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숙취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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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들이 꼽는 최악의 경험 입덧.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유쾌함보다는 불쾌함을 먼저 떠올릴 단어다. 보통 6-8주부터 증세가 나타난다 하니 그 시작을 기다리는 자, 마치 어금니 신경치료를 앞둔 충치 환자처럼 가슴이 벌렁대고 마음이 조여 정서가 평온치 않다. 입덧하지 않는 사람도 있단다. 하나,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가 나일 리 없다는 비관주의자는 하루하루 촉각을 세워 혹시 입덧이라는 놈이 오진 않았나 제 몸을 살폈다. 임산부들이 넘는 통곡의 고개. 통상 18-20주가 되면 사라진다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아기를 낳기 전까지 그 곤란을 겪었다니 자신에게 내려질 형벌은 몇 주짜리일까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운다.


입덧이라. 밥을 먹다 ‘욱’하며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간다. 머릿속에 저장된 상징적인 모습. 실상은 어떤가, 사전 조사 시작. 과음한 다음 날처럼 또는 흔들리는 자동차나 배를 탄 것처럼, 속이 메슥거리고 입맛이 떨어지며 구역질이 난다는 게 보편적인 증세. 생전 앓아누워서도 삼시 세끼를 챙겨 먹고, 누구보다 튼튼한 전정기관을 가진 턱에 멀미 따위 경험하지 못했다. 좋다. 숙취가 남았구나. 한때 주당을 자처하며 과히 술을 마셔댔던 본인은 이튿날까지 육신을 떠나지 않던 숙취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타고난 위장이 튼튼하질 못함에, 어린 날부터 커피, 술, 담배를 멀리하라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자랐음에도 자신이 디오니소스인 양 술독에는 일찍이 손을 댔다. 마땅히 그에 대한 징벌이 내려졌고, 연약한 위장은 매번 지독한 숙취 속에서 두손 두발을 다 들 때까지 괴로워하는 것으로 자신을 괴롭힌 형을 살게 했다. 잘 알기에 마음이 불안하다. 수없이 겪어봤기에 섬뜩했다. 진탕 술독에서 허우적대다 겨우 밖으로 빠져나온 다음 날이면 진화의 역사를 거슬러 사족 보행을 하곤 했으니. 평소 믿지도 않던 절대자를 찾아 네모난 방을 기어 다니며,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맹세와 함께 살려달라 부르짖었던 기억이 떠오름에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원통하다. 술이야 당장 내일 맞을 고통과 눈 앞에 펼쳐진 쾌락을 맞바꾸기로 자발적 결심을 한 뒤, 내 두 손을 뻗어 찾아 마시기라도 했지 입덧은 무엇에 대한 죄벌인가. 왜 심약한 임산부에게 찾아오려 하는가.


‘아기를 가진 게 죄는 아니잖아!’


크게 외치고만 싶다.


곁에 있던 재석이를 붙잡고 언제쯤 시작될지 모를 입덧에 대한 공포에 대해, 그 속에서 몇 번이고 나자빠질 고초에 대해 술렁이며 뒤숭숭한 마음을 토로해 본다. 순식간에 목덜미를 휘어 잡혀 고통의 나락으로 끌려가는 상상에, 매일 밤 조마조마한 마음은 잘 익은 홍시처럼 무르고 또 물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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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언제라고 꼽을 순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속이 좋지 않다. 등을 뻣뻣이 세워 자꾸 뭔가 걸린 듯한 명치를 풀기 위해 억지로 되새김질을 시도했고, 불편함 덕분에 두 눈 사이 미간은 판판하게 펴질 틈이 없다. 입덧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속이 비면 난리가 나 끊임없이 먹을 것을 넣어줘야 하는 먹덧, 자꾸만 토하게 되는 토덧, 양치할 때 구역질을 경험하는 양치덧, 뭔가 꽉 막힌 것 같은 체덧. 침덧, 냄새덧. 이름만큼 그 종류도 대단히 끔찍하다. 다행히 가장 힘들다는 토덧은 면했지만 먹덧과 체덧이 나란히 다가와 임산부 어깨에 악랄한 손을 얹었다.


