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그리움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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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으로 싹을 틔운 가시밭길이 줄곧 이어진다. 5개월 차, 이쯤 되면 잦아들 줄 알았던 울렁임이 생각보다 길어진 마라톤이다. 푹 삶아진 양배추처럼 시작되는 아침, 오른손으로 명치 쪽을 더듬으며 행여 메슥거림이 옮겨갔나 진단한다. 하루 시작을 알리는 물 한잔에 다시금 시작되는 번민. 살기 위한 목 넘김이 마중물이 되어 곧 어지러움이 시작될 거란 걸 안다. 무엇을 먹어야 펄펄 대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겨운 고뇌에 빠진다. 평생 끼니때는 거른 적 없어, 여전히 배를 곯릴 생각은 일절 없구나. 이리도 식사에 성실하니, 바깥 음식에 진력이 나자 겨우 하루를 버텨내기도 고달파졌다. 속을 달랠 묘약을 찾는데도 넌더리가 난다. 못 해 먹겠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 대학 시절부터 막역한 두 살 터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밥을 못 먹으니 죽겠어요.”


다음 날, 고꾸라져가던 임산부 집으로 구호 물품이 도착했다. 마음이 쓰였나 보다. 답답함의 포효였는데 어째 보살핌의 갈구처럼 느껴지게 했나 순간 민망스럽다. 결코,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 홀로 감당치 못해 터뜨렸더니 엎드려 절받기가 돼버렸네. 손도 크셔라. 많이도 보냈다. 언니는 종류가 다른 즉석밥 3박스와 마트에서 장을 본 먹거리 몇 가지, 전통 시장 반찬가게에서 주문한 찬 수십 개를 두 차례에 걸쳐 현관 앞까지 대령해 놓았다. 물론 배달 앱을 통해. 직접 차려 먹는데 익숙한 자, 눈부시게 발전한 운반 시스템이 신기할 따름이다. 송구한 고마움에 그나마 성한 손가락을 놀려 언니에게 답인사와 선물 세트를 사 보냈다. 워낙 통이 큰 사람이라 이상은 먹을 수도 없으니 더는 보내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냉장고를 꽉 채우고도 남을 음식에 재석이는 사뭇 반가운 기색이다. 무엇부터 먹을까 고민하는 그의 곁에 앉아 전자레인지에서 달궈진 즉석밥으로 끼니를 때워본다. 몇 숟갈 들지 못하고 내려놓으려다 챙겨 보낸 이의 성의에 미안함이 앞섰다. 임신 전이었다면 순식간에 동이 났을 찬거리가 며칠째 냉장고 안에서 버티고만 있다. 재석이가 열심히 먹어대고 있지만, 아침에는 빵을 즐기는 이라 좀처럼 가짓수를 줄이지 못한다. 임산부는 눈이 즐거우리만치 풍성한 찬거리에 잠시 구미가 당겼음에도 어째 삼키질 못한다. 입에 맞지 않다. 미각 하나 만큼은 까다롭지 않은 이였는데 배 속에 생명을 품은 후엔 무엇을 먹어도 낯선 향이 난다. 즉석밥 용기의 플라스틱 냄새까지 느낀다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까? 결국, 반찬 몇 가지는 뚜껑도 열려보지 못한 채, 삶의 기한을 넘겨 쓰레기통을 향한 편도 승차권을 끊었다.


집 반찬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가게 표 찬거리는 내 집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뒤집힌 속에 역효과를 불렀다면 불렀겠지. 멸치볶음 하나도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맛과 상이했고, 별다를 것 없다고 여겼던 계란말이도 예상한 맛은 아니다. 마땅히 입에 익어야 하는 것들이 예측에서 벗어나자 거북함은 곱절이 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늑한 보금자리로 돌아와 엄마의 손길로 채워진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 몇 가지와 밥통에서 막 퍼낸 흰 쌀밥으로 차린 한 상을 상상해보라. 기대했던 맛이 한 치 오차도 없이 입안으로 퍼져간다. 익숙함이 주는 만족감, 정서적 안정. 무엇이 더 행복일까. 이 때문에 타지 생활을 하는 이들이 그리도 집밥을 갈구하겠지.

