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2019년 겨울의 꼬리.
올해를 넘길 수 없다는 재석이의 주장에 따라 12월 29일, 우리는 그다지 이르지도 또 지나치게 늦지도 않은 나이에 결혼식을 올렸다. 첫 만남 후 8개월 만의 결혼. 서울과 부산 장장 400km를 왕복으로 오가는 장거리 연애도 끝을 맺었고, 매일 밤 전화로만 궁금해하던 상대의 하루를 이제는 곁에서 적은 말로도 부족함 없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하나씩 부산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고, 차근히 서울로 짐을 옮겼다. 30대 중반과 후반. 그렇게 우리는 할까 말까 망설이던 하나의 숙제를 마친 기분에 빠졌다. 당분간은 둘만의 시간을 담뿍 누려보자 약속했다. 통상 다음 과제로 남겨진 그 일에 대해서는 지금껏 그래왔듯 조금 천천히 생각해보자 의견을 나눴다.
꽤 이른 아침 눈을 뜬다. 곧 다가올 아쉬움으로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상대를 안아주려 볼을 비볐고, 해가 지면 다시 만나 꼭 옆에 붙어 앉았다. 부족할 것은 없다. 넘치는 것은 애정뿐이라. 결혼에 꽤 부정적이던 이였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러한 단정은 섣부른 판단이었노라 스스로 아둔함을 인정하게 됐다.
드물게 다복한 6형제를 자랑하는 재석이는 아이를 빨리 갖고 싶어 하는 눈치도 있다. 하나, 결혼도 그의 주장에 따라 서둘렀던 만큼 이 문제에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긴 힘들다. 재석이 형제 수의 반도 보유하지 못했던 탓일까, 그의 숨겨진 조급함에 얹힌 듯 가끔은 부담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답한다.
“딱 1년만 기다려줘.”
이유가 무엇이냐? 아이를 싫어해서?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를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초등학생 시절, 갓 태어난 사촌 동생 소식에 몇 정거장이나 되는 길을 혼자 수도 없이 가고 또 되돌아왔다. 나 또한 작았지만, 곱절은 작은 그 꼬물거림이 눈앞에 어른거려 멈출 방도가 없더라. 최근까지도 격하게 아끼는 두 명의 조카와 헤어질 때마다 매번 아쉬움에 눈물을 짓는다. 한창 힘이 넘치는 녀석들을 며칠씩 맡아 꽤 능숙하게 돌보는 능력치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임신을 유보하고자 했던 건, ‘하고재비’ 천성을 갖고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뒤를 살짝 돌아보자.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웬만해선 다 했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주위의 만류에도 몇 차례 직장을 그만둔 것도, 취미 부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수십 가지의 취미 활동을 영위한 것도 모두 하고재비 근성이 낳은 결과물들이라.
여러 번 귀가 아프고 눈이 시리게 보고 들었다. 앞서 출산과 육아의 길을 갔던 친구들의 생생한 증언. 어쩌다 보니 주변 친구들은 이미 둘 이상 아이를 낳은 상태였고, 시간 가림없이 수백 개씩 쏟아지는 그녀들의 발신 메시지에는 고통만이 가득했다. 출산과 동시에 손과 발이 묶인 채 하루를 보내는 친구들은 몸도 아팠고, 마음도 아플 때가 잦다. 물론 반대의 순간도 있었지만 경험하지 않은 자의 눈엔 고난만이 눈에 띈다. 그리 수년간 이어진 간접 육아를 통해 어느샌가 머릿속엔 ‘육아는 지옥이다.’라는 공식이 형성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으면 끝이다.’라는 말만 귓가를 맴돌았으니까.
‘그래, 출산하고 나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아이는 천천히 갖자.’
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생각은 없었기에, 조금 늦추자 다짐했다. 꼭 1년 뒤, 슬슬 준비하면 될 거라 쉬이 여겼다. 거처를 서울로 옮기면서 하던 일을 그만뒀지만, 하고재비의 수첩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켜켜이 쌓여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언젠간 하고 말리라 수없이 다짐했던 목록 중 가장 우위에 있었던 독립 출판에 밑줄을 그었다. 추진력은 남부럽지 않은 불도저, 낮에도 글을 쓰고 밤에도 글을 썼다.
결혼 후 6개월.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쌓아뒀던 원고 덕분에 따뜻함과 무더위를 오가던 늦은 봄, 하고재비의 이름으로 책이 한 권 나왔다. 늘어나기만 하는 ‘하고 싶어’ 목록에서 겨우 한 줄이 사라진다.
아직은 서툰 책 홍보 방안에 대한 중압감과 탈고의 성취감으로 짜릿하고도 저릿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오후,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나보다 몇 개월 일찍 결혼한 또래로, 오랜만에 하는 통화에서 그동안의 안부와 최근 난임 병원에 다녀왔다는 근황을 듣게 되었다. 통상 꾸준한 시도에도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는 시기가 1년이 넘어야 병원에 간다. 그녀는 아직 결혼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몸 상태를 확인할 겸 남편과 미리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혹, 아이를 갖기 힘들다는 결과를 받게 되면 시원하게 포기하고 살겠다는 생각으로 예약을 했단다. 통화 말미엔 당장 임신 계획이 없더라도 미리 검사 한번 받아보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도 들었다.
하고픈 일에 빠져 한동안 잊고 있던 임신. 불현듯 급하게 포개어진 걱정 더미에 불이 붙는다. 올해로 30대 후반에 들어섰다. 노산. 고령 임신. 사전적 의미는 ‘초산 여부와 관계없이 35세를 넘어 임신하고 분만하는 것.’이라 친절한 포털 사이트는 명시하고 있다. 이미 35세를 넘긴 지는 오래. 게다가 부인과 암 수술을 받았던 전력이 있으니 혹, 아이를 갖는 일이 힘든 건 아닐까 너무도 갑작스레 초조해졌다. 멀리 제쳐두어 흐릿하던 임신 가능성에 대한 염려가 눈앞으로 당겨오자 생각보다 덩치가 큰 녀석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당장 맞을 일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없다. 곧 암 수술에 따른 정기 검사도 잡혀있고, 헤아려보면 그동안 유별나게 건강을 돌본 기억도 없다.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하며 그곳에만 몰두한 채 시간을 보냈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막연하고 막막한 과제였기에 떠올려 재고한 적도 전무하다. 결혼 초 재석이와 약속한 1년도 6개월이나 남았으니 더욱더 까마득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날 저녁, 불안한 마음은 퇴근한 재석이를 곁에 앉혔다.
“오빠, 우리 아이 가질까?”
한참 그 시기를 남겨뒀다고 여겼으니, 그는 짐짓 놀라는 듯 보였다. 곧 되물어온다.
“내년에 갖고 싶다며. 마음이 바뀌었어?”
“응, 혹시 모르니까. 원한다고 바로 생기는 것도 아니래.”
“음. 그래. 네 마음이 그러면.”
의외로 재석이는 오래 고민하지 않더라.
순간의 초조함과 길지 않은 대화로, 얼떨결에 두 사람의 2세 계획이 수정됐다. 지구에 인구 한 명 늘리겠다는 구상이 이리 간단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온라인 상점에서 재석이와 나의 몫으로 엽산 2병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