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임신이라는 동그라미 속에서 진종일 웬만한 일에는 반응치 않고, 겨우 숨 붙일 기력만을 남겨둔 채 부유물처럼 시간을 탕진한다. 출혈 후엔 활동 반경마저 작아져 부동의 자세 속에 갇혀있으니 팔과 다리는 힘을 잃어가고, 육신에 밀려 정신마저 굳세지 못한 상태다. 물론, 아기를 갖게 되면 많은 일을 할 수 없을 거라 예상하긴 했다. 다만 대부분 출산 후 육아를 겪으며 맞이할 일이라 여겼지 임신부터 이리 높고 많은 고개를 넘어야 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겨우 아플 때 약을 먹는다거나, 거나한 술판 벌일 일쯤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일상이 이토록 흐트러질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람마다 임신에 따른 고비가 제각각이라고는 하더라만, 나만 이리 고된 것 같아 피로가 더하다.
새로운 생명이 도착했음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건, 수개월 전부터 다니고 있던 교육기관의 정규 과정이 아직 일 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었다. 총 3학기, 1년 하고도 6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졸업을 염두에 둬서 재석이에게 아기를 천천히 갖자 주장했던 이유도 있다. 하고재비의 가장 큰 목표였던 그림책을 만드는 곳. 어릴 적부터 막연히 꿈꿨던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한 나름의 구체적 실천으로,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속해서 자료를 찾고 언젠가는 기관에 등록해 졸업 때는 제법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라 굳은 다짐 속에서 앞날을 그렸다. 하나, 이제 겨우 1학기를 마쳤을 뿐, 졸업까지 꼬박 1년이 남아 출산일과 대조해보니 답이 없다. 휴학도 불가해 정녕 대안이 없더라. 더군다나 버스를 2번,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편도 2시간 거리의 그곳까지 매번 왕복해 다니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는 결론이 난다. 남몰래 사직서를 품고 직장을 다니는 동안, 틈틈이 입학 허가를 위한 에세이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어쩌면 생에 한 번밖에 없을 결혼식 하루 전, 입학 면접이 잡혀 만사 제쳐둔 채 면접관 앞에서 핏대를 세워가며 불굴의 의지를 피력했던 그곳을 제 발로 걸어 나온다. 임산부는 그래야만 했다.
포기했을까? 그럴 리가. 기권할 줄 모르는 불도저, 꿩 대신 닭이다. 똑같을 순 없지만, 수업 기간이 비교적 짧은 대체 기관을 찾았다. 이전과 비교해 교육 과정이 많이 축약되었으나 6개월이면 수료할 수 있다니 만족이다. 출산 전에 마무리 지을 수 있다. 처음 3학기 과정의 기관을 선택했던 건 기왕 작품을 제작할 거라면 충분한 작업 시간이 있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이었다. 나름 미대를 졸업했으니 전시도 치러봤고, 제 생각을 고유의 방식으로 발현해 낸다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기에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을 선정해 등록했었다. 절실함은 초심을 무너뜨리니, 손바닥 뒤집듯 목표가 바뀐다. 결과에 치중할 테다. 내용과 만들어가는 과정은 빛나는 성과물의 뒤편으로 살짝이 밀어내본다. 출산 전,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 책을 만들어야 했다. 임산부에겐 자력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마감 기일이 설정되어 있으니까. 한정된 시간이 주는 압박, 그 속에서 사력을 다해 발버둥 친다.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 그가 바로 불굴의 하고재비 아닌가. 망설임 없이 6개월짜리 과정을 신청했고, 내년 1월이면 모든 수업이 끝나 결과물을 손에 들게 된다는 교육 안내문을 읽었다. 개강은 9월 중순이란다.
출혈은 개강을 코앞에 두고 찾아왔다. 가벼운 집안일도, 단순한 산책도 금지된 임산부에게 수업은 절대 허락되지 않는 소망. 또다시 등록을 취소한다. 이제는 대안도 없다. 포기. 거칠 것 없이 앞으로만 가던 하고재비도 품속의 자식 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제 이름 석 자 아로새겨진 하나뿐인 나만의 그림책. 제법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엔 그 책을 높이 들어 세상에 당당히 선보이리라 원대한 꿈을 가졌건만, 한 발 가까워졌다고 여겼던 순간이 다시금 두 발짝 멀어져간다. 목적한 바를 이룰 그때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임신의 고달픔도 깡그리 잊고 스스로 잘 버텼노라 칭찬하며, 성취감에 잔뜩 취한 채 창작의 고통으로 작품을 낳듯 내 새끼도 한 번에 순풍 낳을 용기를 얻을 것 같았는데. 현실은 이상과 너무도 먼발치에 있다.
