.
애초에 예상했던 머리 길이로 다니려면 일주일은 은둔해야 할 것 같지만 뭐, 바쁜 일도 없으니까.
오늘도 근거리 미용실에서 머리하기는 나름 괜찮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