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감동이를 품기 시작한 나이 37살.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미 쑥쑥 자란 어린이들을 키우고 있다. 가장 빨리 결혼한 이의 첫째가 벌써 9살이 됐고, 다복함을 자랑하는 또 다른 녀석이 3년 전 셋째를 낳았으니 그나마 최근 출산한 산모라 칭해야겠다.
평소 나는 어떤 사람인가. 혼자 사부작거리기를 좋아하고 타인에게 자주 연락하지 않으며, 많고 많은 걱정과 생각거리를 홀로 안고 깊이 빠지길 즐기는 인간 유형이 아니던가. 하나, 아기를 가지고 절실히 느꼈다. 동지가 필요함을. 정보 교환은 둘째치고, 사사로운 임산부의 하루를 나누고픈 욕구가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아버렸다. 초음파를 보고 온 날이면 꼬마 곰 젤리 같은 감동이의 건강함에 대해 마구 자랑하고 싶었고, 매일 변해가는 임산부의 몸과 생활의 불편함을 푸념하고 싶었으며 때로는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은 재석이를 빗대어 임산부 남편이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열띤 토의도 하고 싶었다.
오늘 하루 만난 이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누군가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둘 사이 간격을 단시간 내 줄이기 위해서는 공통의 관심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 오죽하면 함께 동일 인물을 험담하는 행위가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라 꼽히겠는가.
임산부는 뱃속 태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가 적합할 것인가? 정답은 뻔하지, 현재 임신 중인 여성. 분명한 답을 알고 있음에도 쉽지 않은 건, 주변에 임신한 지인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벌써 10년째 단체 대화방을 유지하고 있던 친구들.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에 제 일처럼 기뻐했지만, 그녀들에게 출산은 너무 오래된 일이로다. 입덧이 있어 약을 처방받았다 하자 ‘입덧 약이란 게 있어?’ 되묻던 사랑하는 우리 친구. 조리원에 관해 물으니 지금은 쓰지도 못할 낡은 정보를 가까스로 끄집어내 준다. 오랜 육아에 지친 그녀들에게 출산은 이미 까마득한 시절이 되어, 초보 임산부의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던져주진 못했다. 무리 중 미국에 이민 간 친구 하나가 4개월 앞서 둘째를 임신했지만, 시차도 시차일뿐더러 외국 임산부의 생활은 한국의 임산부와 크게 공유할 내용이 없었기에 적절한 동지가 되어주질 못했다.
최근까지 함께한 직장 동료들에게 눈을 돌려본다. 한창 일을 하고 있으니, 아직 미혼이거나 아기를 낳지 않은 이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어떤 말을 나누었는가. 회사를 제 발로 나오기 전까지 대화 주제는 쳇바퀴 돌 듯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화를 돋우는 상사를 겨냥한 험담, 탄탄치 못한 회사 체제에 대한 불만, 말도 안 되는 업무량에 대한 버거움. 사회생활의 아니꼬움을 골조로 까맣게 타버린 제 속을 가감 없이 털어놓고, 같은 처지의 서로를 토닥거리며 나름의 전우애를 쌓아가곤 했다. 집단을 빠져나왔음에도 가끔 이전 동료들을 만나게 될 때면 여전히 같은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곤 한다. 그들은 분리되어 나간 자의 결혼 생활과 임신 소식에 관해 묻곤 하지만 대화의 중심이 임산부에게 그리 오래 머물진 못한다. 오히려 이야기의 방향을 먼저 돌려버리는 건 이쪽이다. 내 아이는 내 눈에나 귀엽지. 감동이에 관한 얘깃거리가 그들에게 큰 흥미를 갖지 못하게 할 거란 생각에 지레 눈치가 보여 다시금 그들의 일터, 회사로 사담의 방향을 전환하곤 했다.
30대 초, 한꺼번에 수백 개씩 쌓이는 단체 대화방의 메시지가 버거워 알람을 꺼놓고 지냈다. 한 번씩 들어가 확인하긴 했지만 모두 읽어내지도 않았다. 20대 후반에서 30대로 넘어가던 즈음, 친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결혼식을 치렀고 또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았다. 당연지사 대화는 다수의 관심사로 흘러갔겠지. 모두 처음 겪는 임신과 출산이었으니 궁금한 것도 많았을 테고 신기한 일도 많았을 거다. 그녀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아기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 각자의 질문과 해답을 던졌으며 하루하루 바뀌는 아이의 모습을 공유했다. 친구들의 아이는 귀여웠다. 몇십 년간 지켜봤던 내 친구의 어딘가를 꼭 닮은 작은 생명. 꼬물거리며 커가는 아이들은 분명 사랑스럽다. 문제는 그 관심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 보고 듣는 그 순간뿐이다. 항상 아이들이 몇 살인지 헷갈렸고, 성별도 기억나지 않았으며 어느 날엔 누구의 아이였는지도 혼란스러웠다. 이름도 명확지 않아 친구 이름을 붙인 아기라고만 불렀지 자신 있게 호명할 수도 없는 게 미혼 나름이 고충이었다. 기혼자들은 어찌 서로의 아이에 대해 잘도 기억하는지, 관심의 차이가 이리도 크구나 신기하기만 했다. 더욱이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주하는 현실은 대부분 한숨을 성토하는 말들이었기에 이미 사회에 지친 미혼 여성은 그 모든 걸 받아내 굳이 힘겨움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겪은 적 없으니 공감이 힘들었겠지. 그런 예전 모습이 겹쳤기 때문일까.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이에게는 되도록 감동이에 대한 말을 아끼게 됐다. 맘 같아선 당장 쏟아내고픈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아무래도 관심이 없지 않을까 싶은 판단에서다.
