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향한 집착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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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속 아기가 커가며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검사들이 있다. 임신을 확인하고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주 차별 검진에 관한 안내. 기본적인 초음파, 혈액검사 같은 정기 검진 후 12주에 접어들면 첫 기형아 검사를 한다. 계속 정기 검진을 이어가며 20주에는 정밀 초음파, 24주 임신성 당뇨 검사 그리고 막달 검사와 태동 검사로 이어진다.


감동이가 작은 콩 같던 시절엔 그에 반비례하는 커다란 두려움이 있었다. 아기를 낳으면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열 개인지 확인부터 한다던데, 그 맘을 꼭 알겠다. 아기가 사람의 형태를 제대로 갖춰가며 커갈 것인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만화책을 너무 많이 봤던 어미는 팔이 세 개고, 눈이 한 개인 외계인들을 떠올리며 혹시나 뱃속에 사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생명이 있는 건 아닌지 터무니없는 걱정을 시도한다. 시간이 지나 감동이가 제법 사람의 모습을 띠게 되면서 기우의 크기는 점점 줄어갔지만, 어렴풋한 불안은 끊어 낼 수 없다.


1, 2차로 나뉘어 진행되는 기형아 검사. 원장님은 이 시기에 받아야 하는 기본 검사에 대해 설명하시다 다른 선택지도 함께 보여주셨다. 강요는 없었지만, 원한다면 좀 더 정밀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물론 추가 비용이 꽤 많이 발생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으며, 기본 검사와 비교해 기형을 잡아내는 확률이 높다 하셨다. 35세가 넘은 임산부이니, 고려해보는 것도 좋지만 기본 검사 후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된다 안내해주신다.

집으로 돌아와 다른 임산부들은 어떤 선택을 했나 찾아봤다. 혼자서는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역시 엄마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은 듯, 절대 적지 않은 검사비와 마음의 평화를 맞바꿨다는 후기가 상당수였다. 불안함을 없앨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거겠지. 아, 일찍이 아기를 가졌더라면 이런 고민은 않았을 텐데. 고령 산모 딱지를 뗄 수 없는 연차라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현실이 서글펐다. 35세가 넘어 아이를 가진 것이 결함처럼 느껴져 한스럽다. 토로할 데가 있나. 의견 반영은 않을 테지만 가슴이 꽉 막힌 기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기형아 검사를 해야 하는데 추가로 더 정밀하게 검사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 이거 받을까?”

“다 잘 태어난다. 걱정하지 말고, 기본만 해.”


단호함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 여성이 아닐까. 기껏 먼저 물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엄마가 아기 낳을 때랑 요즘이랑은 다르다고! 청개구리 딸내미. 이번엔 그나마 최근에 아기를 낳은 고향 후배에게 연락을 취한다.

“너 아기 낳을 때 추가 검사했어? 난 35살이 넘어서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언니, 안 해도 돼요.”


거침없는 부산 여성들. 둘째를 임신 중이던 그녀는 가장 든든한 임신 동지였기에 절대 신뢰 대상. 후배의 답에 힘을 얻어, 또 아직 스스로 건재하다는 당당함을 발현하기 위해 추가 검사는 받지 않기로 했다. 물론 고령 산모라 더욱 신중해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괜한 걱정 주머니 빠져 노닐기는 싫었다. 고령 산모의 마지막 자존심, 감동이를 믿어볼 테다. 혹시나 하는 생각도 멀리 떨어뜨린다. 행여 부정적인 생각이 결과에 영향을 줄까 고개를 흔들어 본다. 지금에서야 털어놓지만, 굳은 다짐 뒤에도 갈팡질팡 마음 졸이는 순간이 분명 존재하긴 하더라.

며칠 뒤 1, 2차 기형아 검사에서 정상 소견을 받았고, 추가 검사에 대한 심사숙고는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6개월에 들어서면 30분 정도 정밀 초음파를 받게 된다. 제법 배가 나오기 시작할 때라 천장을 보고 바로 눕는 것도 힘이 들지만, 아기가 어느 정도 자란 만큼 전체적인 구조적 이상을 확인 할 수 있다니 참고 견뎌야 한다. 5분 내외로 살피던 초음파와는 다르다. 미간, 인중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헤아려보며 태아에게 이상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작은 손가락, 발가락까지도 눈으로 볼 수 있으며, 꽤 긴 시간 아기를 담뿍 관찰할 수 있기에 늘 뱃속이 궁금한 어미에겐 아주 좋은 기회다.


초음파 기기를 갖다 대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머, 아기가 이쁘네요. 콧대가 오뚝하니.”


끝났다. 힘든 게 대수냐. 짊어지고 있던 임산부의 모든 고됨을 말끔히 씻어주는 한마디. 아직 뱃속에 피고임이 있다는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등에 뾰족뾰족 가시가 나는 걸까. 벌써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뱃속에서 잘 노네요.”


자랑스럽다. 우리 감동이는 운동 신경도 좋은 게다. 전문가가 들려주는 한 줄 감상평에 배부른 임산부의 기분은 하늘을 달렸다.

