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예민함은 자신 있다. 이는 타고난 좋은 시력과 상승효과를 발휘해 특히 ‘변화’에 민감하다. 본인 가족들조차 지나치는 미세한 달라짐을 알아차리는 덕에 사람들은 가끔 이 뾰족한 시선을 부담스러워할 때도 있다. 시각적 변화뿐이랴, 이상 기류를 알아채는데도 재빠른 편. 비단 타인에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어김없이 자신에게도 적용되기에 2년 전 몸속에 있던 암 덩어리도 서둘러 찾아내지 않았나 싶다. 평소 같지 않던 신체의 ‘변화’를 예사로 지나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급한 성격도 한몫했으려나.
7월의 아침. 여느 날처럼 눈을 떠 재석이의 출근 준비를 도왔다. 이상하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분이 그랬다.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과 함께 구매해뒀던 5개의 임신 테스터기 중 하나를 집어 화장실로 간다. 몸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도 생리 주기만큼은 칼 같았기에 예정일보다 하루가 늦춰진 생리의 이유를 확인해야만 했다. 결혼 전이었다면 요사이 몸이 좋지 않았나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결혼했으니 임신이라는 변수도 함께 고민해 본다. 정말 임신을 의심한 건 아니었으나 그날 아침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테스터기. 상자 속 설명서를 자세히 읽고, 손에 들린 휴대 전화로 시간을 잰다.
‘설마, 임신이겠어?’
의심이 반이다. 눈으로 보아야만 신경을 건드리는 불확실함을 지울 수 있겠지.
어라. 설명서에 명시된 3분이 채 지나기도 전, 작은 표시창에서는 ‘변화’가 나타났다. 너무도 눈에 띄어 부정할 수조차 없는 성급히 떠오른 빨간 결과선.
결혼을 준비하며 들락거렸던 온라인 카페에는 종종 임신 여부를 묻는 글이 올라오곤 했다. 희망 또는 두려움을 품은 채 덧붙여진 수많은 테스터기 사진들. 대부분 명확한 예는 없다. 자세히 보아도 희미해 어찌 보면 선이 있는 것도 같고, 또 어찌 보면 맹탕인 그 막대들의 사진을 마주했던 기억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하나, 그들처럼 고민할 여지도 주지 않는구나. 어찌 손에 들린 붉은 선은 이토록 선명한가.
과히 또렷했기에 검사기의 고장을 의심했다. 처음엔 온라인으로 묶음 채 싸게 사들였더니 불량이 왔나 싶었다. 당연지사 성능에 대한 불신은 검사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에이, 잘못 나온 거 아냐?’
눈앞의 두 줄을 믿지 못하는 이는 임신이라 주장하는 조그만 막대를 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재석이는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다.
‘말할까?’
본격적으로 아이를 갖자 이야기를 나눈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았고, 실상 임신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한 톨 알아보지도 않은 상태다. 가족계획을 속전속결로 변경한 후 바뀐 거라곤 식탁 위 엽산 2병뿐.
어찌 말문을 터야 하나 망설이던 차 머뭇거리며 서 있던 내게 재석이가 물어온다.
“왜 그래?”
“어…. 있잖아, 오빠. 아니 그냥, 그냥 해본 건데. 아침에 테스트했더니 임신이라고 나오네? 그런데 이게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서. 병원에 가 볼까?”
“응? 그래? 그래. 시간 될 때 다녀와.”
플라스틱 막대의 성능을 모르는 자. 재석이 또한 ‘설마’하는 생각이 먼저였나보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다시금 거울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출근 준비를 마쳤다. 다른 말은 없다. 서로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임신이 그렇게 쉬울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고작 몇천 원 하는 테스터기의 정확성 또한 깊이 신뢰하지 못했다. 무덤덤한 재석이의 반응이 오히려 마음을 안심시켰다. 괜히 놀랬다 싶어 얼른 테스터기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같은 날 오후, 해가 들이치는 거실에 앉아 집 주변 산부인과를 검색한다. 이왕이면 임신과 출산으로 유명한 곳으로 가보고자 열심히 진료 후기를 찾았다. 아이를 갖겠다 마음먹었음에도 왠지 설렘보다는 불안함이 컸기에 보다 전문적인 곳에서 명료한 결과를 듣고 싶었다. 병원 두 곳이 후보에 든다. 오랜 비교 끝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병원으로 마음을 굳혔다. 건물 한 동이 모두 산부인과인 데다 원장님이 열 분 이상 계시다니, 이 정도면 꽤 믿을만한 덩치다. 선택받지 못한 곳은 근래 리모델링을 해 최신 시설을 자랑했지만, 지나치게 깔끔하고 반짝거렸기에 본디 화려함과 거리가 먼 이에겐 괜한 거부감이 들었다.
