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내릴 자격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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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시작된 코로나가 꽤 오래간다. 덕분에 드물던 외출을 더욱 자제하게 되었고, 사람과의 만남도 힘들게 됐다. 감동이를 품고 몸이 좋지 않아 누워지낸 시간 동안, 건강했더라도 집콕 생활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을 거라 스스로 위안하며 시간을 보냈다.


궁금해졌다. 이 전염병은 언제쯤 끝이 날까? 코로나 시대, 아직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타인의 표정과 감정을 읽는데 서투르다. 마주하는 대부분의 이가 마스크를 낀 채 눈만 내놓았으니, 사회화된 성인들도 고초를 겪는 판국에 이제 막 다른 이와 상호작용을 시작하는 어린 생명이 혼란을 겪는 건 당연하다. 이제는 필수가 되어버린 보호장비 마스크. 요령을 모르는 아이들에겐 마스크를 벗지 말아야 한다는 규율은 어느새 공포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미래는 각기 다르지만 당장 종식될 거란 의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오래갈지도. 위생 관념이 유별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던 나로서는, 바이러스로부터 위협받는 현 상황이 너무도 위태로워 금방이라도 세상이 붕괴할 듯 버겁게 느껴진다. 느닷없이 휘몰아치는 거대한 불안 앞에서 무력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기정사실화된 소식에 정말 끝이 없는 건 아닌지, 이대로 보호장구를 낀 채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꿈 같았던 이전 시대를 떠올려 보며 극심한 우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두려움이 크다. 친분 정도와 상관없이 누구를 만나도 그의 이전 행적과 마스크에 관한 태도를 살피며 의심하고, 눈치껏 만남을 미루곤 한다. 가끔 떠나던 여행, 아니 그건 바라지도 않는다. 소박하고 당연했던 예전의 일상, 사무치게 그립다. 답답함을 참아내다 겨우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도, 마주 오는 이를 피해 몸을 돌리거나 맞은편 길로 피해버린다. 곁에서 누가 마른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몇 발자국은 떨어져 못마땅하게 노려보는 게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감동이는 봄이 막 시작될 무렵 태어날 텐데, 아마 그때도 코로나는 우리 삶 속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진 않을 것 같다. 이런 시기에 아이를 갖는 것은 옳은 판단이었나 여러 번 생각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유모차 속 아기들을 본다. 아직 호흡기가 단단하지 않기에 마스크를 쓰는 일은 위험하단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스크 착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일생. 덕분에 외출을 꺼리는 엄마들도 늘었다. 감동이는 자유롭게 문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콧등을 웃도는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어느 날엔 사람들로 붐비는 공원으로 내달릴 수 있을까? 거침없이 뛰어놀며, 마스크가 벗겨진 온전한 친구의 표정을 읽어 낼 수 있을까? 이 모든 걸 보장할 수 없는 세상에 아이를 내놓기로 한 부모의 판단은 어딘가 석연치 않아 종종 불편함을 가져다준다. 보건소에 머무는 일마저 염려되어 임산부 등록도 미뤄둔 어미는 본인의 되돌릴 수 없는 선택에, 그 결정이 너무 가볍지는 않았나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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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확인서를 받던 날, 병원과 연계된 보험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아기를 위한 태아보험을 들라는 권유로, 언제든지 상담 가능하니 다음번 내원 때 꼭 본인을 찾아 달라고 했다. 보험의 존재조차 몰랐으니, 이때쯤 들어야 하는 건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태아보험이라는 걸 들어야 한대.”

“그래? 외숙모한테 알아볼게.”


집안 보험은 대부분 엄마 친구분이나 외숙모에게 들어놓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실적 하나 올려주겠구나 여기며 회신을 기다렸다. 다음 날, 외숙모와 몇 통의 전화를 주고 받아 가며 보험 기한, 금액 등에 대해 논의했고 마지막으로 최종 심사 절차만 거치면 된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며칠 뒤, 외숙모 대신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민망한 웃음이 바닥에 깔렸다.


