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요, 안돼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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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널뛰듯 제멋대로 굴던 위장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고, 임산부는 여전히 남아있는 메스꺼움을 깨끗이 날리기 위해 속을 지질 자극적인 음식을 찾고 있다.

숱한 검색을 통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짬뽕이 주력 상품으로, 별을 다섯 개나 단 후기가 넘쳐난다. 짜장면이나 짬뽕 대신 늘 볶음밥을 택했던 사람이다. 감동이를 가진 후엔 줄곧 시뻘건 국물만 마셔대고 있으니, 내친김에 그 집도 시일 내 점령하겠다 다짐한다. 한창 근무 중일 재석이에게 음식점 주소를 날렸고, 토요일 저녁 고대하던 짬뽕집을 함께 찾았다.


맛있다. 칭찬 일색이던 후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한껏 웅크리고 있던 입맛이 단번에 터져, 각자 먹을 짬뽕 한 그릇과 못지않게 인기가 많다는 탕수육을 추가해 넉넉히 상을 차린다. 여태 먹어왔던 짬뽕은 진정한 짬뽕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절대 자극적이지 않은 시원한 국물, 쉬지 않고 들이키니 눈앞에 해산물 잔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수북이 쌓여간다. 입덧으로 양이 많이 줄어서였을까, 대접이 반쯤 비었을 때 배가 부르다 느꼈다. 하나, 칼칼한 국물을 한 모금 삼킬 때마다 메슥거리는 속이 말도 못 하게 편안해졌기에 멈출 수가 없다. 그다지 맵지 않음에도 온몸에 땀이 흐른다. 원체 땀이 귀한 체질이나 임신 후엔 이렇게 한 번씩 땀이 났다. 오늘은 좀 과하다 싶었지만 뜨거운 음식을 먹고 있으니 그러려니 여기며, 다시금 젓가락질에 열을 올린다. 식탐 많은 자여, 걸음을 옮기기 불편할 만큼 배가 불렀지만, 한껏 만족한 표정으로 음식점을 나섰다.


“진짜 맛있다. 그치?”

“응. 집 근처에 이런 집이 있었는지 몰랐네. 또 오자.”


오랜만에 속을 뚫어주는 풍성한 저녁상에 흡족해하며 집으로 돌아와 평소처럼 TV를 보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눈을 뜬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통 볼일을 보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별 기대 없이 변기에 앉았으나, 웬걸. 복통 시작. 장운동이 활발치 않던 이는 감동이를 가진 후엔 더욱 극심한 변비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막힌 장을 뚫어내기 위해선 힘껏 용을 써야 하는데, 아랫배에 생명을 품고 있으니 사력을 다하기엔 어째 조심스러울 수밖에. 왠지 힘을 잘 못 주다간 아기가 밖으로 나와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매번 겁이 났다. 얼토당토않은 소리라 할지 모르지만, 장이 막혀본 자는 알 테다. 죽을힘을 다해야 화장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디 제대로 시도라도 했겠는가. 겁쟁이 임산부는 예전엔 어디에 힘을 줬는지도 기억해내지 못한 채 자연히 모든 것이 밖으로 배출될 때를 처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잉태와는 다른 이유로 불러오는 아랫배를 위해 장운동에 좋다는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 외엔 도리가 없다.


한번 시작된 복통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자그마치 열 번을 들락거렸다. 두 번째까지는 단순히 짬뽕을 먹어 그런가보다 여겼다. 매운 음식이 버거운 이는 자극적인 식사 후엔 꼭 배가 아파 왔으니까. 하나, 곧 예사 문제가 아님을 직감한다. 배 속에 아기가 있다 보니 복통이 감동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불안이 깊어간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찬물을 덮어쓴 것처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한기로 몸이 떨렸다. 감기까지 걸렸다간 큰일이다 싶어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고, 몸을 적시는 차가운 땀을 즉각 닦아 냈다. 단순한 배탈이 아님을 여덟 번째 화장실 문턱을 넘으며 알게 됐다.


“오빠….”


잠이 들면 옆에서 깨춤을 춰도 모를 만큼 깊게 잠이 드는 재석이는 수없이 침대를 오르내리는 임산부의 기척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 기력도 없었거니와 더는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으로 조금 더 목소리를 키워 다시 그를 불렀다.