가게에서 사다 날라진 반찬통 표면에 붙은 ‘엄마 손맛’이라는 문구에 홀려 잠시나마 고대했던 임산부는 그대로 밥상을 밀어버린다. 남의 집 손맛일진 몰라도, 정녕 우리 가족 누군가의 손끝에도 못 미친다. 당장 한 끼 정도는 때울 만했으나 눈칫밥 먹으며 타인 집에 기거하는 객식구처럼 속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모든 제품이 일회용 용기에 담겨있어 합성수지를 함께 섭취하는 기분마저 들었기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득달같이 식탁에서 일어나 버렸다. 음식 남기는 걸 보지 못하는 재석이의 만류가 아니었다면 죄다 일찍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언니가 알면 서운하겠지만, 뿔이 끝까지 난 임산부는 당장 난리가 난 속을 달래는 게 먼저다. 데우지 않은 즉석밥도 꾸준히 용기 고유의 향을 뿜어냈기에 찬장 속으로 숨겨 버렸다. 눈으로도 메슥거림을 느낄 때라 그래야만 어지러움을 면했다.


소파에 기대앉아 넋을 빼고 있다. 자꾸만 신경을 거스르는 내장의 흔들거림에 까닭 없이 화도 났다가 이런 처지가 가엾어 스스로 측은하기도 하다. 얼른 쫓아야 할 텐데, 방도를 모르겠다.


문득,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었다. 빨갛게 기름이 뜬 얼큰한 소고기 뭇국.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경상도에서나 그리 끓이지 다른 지역에선 말간 국에 밥을 즐긴단다. 맹탕 국보단 빨간 맛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맑은 소고깃국은 어림도 없지. 숙주를 가득 넣고 팔팔 끓인 소고기 뭇국은 붉은 겉모양과는 달리 그다지 맵지 않아 화끈함을 즐기지 못하는 이의 속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랜 시간 우려낸 시원한 국물은 마침맞게 칼칼하고, 흘러나온 채수가 합당하게 달콤하다. 넉넉한 건더기를 한 숟갈 푹 건져내 목구멍에 넣고, 뜨끈한 국물을 그릇째 들어 한 입 삼켜내고 싶다. 그럼 이 지겨운 불쾌감도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고 배달 앱을 뒤적거린다. 없다. 소고기국밥이나 육개장은 집에서 공을 들여 끓인 소고기 뭇국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집에서 먹어야 한다. 가스비가 잔뜩 나오도록 잔불에 오래도록 우려내던 할머니의 소고기 뭇국. 그래 그것이어야만 했다.


한동안 떠올리지 않던 할머니를 생각한다. 어처구니없이 한 그릇의 소고기 뭇국에서 발발한 부재에 대한 상념은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던 임산부의 하루에 깊이 박혀 나가 줄을 몰랐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너무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감당 못할 만치 간절하다. 곁에 와 따끈한 국 한 그릇 함께 할 수 없어 슬펐다. 어찌해도 다시 볼 수 없으니 서럽다. 벌써 곁을 떠난 지 2년이 됐구나. 짝을 만나 내 가정 꾸리고 사느라 한시도 잊지 않겠다던 다짐마저 까맣게 지워버리니, 이제 와 제 몸 고되다고 손길을 그리는 이기적인 손녀가 참 못났다. 날 때부터 당신이 떠나시던 날까지 손수 밥상을 차려주셨던 할머니는 늘 바쁜 부모님 대신 평생을 돌봐주셨다. 손녀가 다 자라 혼자 살아갈 나이를 한참 지날 때까지 아무것도 재지 않고 모든 걸 해주셨다. 야무지고 솜씨가 좋았다. 모든 것이 정갈했고, 반듯했다. 그리하려니 시간 대부분을 집안일에 쏟을 수밖에. 매끼 압력솥에 새 밥을 지으셨고, 늘 주방에서 찬거리를 다듬고 계셨다. 쓸고 닦아 윤이 나는 집은 당연한 줄 알았다. 각 잡힌 옷가지들을 마구 꺼내 흩트려 입을 줄만 알았지, 둥지 속 입 벌린 새끼 새 마냥 받아먹고 누릴 때는 몰랐다. 비로소 집안 살림을 맡고 보니 할머니의 정성이 얼마나 대단했으며, 그 사랑이 또 얼마나 부지런했는가를 깨닫는다. 가슴이 처연해졌다.