“영아, 예전에 너 아팠던 것 때문에 보험 가입이 안 된다네. 외숙모는 미안해서 너한테 전화를 못 하겠다더라. 전화하라고 해도 괜찮지?”

“응. 괜찮아.”


뭐지? 연이어 전화벨이 울렸고, 외숙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나 그녀도 무안한 듯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응, 이게 참 그냥 해주면 되는데. 지금은 수술받고 건강하잖아. 그런데 심사에서 거절 답변이 와버렸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는 보험 가입이 가능하대.”


그랬다. 2년 전, 암 수술을 받았던 이력이 태아보험 가입에 걸림돌이 됐다. 꽤 복잡하다는 보험 설계를 위해 나름대로 정보를 모으고, 일정 기한 내에 들어야 특약 혜택이 있다기에 서둘렀던 그간 노력이 한순간 쓸모없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되지도 않을 걸 뭐하러.


괘념치 않는다는 듯, 쉬이 알겠다 대답하고 끊은 통화 뒤로 멍하니 혼을 빼고 있다. 이내 분하고 답답했다. 병원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데, 그깟 보험 하나 들어주는 게 힘든 일인가. 내 몸 건사하자고 드는 보험이 아니지 않나. 감동이를 위한 보험인데, 어미 병력을 하나하나 따져 한마디로 거절해버리는 건 인간적이지 않다.

퇴근한 재석이는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임산부를 달래며 따로 보험은 필요 없다 했지만, 부족한 어미는 그 모든 게 제 탓 같아 저녁 내내 눈물이 멎질 않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온전치 못한 몸에서 태어난 감동이는 건강할까. 혹 세상에 나와 당장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지. 끊임없이 나쁜 질문만 찾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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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운전이 버거울 때가 있다. 꽉 조이는 안전벨트로, 갑자기 요동치는 감동이의 태동으로 또 어느 날엔 이유 없는 피곤함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곤 했다. 그런 날엔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마을버스를 타야 하는데, 다행히 병원이 가까이 있는 덕에 병원 셔틀버스가 서는 곳까지만 가면 되어 큰 불편함은 없다.

정기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셔틀버스가 내려준 곳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뒤뚱거리며 버스에 올라 마침 자리가 비어있는 임산부석에 착석했고, 곧 버스는 출발. 버스에 올랐던 정류장이 지하철역 부근이라 이른 오후 시간임에도 함께 버스에 탄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막 출발한 버스, 기사님이 백미러를 보시며 한마디 하신다.


“거기 뒤로 타신 분, 카드가 안 찍힌 것 같으니 카드 찍으세요.”


누군가를 향해 점잖게 말씀하셨고, 그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어 살짝 고개를 돌렸다. 대부분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인원만이 타고 있었기에 대충 승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곧 뒷문 쪽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답하신다.


“카드 없어요. 다음에 낼게요.”


예상치 못하게 너무도 당당해서였을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큰 소리로 대답한 뒤 시선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 그녀의 반응에 기사님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거참, 이상한 분이시네. 몰래 뒤로 타시더니 카드가 없다니.”

“아, 지금 없으니까 다음에 낸다니까요!”


아주머니는 더욱 소리를 높였다. 버스에 탄 모든 이가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아셨기에, 기사님은 무안한 듯 한마디 덧붙이셨으나 곧 버스를 출발시켰다.


어이가 없다. 쉽사리 욱하는 자. 순간,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치민다. 버스 노선을 따라가다 보면 파출소가 하나 나오는데, 극적으로 버스 핸들을 꺾어 세워 무임승차 객에게 몇 배의 요금을 받아내는 상상을 해봤다. 응징은 필요하니까. 현실은 어떤가. 버스 안 승객들은 잠시 무안한 침묵을 유지했지만, 곧 휴대전화 화면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다. 답답했다. 위법 행위가 이리도 쉽게 용인된다니, 그럴 거면 뭐하러 버스 요금을 내고 타? 꽤 많은 정류장을 지나친 다음 요주의 인물은 당당히 버스에서 내려 제 갈 길을 가셨다.