“오빠….”


겨우 눈을 비비던 재석이는 핏기없는 얼굴로 바로 서 있지도 못해 문고리를 잡고 겨우 버티고 있던 부인을 보고는 무척이나 놀랐나 보다.


“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오빠, 배가 너무 아파…. 추워.”


더 배출할 것도 없이 요동치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재석이의 도움으로 간신히 침대 위로 올랐다. 온몸이 덜덜 떨렸고, 배는 심각할 정도로 차가웠다. 재석이는 얼음장 같은 손발을 잡아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고, 오한으로 괴로웠기에 찜질팩을 부탁하고는 자리에 쓰러져 누웠다. 가진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했다. 재석이는 두꺼운 수면 양말을 가져와 발에 씌우고, 찜질팩을 데워왔다. 겨우 뜨끈한 덩어리를 가슴에 댄 채 움츠리고 눕는다. 짧은 순간에도 양수 온도가 올라가면 태아에게 좋지 않아, 임산부는 배를 너무 따뜻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기로 가득한 난리 난 아랫배를 따뜻한 찜질로 감싸고 싶은데, 할 수 없으니 괴롭다. 몸이 데워지질 않아 재석이는 바쁘게 손발을 주물렀다. 기억도 없이 다시 잠이 들었고, 늦은 아침 눈을 떴다. 당장 약을 먹을 수 없어 할머니가 담가 두셨던 매실액을 따뜻한 물에 섞어 마셨다. 얻어맞은 듯 속이 쓰렸다. 뭔갈 먹자니 겁이 나 함부로 먹을 수가 없다. 위장의 고통과 함께 내리 3일을 제대로 고생했다.


정기 검진, 그간 불편한 사항은 없냐는 질문에 며칠 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노라 솔직히 고백한다. 원장님은 전형적인 장염 증상으로, 그런 일이 있을 땐 꼭 병원에 와야 한다며 주의하라고 하셨다. 임산부가 오랫동안 설사를 하게 되면 자궁수축이 올 수 있어 좋지 않으니, 수액이라도 맞아야 한단다.


이후로도 자주 매운 음식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짬뽕은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그 밤의 기억이 참말로 끔찍했기에 항상 앞서던 식욕도 가벼이 눌러버린다. 임신 6개월 차, 맵지도 않던 막창을 먹고 또 한 번 전쟁을 겪으니. 두 번째 장염을 앓으면서 결심한다. 집에서 먹던 대로 먹자. 딱히 건강한 위장을 가진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병약하지도 않았다. 임신으로 인해 장기의 내구성까지 떨어진 건지, 조금만 간이 세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바로 고장이 나버려 미리 조심할 수밖에 없구나. 서러움이 북받친다. 임신을 핑계로 그간 먹지 못했던 세상 진미를 섭렵할 것이라 원대한 꿈을 가졌는데, 고작 짬뽕과 막창에 걸려 넘어진 인생이라니.


더욱더 서글픈 것은 임산부는 탈을 낼 만한 음식도 조심해야 했지만, 함부로 입에 가져갈 수 없는 먹거리도 상당하다는 사실이었다.