이상 소견 또한 없음. 기분 좋게 정밀 검사를 마쳤고, 병원에서는 30분간의 기록을 모두 저장 장치에 담아 주셨다. 하나씩 늘어가는 초음파 사진과 영상들이 앨범에 쌓여간다. 남들보다 자주 병원에 갔던 탓에 그 양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감동이는 복도 많다.


수납을 기다리다 문득 생각에 빠진다. ‘정상’이라는 단어에 이리 집착한 적이 있나? 예술 전공자였기에 비정상이라는 말에 매력을 느꼈던 철부지 시절이 있었다. 반듯한 정상보다 한 끗 비켜나간 비정상이 왠지 그럴싸해 보였으니까. 사회에 나와선 세상에 정상이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비정상임을 늦은 퇴근길 힘 빠진 걸음을 내디디며 알아버렸다. 임산부가 되자 달라진다. 생명을 품고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정상’이라는 두 글자는 예외 없이 반갑기만 하다. 아기를 측정한 모든 수치가 지정된 정상 범위에 들어와야 한다. ‘정상’이라는 소견은 매일 걱정 열매를 먹고 사는 임산부에게 잠시나마 달콤한 안도감을 주는 마법의 단어. 정상에서 벗어날까 늘 겁이 났다. 생명이 타고나는 것은 다르겠지만, 테두리를 높이 치고 정상 범위 안에서 울타리 밖으로는 내보내고 싶지 않은 게 부모의 마음이다. 안전하고 무탈하기를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간절히 바란다. 걸림돌이 많은 고령 산모로 구분된 어미는 아기만은 따로 분리되질 않길, 모든 조건이 적당하여 특출난 갈래에 속하지 않길 생명을 바로 앞에 마주할 때까지 절실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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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차. 선택사항인 입체 초음파를 예약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검사지만 세상에 나올 아기의 실제 모습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미 검색을 통해 다른 아기의 입체 초음파 사진을 여러 장 감상했기에 부푼 기대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과연 우리 감동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매번 까만 초음파로 보던 납작한 평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드러날 아기의 얼굴. 가슴이 콩닥거린다.

초음파를 갖다 대니 이런, 감동이가 다리를 접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 검사는 아기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단다. 선생님은 배를 흔들어 보며 아기가 자세를 바꿔주길 기다려 주셨지만 감동이의 유연한 다리는 좀처럼 내려가질 않았다. 10분을 할당받았다. 태아가 자세를 바꿀 수 있도록 자극을 줘야 한단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달달한 음식을 먹는 방법이 있다. 입체 초음파는 아기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시 한 번 더 검사받을 기회를 주지만, 제한된 횟수이기에 병원 통로로 나가 열심히 계단을 오르내렸다.


“감동아, 얼굴 좀 보여줘.”


다시 검사대에 누웠다. 다행히 감동이는 다리를 내려줬고, 곧 감동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


심장이 ‘쿵’. 못생겼다. 검색으로 찾아본 사진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다른 임산부들은 어느 아기보다 자신의 아기가 이쁘다며 자랑 글을 써놨던데, 지금 감동이의 사진으로는 겸손을 떨 수밖에 없게 생겼다.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께 여쭸다.


“태어나면 이렇게 생겼나요?”

“네, 비슷해요. 그런데 아기는 또 며칠 지나면 얼굴이 바뀌더라고요.”


아, 비슷하구나. 그래, 우리 감동이 못생겼구나. 검은 초음파로 봤던 콧대 높은 이쁜 아가는 찰나의 오류였나. 병원에서 뽑아준 사진을 휴대전화로 찍어 재석이에게 전송했다.


“오빠, 감동이 못생긴 것 같아.”

“으하하.”


재석이는 어미의 타들어 가는 속도 모르고, 크게 웃으며 잘 모르겠다는 답변을 한다. 이봐요 아버님, 이거 심각한 문제야.


가족들에게도 사진을 보낸 뒤, 책상에 앉아 다시 감동이의 얼굴을 열심히 뜯어봤다. 은근히 날 닮은 것도 같고? 나름 어릴 땐 귀여웠는데. 귀여움을 쏙 빼고 이 어미를 닮았다. 가만 보니 또 정이 간다. 제법 사람 모습을 갖춘 감동이가 신기하기도 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긴 시간이 남았지만 이젠 거의 다 자란 듯 보이기도 한다. 못나도 내 새끼. 이뻐해 줘야지. 결국, 엄마 아빠 유전자지 뭘.


얼굴을 확인하니 더욱 애착이 생긴다. 상상으로만 그리던 감동이를 눈으로 보니, 구체적인 형상이 만들어져서일까 한층 더 친밀해진 기분이다. 동그랗게 나온 배에 대고 불렀던 ‘감동이’라는 이름이 이제는 이 물에 불은 찐빵 같은 녀석의 얼굴과 결합하여 한층 또렷한 존재가 됐다. 하나의 인간으로 튼튼하게 자라고 있구나 우리 감동이. 혹 외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눈으로 확인하니 어미 맘이 이리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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