죽지 않은 추진력,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로 예약을 잡았다. 주말 진료는 시간별 예약이 되지 않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당장 테스터기의 정확성을 확인해야만 했다.
/
토요일. 이름을 알린 병원인 만큼 대기가 길다는 정보를 익히 접했기에 서둘러 나선다. 대기실은 이미 만원. 한 자리 차지하고 멀뚱히 앉아 하릴없이 사람들을 관찰한다. 대기실을 채운 대부분 여성은 남편으로 보이는 이와 짝을 맞춰 앉아 있거나, 부른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휴대 전화를 바라보고 있다. 임신을 경계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방인은 실속 없이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겸연쩍음을 달랬다.
손에 든 접수증 번호가 곧 화면에 떴고, 초진이라는 말에 접수원은 어느 원장님께 배정받기를 원하냐 물어왔다. 예측 못 한 질문. 병원 평판은 열렬히 찾아봤으나 의료진에 대한 정보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 홈페이지를 훑어보기만 했을 뿐, 어떤 분들이 계신지 알지 못하니 할 말이 없다. 입을 떼지 못한 채 서 있으니 접수처 옆 방으로 가보라 일러주셨다. 초진 상담원이 따로 계셨고, 간단한 문진을 하셨다. 겨우 용기를 내 많이 기다려도 괜찮으니 진료를 잘 보는 원장님으로 소개해 달라 요청했다. 고민 없이 여성 원장님 한 분을 꼽으시며, 새로 오셨지만 다년간 유명 병원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있음에 자신의 추천이 매우 적합함을 강조하신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대기명단이 뜬 화면을 본다. 화면에는 원장님 네 분의 성함이 보였고, 각기 아래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이름이 나란히 줄을 맞춰 서 있다. 조금 전 배정 받은 원장님 밑으로는 대기 인원이 둘 뿐. 다른 쪽은 화면을 차고 넘치도록 북새통인데 어찌 이럴 수가. 상담받은 직원분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며 순간 얼굴이 굳는다. 미리 알아보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임신 여부만 확인하고 차후엔 원장님을 바꿔 진료받는 방안을 택하지 싶어 뒤늦게 휴대 전화로 치밀한 조사를 시작한다. 가장 빈번히 노출되는 원장님은 누구신가. 역시, 화면 속 대기자를 몰고 다니는 원장님이구나. 새로 오셔서일까, 곧 진료받을 원장님은 의심했던 대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별로 없다. 아. 겨우 산부인과까지 왔는데 미리 알아보고 올걸, 후회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대학병원에 다니며 기다림에는 인이 박인 건지, 지루함은 없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 병원은 평일에 와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이름이 불린다. 미소가 친절하신 간호사와 원장님. 상냥한 복식조다. 어제 아침 테스트를 했고, 빨간 줄을 보았노라 전했다. 원장님은 이전 생리일을 확인하며 임신한 지 4주 정도 된 것 같다 진단하셨다. 4주면 초음파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몇 주 뒤 다시 방문하고, 오늘은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하고 돌아가라 덧붙이셨다. 의아했다. 아무 검사도 하지 않고 임신 진단을 받다니. 임신은 이런 겁니까? 갑작스러움에 더해, 이 큰 병원의 원장님이 몇천 원짜리 테스터기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지금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질 않아 다시 여쭸다.
“선생님, 테스터기 결과가 확실한 건가요?”
“네, 요즘은 테스터기가 잘 나와서 소변 검사로도 안 잡히는 결과를 테스터기가 먼저 잡아내기도 해요. 오늘 혈액과 소변 검사하고 가시면 며칠 후에 다시 한번 정확한 결과 알려드릴게요.”
“아, 네….”
얼렁뚱땅 임산부 선고가 내려졌다. 생리가 고작 하루 늦어졌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던 이 배 속에 아기가 생겼다니. 잔뜩 날이 선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봐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데. 정말일까?
같은 날 저녁, 퇴근한 재석이에게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 확실한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 전했다. 여전히 그 작은 플라스틱 막대를 믿을 수가 없었기에 원장님의 임신 진단은 꼭꼭 숨겨두기로 한다.
/
일요일, 종종 그랬듯 재석이와 산책을 나섰다. 한적한 공원 길을 걷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불필요한 대화로 기분을 망칠까 망설이다 슬쩍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산부인과에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어제 검사하신 결과가 나와서 일찍 전화해요.”
일요일도 근무하시나. 며칠 걸린다던 결과가 속히 나온 모양이다.
“축하드려요. 임신이네요.”
검사 결과는 기준 수치를 가뿐히 넘겼다. 더불어 3-4주 뒤 병원을 재방문하라는 안내를 받아 3주 뒤로 진료 예약을 잡았다. 그때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 했다.
“누구야?”
“오빠.”
“응?”
“나 임신이래.”
“응?!”