다르지 않은 내일만이 눈앞에 있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기억에 남지도 않을 또렷하지 못한 하루를 보내겠지. 함께 등록하기로 한 친구에게 첫 수업이 좋았노라며 연락이 왔다. 부럽다. 마음은 있으나 어쩔 도리는 없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앞으로의 40주를 계획하며,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았다. 건강하고 수월한 출산을 위해 임산부 요가를 배울 것이며,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기에 예비 부모 강좌에서도 학구열을 불태우리라 뜻을 정했다. 처음 겪는 임산부 생활, 후회 없이 시간을 쪼개 쓰리라 재차 결심했다. 하고재비는 임산부로서 하고 싶은 일들로 다시 한번 ‘하고 싶어’ 목록을 만들어댔다.
현실로 돌아온다. 운동은커녕 계획에도 없던 부동의 생활. 침대에 바로 누워 천장에 달린 전등이 이리 생겼구나 24시간째 깨닫고 있다. 유일한 일과는 세끼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요,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를 제외하곤 채 소화도 되지 않은 위장으로 몸을 눕혔다. 출혈이 있기 전까지 모든 게 해볼 만하다 여겼다. 초기 임산부의 몸이 이리도 유약한 줄 몰랐으니, 과도한 작정을 했던 것도 같다.
예전 직장 동료의 말이 떠오른다. 이미 6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던 그녀와의 점심시간, 대화의 주제가 육아로 흘렀다.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내 사정과 맞물려 어느새 이야기가 출산과 육아에까지 닿았다.
“아이를 낳으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아져요. 내 맘대로 안되거든. 계속 좌절하고 포기하고 그런 과정이 무한정 반복된달까? 절대 하려는 대로 안되더라고요. 그러니 성격도 변하게 돼요. 이걸 관대해진다고 해야 하나, 단념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육아 중인 친구들로부터 빈번히 같은 목소리를 들어왔다. 세상사 해탈한 사람처럼 화를 내지도,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는 경지. 아이를 대할 때도, 남편을 대할 때도 그 태도에는 변화가 없으니 흘러가는 대로 둘 뿐이라. 육아가 시작되면 마주하게 될 세상이 어찌 내겐 속히 당겨온 기분이 들었다.
꼼짝 않고 근심 공장만 바삐 돌린다. 고작 몇 달 지났을 뿐인데 이리도 포기할 일이 많구나. 궁금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아주며 지내야 할까. 그건 포기일까 선택일까. 아기와 함께하길 택했으니, 자발적 포기라 해야 옳을까.
9월의 어느 날, 30년간 쉼 없이 내달리던 하고재비는 관짝같은 침대 위에서 그렇게 쓸쓸한 은퇴를 맞았다.
/
매주 병원에 들러 초음파를 받는다. 안타깝게도 핏덩이는 자연히 흡수되지 않았고, 다행히 중간중간 있던 출혈이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딱히 좋은 결과도 없다. 원장님은 대형병원으로 옮기길 권하셨다. 두 달 가까이 별다른 차도가 없으니 이대로 가다간 출산 시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진료 의뢰서를 들고 병원을 나서는 길, 전원이 결정된 날은 공교롭게도 임산부의 날이다. 입구에서는 기념 부스를 설치해 진료를 마친 이를 대상으로 경품 추첨이 한창. 응모함 속에 손을 집어넣어 당첨권을 한 장 뽑으란다. 나가는 길을 막고 서 있으니 꼼짝없이 응할 수밖에. 아기 물티슈와 임산부 치약, 어째 표정이 좋지 않음을 읽었는지 주스도 덤으로 주셨다. 품에 가득한 깜짝 선물에도 즐거움은 없다.
‘이걸 사용할 수는 있을까?’
허탈한 걸음으로 택시를 잡았다.
‘평범한 임신이 이렇게 어렵나. 내가 얼마나 부족하기에….’
바닥으로만 치닫는 나쁜 생각. 북받치는 서러움에 서류 봉투와 선물 꾸러미를 어설프게 껴안은 채 흐느낀다. 달리는 차 안은 고요하기만 했다. 조용히 거울로 승객을 훔쳐보던 기사님은 도착지까지 아무 말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