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초진에서 원장님은 다음번 방문은 처음으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날이니 될 수 있으면 남편과 함께 오라 일러주셨다. 늘 바쁜 재석이 사정을 알기에 진료를 최대한 늦은 시간으로 잡았고, 8월의 금요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먼저 도착해 대기실에 앉아 있자 재석이도 곧 도착. 그는 곁에 앉아서도 연신 업무 전화를 받아대는 통에 대화는커녕 눈을 맞출 겨를도 없다. 진료는 금방 끝날 텐데 실속 없이 오라 했나 미안함이 잠시 스쳤지만, 오늘은 상징적인 날이니 재석이에게도 부모의 사명감을 담뿍 안겨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얼른 겸연쩍음을 지운다. 역시 짧지 않은 대기 후, 분주한 그의 손을 잡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원장님은 변함없이 같은 분. 첫 만남, 사근사근한 모습에 마음이 녹아 심란하게 시작한 임신 기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더라.
임신 사실에도 반전은 없다. 아기가 도착한 지 7주. 예정일은 2021년 3월. 어찌 그리 계산이 척척하고 나오는지 무지한 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곧 어두운 검사실에서 초음파 준비를 마쳤고, 원장님은 잠시 진료실 밖으로 나가 여전히 회사 전화를 받고 있던 재석이를 불렀다.
의자에 누워있으니 머리 위로 내 속을 훤히 비추는 화면이 보인다. 새카맣고 하얀 것들로 뒤섞인 그곳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쉽게 알 수는 없었다. 원장님의 설명에 따라 시선을 옮긴다. 화살표가 가리킨 쪽엔 작은 고구마처럼 생긴 검은 타원이 보였고, 그 속에 하얀 무엇인가가 있다. 초보의 눈엔 그저 흐릿한 덩어리들이 뭉쳐져 있는 정도로 보였기에, 얼렁뚱땅 원장님의 말을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여 본다. 이제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차례. 드디어 가슴 벅찬 순간이 시작되려나? 검은 화면만으로는 아기의 존재가 실감 나지 않아 다시 한번 기대를 품어본다. 초음파 기기를 아랫배로 갖다 대자 벼락같은 소리가 검사실 전체를 울렸다.
‘으쿵, 우킁, 으쿵, 우킁….’
‘욱’과 ‘쿵’ 사이의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아기의 심장. 화들짝 놀랄 만큼 크고 세차다. 처음 접한 아기의 심박은 무엇에 쫓기는지 빨리도 뛴다. 이리 조급하게 뛰어도 되나 심려가 될 만큼 신속하게 달렸다.
“들리죠? 아기 심장은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뛰어요. 아주 잘 뛰고 있네요.”
원장님의 미소가 더욱 따스하게 다가오는 건 기분 탓인가. 고요하기만 했던 몸속에 그리도 힘찬 심장이 뛰고 있었다니 그제야 녀석의 실체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가슴이 아닌 아랫배에서, 그것도 내 것이 아닌 다른 이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생명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리 잡다니. 겪어보니 참으로 신비한 일이구나. 아기의 심장 소리는 단순한 쿵쿵거림이었지만, 고민 많던 이에게는 그간의 일렁이던 마음을 달래주는 토닥임처럼 느껴진다. 몰래 감정이 격해져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고였다. 이것만은 기쁨이 그 토양이어라.
‘정말 아기가 있어.’
제 눈으로 보아야 안심하는 의심 많던 자, 이제야 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평소 눈물이 많던 재석이는 의외로 아무 반응이 없다. 당황스러울 만치 아무 때고 눈이 빨개지는 감수성 충만한 그가 감격에 겨워 한바탕 울음을 쏟아 낼 줄 알았는데 가만히 서서 아기 심장 소리를 듣고만 있다. 진료실에서도 업무 전화를 연이어 받아서일까 부모로 전환하지 못한 그는 그렇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손발이 맞아야 어미 아비가 되지. 그의 덤덤함이 서운했기에 이 순간을 기억하겠노라 속으로 삼키며 몰래 눈을 흘겼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재석이는 다시 회사로 복귀했고, 7주 차 임산부는 2주 뒤 진료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오지도 않은 배를 부여잡고 조심히 한 걸음씩 내디딘다. 보고 들은 게 있지 않나. 이제는 어엿한 임산부이기에 어설픈 흉내를 내본다.