재석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더니 한껏 미소를 머금은 채 다가와 꼬옥 안아준다. 호들갑을 겸비해 이전까지 마구 걸어가던 산책길을 살뜰히 살펴, 소중한 임산부를 향한 극진한 대접을 시작했다.
복잡하다. 정신이 얼떨했다. 대게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임신 소식에 기쁨과 환희의 눈물도 흘리던데, 현재의 감정선은 절대 그 근처도 가질 못한다. 따지자면 좋지 않은 쪽도 아니지만, 또 그만큼의 흥분은 없다. 찬찬히 발을 옮겨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아기가 생겼다고? 진짜?’
스스로 되물어봤자 답은 없다. 임신입니다. 현대 의학이 말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어떠한 변화도 없고, 증상도 없다. 병원으로부터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을 뿐이고, 어제의 나와 딱히 다른 점은 찾지 못한다. 현재 기분? 굳이 정의하자면 두려움에 가깝다.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염려했던 순간을 비웃듯,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들어섰음에 선득하다. 오롯이 혼자만의 자유를 취하던 육신이 멀어져가는 기분이 들었다.
재석이도 크게 실감한 기색은 아니다. 욱욱거리는 입덧이 임신을 알리는 신호인 줄이나 알았지 이토록 평탄하게 아기가 찾아오리라곤 그도 예상치 못했다.
괜히 요동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왜.”
“엄마.”
“왜.”
“엄마, 나 임신한 것 같아.”
한동안 말이 없던 엄마의 목소리에는 기쁨도 당혹스러움도 없다.
“어떻게 알았노? 얼마나 됐는데?”
며칠간 있었던 일들을 늘여놓자, 예상치 못한 단호함이 돌아왔다.
“너무 초기니까 아직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일단 몸조심하고.”
어찌 이리 무덤덤한가. 마음 한구석에서 살짝 가슴 뭉클한 상황도 그려봤는데 그런 광경은 코빼기도 보기 힘들구나. 냉정한 엄마. 딸의 건강에 불신이 많아서일까. 엄마는 밝히면 큰일이 날 비밀처럼 입단속을 시켰다. 아니 이거 경사 아닌가? 어깨춤이 먼저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혀 기대치 못한 대답을 듣고 되려 뭔가 잘못한 사람처럼 혼이나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뱃속에 자리 잡은 아기를 아직까진 인정하지 않았다. 좀 더 튼튼히 뿌리를 내려야 생명체로 받아들여 주려나.
아무에게 말을 할 수 없으니 마음 둘 곳은 휴대 전화 속 세상뿐이라. 인제 보니 임신 확인증이라는 것도 아기 심장 소리를 듣고 아기집이 보여야 발급이 된단다. 섣불리 말하면 안 되는 건가. 임신이란 그런가.
/
7월의 여름날, 소나기처럼 아기가 찾아왔다. 준비 없이 맞은 소나기처럼 정신없이 젖어간다. 더운 계절은 비가 흔해 어느 때고 빗방울이 들이쳐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앞에선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곤 한다. 지금 형편이 꼭 그와 같다. 줄곧 아기가 올 거라는 어렴풋한 기대를 했다. 언제 생긴다 해도 이상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빨리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예상치 못한 길에서 한바탕 쏟아지는 세찬 빗줄기를 정통으로 맞았다. 느닷없어 얼떨떨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아기는 섣불리 그 존재를 알리기 어려울 만큼 작고 미약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어미 아니 어미라는 말도 입에 붙지 않는 자에게는 한없이 버겁기만 하다. 이 작은 생명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뀔 테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째 기쁨보다 임신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일들이 먼저 떠오름에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밤늦도록 엎드려 책을 보는 일도, 시간이 필요한 취미 생활도, 마음대로 계획하는 일상과 훌훌 떠나는 자유로운 여행, 기분 따라 한 잔씩 들이켜는 와인도 꿈같은 일이 되겠지.
돌연 품에 안긴 책임감에 눌려서일까. 아기의 도착 소식에 마냥 좋아하지 않는 자신이 거북하게 여겨진다.
‘해서는 안 되는 생각 아닌가? 제정신이야? 아기를 맞을 자격은 있고? 이런 반응을 알면 아기가 얼마나 서운하겠어? 대체 왜 이런 마음이 들지? 나 좀 이상한가?’
이기적인 마음만 가득해 부모가 되기엔 아직은 설익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자 호흡은 바닥으로만 가라앉는다.
막상 마주한 임신은 반가움과 희열의 부르짖음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 없이 아기를 맞이한 것만 같아 갈피를 잡기 힘들다. 죄책감마저 드니 어찌하나 싶다. 웃어야 하는 것 같은데, 부족한 이의 양쪽 입꼬리엔 줄줄이 꼬리를 늘어뜨린 걱정이 걸려 쉽사리 올라가질 못한다. 혼란스러워 찾아온 아기에게 미안하기만 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