오지랖은 늘었다. 산부인과에 가는 날이면 가까이 앉은 임산부를 유심히 관찰한다. 감동이를 품은 배와 상대의 배를 비교하며 그녀는 몇 개월이나 됐을까 홀로 상상해보다, 한번 말이라도 걸어볼까 망설이는 이가 되어버렸다. 하나, 사람 천성은 변하지 않는 법. 매번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만큼 적극적인 시선을 던지지만 끝내 말을 건네진 못하고 돌아온다. 길을 걷다가도 임산부와 유모차를 발견할 때마다 한껏 눈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그저 바라볼 뿐 차마 아이가 몇 개월이나 되었냐는 실로 궁금한 물음은 언제나 속으로만 삼켰다.
언제였더라, 병원 대기가 길어져 정신을 놓고 앉아있을 때 누군가 곁에서 말을 걸어왔다. 총 3명, 잠시 뒤 소수로 진행되는 산모 교육을 함께 들어야 했던 분으로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임산부셨다. 처음이다. 배부른 다른 이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알고 지내던 언니를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반가운 마음과 함께 혹여 오래간만에 찾아온 동지와의 대화가 끊기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 때문에 틈 없이 말을 이어간다. 몇 주차인지, 어디에서 출산할 계획인지, 몸 상태는 어떤지 임산부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을 주고받으며 동질감을 쌓았다. 제법 비슷하게 솟아오른 배도 경계를 풀게 해, 결국은 임신은 참 힘들다는 속풀이로 긴 대화를 맺게 했다. 아기를 가졌다는 공통점 하나로 이리도 스스럼없이 생각을 나눌 수 있구나 새삼 놀랐다. 의심 많고 경계심 강한 불신 가득한 자가 임산부 앞에서만은 치켜 올라간 눈을 쉽게 내리게 되더라.
별일 없던 어느 날, 친한 대학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녀도 나처럼 자주 연락을 하거나 살가운 말을 제법 던지는 사람이 아니라 늘 대하기가 편하다. 어찌 지내나 안부를 이어가던 차, 선배는 4개월로 접어들어 가던 임신 사실을 쑥스럽게 고백하고 말았다. 이미 결혼해 사내아이를 키우고 있던 후배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답한다.
“언니, 저도 둘째 임신했어요.”
앗싸! 드디어 가까운 임신 동지가 나타났다. 무려 두 달이나 앞서가고 있단다. 관심사 외엔 구멍이 많은 선배에 비해, 야무진 후배는 매사 꼼꼼하고 성실해 무척이나 배울 게 많은 아이다. 그녀의 소식이 너무도 반가워 그간 참고만 있던 임산부의 고달픔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고, 훨씬 어른스러운 녀석은 소탈하게 웃으며 다 그런 거라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날 이후, 후배는 누구보다 든든한 초보 임산부의 자문위원이 됐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매번 정성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천군만마를 얻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인 자가 살뜰히 마음을 헤아릴 줄 안다. 검색으로 얻는 백 가지 정보보다 자문위원의 한 마디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똑 부러지는 그녀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손수 노트에 써 내려간 출산 준비 물품 목록을 찍어 ‘언니 이거 사세요.’라고 무심히 건넸을 때는 가슴까지 뭉클해졌다. 귀찮아 할 거란 걸 어찌 알고 이리 알아서 준비했을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진짜 무엇이 필요한가 머리를 싸매다 여러 번 포기했기에 더욱더 고마움이 컸다. 같은 배를 탄 동지여! 함께 임신 중이었던 그녀가 없었더라면 아마 불량 임산부는 더 거친 길을 가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후배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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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가 몸에 꼭 붙어 있으니, 자연히 임산부는 생명을 품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모든 생활이 그에 맞춰진 지금, 배가 부른 자는 스스로 주변인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본다.
오직 가족에게만 감동이의 소식을 전한다. 너무도 앞서나간 걱정이라 할 수 있지만, 소심한 어미는 혹 누군가에게는 감동이의 성장이 흥 없는 이야기가 될까 조심스럽기만 하다. 의무감으로 물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지 않길, 옹졸한 마음에서 시작된 욕심은 임산부의 입을 꾹 다물게 한다. 진심으로 축하를 던지고 아기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은 서운할 테지만, 웬만해선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마구 꺼내놓기에는 자신이 없다. 과거 어미의 행적이 그랬기에 더욱 염려스럽다. 어미에게만은 가장 큰 축복이 된 감동이의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는 어찌 전달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부디, 잠시라도 기쁨을 주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