결혼 전, 재석이 집에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곤 했다. 냉장고 아래위 할 것 없이 가득한 음식. 안색이 무척 좋지 않거나, 혹은 살아생전 무엇이었는지 가늠도 힘든 먹거리들이 속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본인도 고백한다. 장을 볼 때 심히 넉넉히 사두는 고치기 힘든 습관이 있음을. 더군다나 애가 닳아 쉽게 버리지도 못하니 첩첩이 쌓일 수밖에. 몇 번을 타일렀음에도 재석이의 버릇은 결혼하고서도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과일과 채소를 양손 가득 사 들고 와 이웃에 나누고도 상해서 버리는 경우가 빈번히 생겼다. 부인이 임신하게 되자 외조까지 더해져, 그는 평소 임산부가 좋아하던 과일을 짝으로 사 들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임신 초기였을 거다. 퇴근한 재석이 손에 파인애플 한 상자가 들려있다. 8개나 들었구나. 이걸 누가 다 먹냐 타박하면서도 그날만은 달콤한 파인애플이 내심 반가웠다. 입맛도 없던 차, 과일 귀신은 달큼 시큼한 노란 파인애플에 군침이 돌았다. 어느 녀석부터 먹을까 혈색을 살핀다. 과일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많이 먹어왔다. 능숙하게 도마 위에 한 녀석을 올리고 집도를 시작한다. 달달한 향. 샛노랗게 잘도 익었다. 칼질이 마무리될 무렵 문득, ‘임산부가 피해야 하는 음식’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온라인엔 워낙 많은 정보가 있고, 제각기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파인애플이 그 목록에 있었다는 사실이 상기된 건 참으로 유감이다. 일부 포스팅된 글에는 파인애플 심을 먹으면 유산된다는 주장이 있다. 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지, 임산부인데 파인애플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심을 먹지 않으면 괜찮다거나, 웬만한 양을 먹어서는 영향이 없다는 답변이었지만, 선뜻 네모반듯 맛있게 잘린 파인애플을 입에 넣을 수가 없었다. 오호, 통제라. 사랑해 마다치 않는 녀석을 눈앞에 두고도 먹을 수가 없다니. 큰 맥락을 읽어보면 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지만,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괜히 아기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 ‘그때 파인애플을 먹어 이런 낭패를 겪는구나.’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잘라놓은 과일 그릇을 재석이에게 내밀며 임산부한테 파인애플이 좋지 않다 전했다. 기껏 사 온 과일을 정작 부인이 먹을 수가 없다니 그도 실망했으나 이내 왕성한 식욕으로 접시를 홀랑 비워버렸다. 임산부는 옆에서 침이나 흘릴 수밖에. 억울하다. 나도 먹고 싶다고!


원장님은 먹는 일에 크게 제약을 주진 않았다. 당연히 술, 담배는 금해야겠지만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도 괜찮다 하셨고, 두통이 심할 때는 약을 먹어도 된다 했다. 온라인에서 찾아본 글에서도 때려먹는 식의 대량 섭취만 아니면 웬만한 음식은 괜찮단다. 반면 불안한 마음에 하나하나 가려 조심하는 이도 다수긴 하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먹고픈 대로 먹었다는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기엔 앞날을 책임져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결국, 본인의 선택이라는 소리. 걱정 많은 임산부는 어땠을까? ‘파인애플, 팥, 율무, 녹두, 생강, 회, 커피….’ 포스팅된 자료마다 제각각 내용은 달랐지만 어디 한 곳에서라도 언급된 음식은 밥상에서 단호히 제외했다.


입덧이 완전히 사라지던 즈음, 그리 회가 먹고 싶더라. 그런데도 초밥 한 조각 입에 넣지 못한 건 ‘혹시나’하는 염려 때문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진 이야기들이 어느 날엔 임산부를 과하게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그걸 깡그리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이를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다. 누구 하나라도 좋지 않다더라 주장한다면, 그걸 확인해보기도 어렵거니와 흘려듣고 시원하게 무시해 버리기는 참말로 어렵다. 본인 욕구 하나 채우고자 아이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선택을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픈 이를 제외하고 어떤 기준에 따른 분류에도 이만큼 제약이 많은 인간 군상이 있을까 싶다. ‘임산부인데, 해도 되나요? 먹어도 되나요?’ 어느 집단이 이다지도 매사 조심하고 염려하며 하루를 보낼까. 생명이 두 개 달렸기 때문인가? 왜 이리 임산부에게는 하지 말라는 게 많은지. 많은 수가 그저 입으로만 전해오는 내용이기에 누군가의 음모를 의심하기도 했다. 임신한 여성을 괴롭히기 위한, 죄책감을 얹어주기 위한 괴소문 생성. 아, 그런데도 하나 흘려듣지 못하는 스스로가 괴롭다.


감동이를 낳고 구분 없이 실컷 먹겠다. 재석이에게 출산하면 최고 좋은 음식점에 가서 싱싱한 회를 사 오라 일러뒀다. 두툼한 회 한 점을 소스에 푹 찍어 크게 쌈을 싸 먹고 잘 익어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노란 파인애플을 후식으로 먹을 테다. 근처 카페에 들러 머리가 띵하게 달달한 커피 프라푸치노를 벌컥벌컥하시며 오동통한 팥이 잔뜩 들어간 설탕 발린 도넛을 한입 베어먹는 상상을 해본다.


헛헛한 마음에 텅 빈 냉장고 앞으로 가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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