넉넉히 엽산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에, 재석이 몫으로 주문한 엽산까지 모두 임산부 차지가 되었다. 유달리 바뀐 일상은 없다. 대체로 이전처럼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돌아본다. 정말 아기가 찾아올 전조는 없었나? 왜, 태몽이라 의심할법한 꿈같은 것 말이다. 평소 깊이 잠들지 못해 얄궂은 꿈을 자주 꾸니, 딱히 아기를 밸 것이라 여길만한 날을 집어내긴 어렵다. 재석이도 특정할만한 꿈은 꾸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는 막내인 나를 가졌을 때, 태몽으로 길을 가다 채소 몇 개를 줍는 꿈을 꿨다고 한다. 너무도 미비한 탄생의 시작에 실망했기에, 나의 아기가 생긴다면 대단히 웅장하고 화려한 꿈을 꾸겠노라 다짐해왔으나 낭패다. 이제부터 꾸는 꿈은 아기의 도착을 알고 꾸며낸 것이니 무효다. 그러고 보니 전혀 기미가 없던 지난 5월,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좋은 태몽을 꿨다고 말씀하셨다. 그리 미리 태몽을 꾸기도 하는가?
굳이 찾으려니 이상이 있긴 했다. 그간 왜 그리 잠이 쏟아지던지. 몸이 자꾸만 가라앉고, 견딜 수 없게 졸렸다. 게을러짐이 극에 달했다 여겼다. 일벌레라는 소리를 들으며 융통성 없이 직장 생활을 했던 터라 부족한 잠의 정량을 인제야 맞추는구나 짐작하며 잠이 오면 침대든 소파든 가리지 않고 누웠다. 이 정도는 보상받을 때도 됐다며 엉뚱한 합의를 했다. 한때는 불면의 대명사로 불리던 이가 시도 때도 없이 기절해 버리니, 사람이 일을 놓아 이리된다 싶었으나 매번 눈꺼풀이 내려앉아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아마 그때가 임신 초기였나 보다. 급격히 변한 수면 패턴이 정해진 일과 없이 지내는 바뀐 생활과 맞물려 특별한 의심을 받지 않았던 거다. 징후는 있었다. 임신 소식을 늦게 아는 사람은 수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모른다고 하니, 여차여차 상황이 물리면 그럴 법도 하겠다.
병원에서는 잘 먹고 잘 자고, 많은 물을 마시길 권했다. 원체 먹는 걸 좋아하고, 요사이 잠도 늘었으니 별문제는 없다. 하나, 온종일 물 한잔 겨우 마시는 건조한 이였기에 매번 잠자리에 누워서야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뭐랄까. 아직도 아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아 어미의 직분도 잊게 된다. 실제 같이 있다는 느낌이 덜하다 보니 이제껏 홀로 지내왔던 방식이 임신으로 인해 쉬이 바뀌지는 않더라.
아기는 잘 있을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랫배를 내려다본다. 미동도 변화도 없는 그곳에서 잘 자라고 있는 걸까? 꼼짝없이 다음번 진료까지는 속만 태운 채 지내야 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만, 임산부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눈으로 보고 왔으나 오늘 또 궁금하고, 내일은 더 궁금할 테다. 매일 매일 확인하고만 싶다. 아무 때고 속을 벌컥 열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른 아침, 엄마가 방문을 열어젖힐 때는 그리 싫더니. 어미가 되려니 뻔뻔하게 처지가 바뀐다. 아가야, 뭐라고 말이라도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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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잠시 외출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재석이와 찾아온 생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아기를 뭐라고 부르지?”
“막 지어야 건강하게 자란다더라. 튼튼이, 쑥쑥이 뭐 이런 거 있잖아.”
주워들은 얕은 상식을 뽐낸다. 센 발음으로 지어야 아기가 잘 듣는다나.
“음. 그럼. 힘 세 보이게 포동이로 할까?”
“그래. 좋네.”
미리 생각지 않았기에, 재석이의 제안을 쉽게 수락했다.
“아, 아냐. 포동이는 너무 토실토실한 느낌이 들어. 다른 이름 없을까?”
“음…. 오빠가 감 좋아하니까 감동이는 어때?”
재석이는 감을 상자째로 사다 두고 먹는 이다. 평소 말장난하듯 떠오른 대로 갖다 붙였다.
“감동이? 오, 좋은데? 예쁜 감도 의미하고, 우리한테 감동적인 아이잖아.”
“큭, 맘대로 해.”
막 짓자더니 정말 마구 지었다. 생각나는 대로 던진 단어를 조합해 어미 배 속에 있을 때 불릴 이름을 만든다. 감동이. 그리 붙이고 나니 존재감이 더하다.
‘우리 아기 감동아.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