언젠가 초등학생 시절을 담은 그림 일기장을 찾았다. 하루의 자발적 반성이라기보단 의무였던 그 기록장엔 초등학생의 하루, 24시간 중 서툴게 꼽아본 특별한 순간이 담겨있다. 아득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자신의 흔적. 가벼이 훑어보다 식탁이 그려진 그림에 시선이 멈춘다. 제목은 ‘해물탕’, 아주 원초적이며 직설적이구나. 내용도 뻔할 수밖에. 저녁 식사 시간 할머니가 끓여준 해물탕이 맛있었다는 게 전부다. 식탁 옆에 나란히 그려진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 반달 눈을 한 채 웃고 있다. 어린 날, 갖가지 해산물을 넣고 푸짐하게 끓여낸 해물탕이 여느 날의 식탁과는 달랐기에 일기로 남길 만큼 비범했나 보다. 별것도 아니라 우습다가도 나름 순수했음에 귀엽다. 그리 30년이 넘는 시간을 할머니의 손맛에 길들며 자랐다. 집밥이 세 치 혀의 표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비슷한 입맛을 가진다. 알지 못하는 사이 할머니의 맛이 나의 것이 되었고, 우리는 한대 먹는 밥상에서 평온을, 오가는 숟가락에서 사랑을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그 맛이 사무치게 그립다. 몇 달을 물에 빠진 휴짓조각처럼 지낸 탓일까, 약해진 심신이 형체 없이 녹아내린다. 소고기 뭇국에서 시작된 할머니에 대한 간절함은 어느새 눈물이 된다. 대낮부터 소파에 널브러져 속을 달랠 음식을 찾다, 마음대로 뻗어나간 익숙한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운다. 참, 장관이다.


이와 같은 의식의 흐름으로 입덧이 계속되는 동안 몇 번을 할머니 생각에 어깨를 들썩였다. 말랑해진 감성은 잊혔던 기억까지 끄집어내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길 노골적으로 바란다. 50살은 어린 손녀가 암 수술을 했을 때도, 할머니는 달걀 한 판을 족히 털어 네모반듯 예쁜 달걀말이를 싸 보내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던 된장찌개는 입에 꼭 맞아 지겨운 줄 몰랐고, 하루 한 끼는 밀가루로 때웠던 옛 시절의 습관이 남아 주말 점심은 항상 잔치 국수가 상에 올랐다. 당연했던 순간들. 일기는커녕 메모조차 하지 않을 흔한 식사 시간이었지만, 새삼 소중했음을 이제 겨우 알아차린다. 잊고 있었다. 손 닿는데 마구 펼쳐진 혀를 자극하는 먹거리에 친숙함은 까맣게 지워져 갔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인지 더는 마주할 수 없는 밥상에 대한 아쉬움인지 배가 불러가는 손녀는 그렇게 며칠을 운다. 어쩌면 참는 도리밖에 없는 예비 어미의 역할에 지쳐 누군가 보고픈 마음을 핑계 삼아 덮어 씌워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곁에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부실한 식탁 때문에 자신을 그리워하는 손녀가 어이없으실까. 살아계셨다면 당장 부산 집으로 달려가 갖은 응석을 부릴 테지. 주방을 빙빙 돌며 서둘러 따끈한 밥상을 받을 생각만 해댔겠지. 하나, 그곳에도 당신의 영정 사진을 담은 액자 하나 외엔, 더 이상 할머니의 흔적은 없다.


절대 다시 잡을 수 없음에 애통함이 더한다. 따뜻하고 압도적이었던 할머니의 보살핌은 여태껏 그 누구도 채우지 못했다. 열 달 배 아파 낳아주신 엄마도 매한가지. 어쩌면 나보다 더 할머니를 그리는 이가 엄마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몹시 애를 쓰고 계시니까.


다시 휴대전화를 들어 소고기 뭇국을 검색한다. 백번 양보해 얼핏 닮은 음식을 주문표에 담고도 쉽사리 결제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어차피 같지 않음을 안다. 일찍 실망하여 더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싶지 않을 뿐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수도 없이 먹었던 할머니의 소고기 뭇국을 떠올려 본다. 달달한 채소와 군데군데 기름이 떠 있는 얼큰한 빨간 국물, 야들야들한 육고기를 가끔씩 씹어가며 ‘꿀떡’ 식도로 밀어 넘겨본다.

아, 얼마나 시원한가. 당장 전쟁통 같던 내장 속에 평화의 휴전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은데.


보고 싶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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