기사님은 복잡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거다. 굳이 말이 통하지 않는 피곤한 대상을 붙잡고 큰소리 내고 싶지 않았을 테지. 하루 꼬박 운전하는 일만 해도 체력을 모두 소진할 지경인데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상대하고 싶진 않았을 거다.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골이 난다. 규율을 어기기보다 지키는데 익숙한 고리타분한 이에게 그렇지 못한 모습은 속에 천불을 지폈다.


문득,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상기됐다. 직장 생활이란 것이 총체적 난국이었지만, 그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오랜 시간 공고히 쌓아왔던 상식체계가 지속해서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자고로 조직이 생성되고 그에 몸담는다고 함은 암묵적으로 그 속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최소한 각자에게 맡겨진 몫을 이행한다 약속한 것으로 간주한다. 실제는 달랐다. 문제가 생기면 상부에선 덮기 급급했고, 모른 채 떠넘기기 일쑤. 자연히 정리 안 된 문제는 아래로 흘러와 서로 물고 뜯게 하더라. 제재가 없었기에 규칙도 허울일 뿐 아무런 힘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규율에 맞춰진 이들은 손해를 봤고, 동료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삼삼오오 파벌이 형성되어, 비상식적으로 규범에서 벗어난 이들이 뻔뻔함을 무기로 세력의 우위에 섰다. 위에선 규칙에 갇힌 이에게 한 번만 더 참으라 했을 뿐, 여전히 방관 유지. 나 또한 대충 섞여 살면 되었겠지만 그런 대단한 인재가 되지 못했기에 굴레에서 나왔다. 소속을 벗고도 한동안 치를 떨었다. 후회도 없더라.


야근할 때면 한 번씩,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이 떠올랐다.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들은 역경을 겪었다 해도 결국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교훈이 가득했던 책. 악인의 불행한 결말을 보며 안심하곤 했다. 하나, 다 자라 과연 그 많은 이야기가 사실일까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실제 사회에 나와 참으면 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경험치가 쌓여가고 있었기에, 어린 시절 보고 들어왔던 동화 속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걸 깨닫고 있다.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 아닐까. 공격적이고 타인에게 무례한 이들을 조심히 대하고 어려워하는 세상을 보며,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무엇이라 말해줄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역정이 나도 차마 타인에게 불편한 말을 뱉지 못하고, 혼자 속 끓이다 매번 본인 탓이라 결론 내고 마는 재석이를 보며 차라리 몰상식하더라도 하고픈 말 다 하며 사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떤 판단과 기준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까.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며 깨닫는 이치는 살아오며 글로 배웠던 이론과는 확연히 다를 때가 왕왕 있다. 그것을 깨달아가는 게 인생일지도 모르나, 그러기엔 너무도 아픈 시간을 힘겹게 버텨야 한다. 굳이 감동이에게 그 과정을 안겨줘야 할까. 업보는 결국 돌아온다는 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더 많이 봐왔다. 오히려 아무 잘못 없던 이에게 들이닥친 불행을 더 자주 봐 왔는지도 모르지. 아주머니는 잠시 잠깐의 낯뜨거움을-혹은 전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참고 아무 손해 없이 버스를 탔고, 가고자 하는 곳에 편안히 안착했다. 동화 속 세상이었다면 응당 그녀는 처벌을 받았을 거다. 집으로 가던 길, 자기 발에 넘어져 코가 깨지지는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살라 가르치는 게 맞을까. 속 답답한 일이 생길 때면 같은 문제로 재석이와 자주 의견을 나눈다. 돌아오는 그의 대답은 늘 한결같지만, 어미는 오늘도 흔들려가며 답 없는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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