평소 입에도 대지 않던 음식을 찾는다. 매운맛에 꼼짝 못 해 소위 ‘맵찔이’로 통하던 이가 새빨간 짬뽕을 찾기 시작했고, 심심한 간식을 즐기던 나이 든 입맛은 어느새 짭조름한 과자와 달곰한 아이스크림을 탐했다. 그마저도 잘 먹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뭔가 먹고 싶다가도 막상 눈앞에 대령하면 눈살이 찌푸려졌고, 조금만 삼켜도 위장이 불편했다. 시시때때로 박자를 바꾸는 장단에 발을 맞추느라 식사를 대령하던 재석이도 힘들었을 테다. 지금은 임산부가 제일 힘드니, 제발 맞춰주라.


입덧이 시작되고 찾아간 정기 진료, 원장님은 불편한 증상이 없냐 물으셨다. 약간 속이 좋지 않다고 말했더니 곧바로 입덧 약을 지어 주신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처방전을 손에 들었고, 약국에 들러 약을 지었다. 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 몇 알의 약은 꽤 비쌌지만 정작 임산부의 목구멍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책상 한편에 약 봉투를 올려뒀다.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먹겠노라 다짐한다. 원장님은 임산부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약이라 했지만, 혹시나 하는 찜찜함에 속 편히 알약을 넘길 수가 없더라. 결국, 처방받은 약은 증상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봉투째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하며 냄새에도 민감해졌다. 날 때부터 걸출한 오감을 가진 편인 데다 입덧이 시작되자 민감함의 단계가 조향사 뺨을 칠 기세다. 대학 시절 넘어가는 책장을 아쉬워하며 붙잡고 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책 속에 등장하는 그루누이에 영혼이 옮겨붙는다. 향으로 사람을 구분하던 그처럼 모든 사물에서 냄새를 맡는 경지에 이른다. 매일 맡던 쌀밥 냄새가 역해졌고, 평소 즐겨 쓰던 화장품에도 세상이 울렁거렸다. 결국, 쓰던 화장품을 모두 바꿨고, 아끼던 향수도 처분했다.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향이 센 모든 물건을 집 밖으로 내보냈다. 세탁 시 섬유 유연제를 더는 쓰지 않았고, 이리저리 꽂아 뒀던 디퓨저와 방향제를 송두리째 버렸다. 재석이가 곁에 다가오는 것도 힘들기 시작해, 조심스레 일정 거리를 유지하길 당부한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기보다, 타인의 체취를 맡는 것도 힘에 부치더라. 즐기던 깻잎쌈을 보면 속이 뒤집혔고, 김치나 마늘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점점 가리는 것이 많아지며, 그나마 시큼하고 달곰한 먹을거리가 속을 뚫어줬기에 조금씩 삼켰다.


식탁에 앉아 인상만 쓰고 있으니 식구인 재석이의 밥상도 부실해진다. 그와 나 모두 집밥을 좋아했기에 때마다 무엇을 해 먹을까 머리를 맞대는 게 낙이었는데, 점점 배달과 포장 음식이 식탁에서의 지분을 늘렸다. 하나, 그것마저 오래가지는 못하니, 늘어나는 일회용 용기에 마음이 편치 않더라. 재활용품을 버리는 날이면 평소보다 곱절은 나오는 플라스틱 용기에 책임을 느꼈다. 결국, 배달 음식 안녕. 날이 갈수록 매끼 차려지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기 시작했고, 간단한 과일과 빵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늘어난다. 같이 사는 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안심찮음을 오래 품을 순 없다. 그러기엔 속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다. 입덧을 겪는 동안 본인에게 맞는 음식 한 두 가지를 찾아내 우선 일렁임을 재우는 게 좋다고 한다. 보통 새콤한 냉면이나 신 과일, 아니면 반대로 느끼한 패스트푸드가 답인 경우가 많더라. 입덧의 파도에 올라탄 임산부는 매일 요동치는 속을 가라앉히기 위한 답을 찾느라 꼬박 하루를 보낸다.


‘뭘 먹을까? 무엇을 속에 넣어줘야 이 어지러움이 사라질까?’


그나마 넘어가던 식량은 김밥과 냉면. 한 번씩 햄버거도 괜찮았다. 물론 먹을 때만 속이 삭았고, 후엔 다시금 난리를 쳤다. 앞서 말했듯 먹덧과 체덧이 함께 왔기에 지긋지긋한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점차 기운이 빠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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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먹으면 속이 괜찮을 것 같은데….’


제대로 먹지 못하니 식탐이 더해져 종일 재석이가 퇴근하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그보다 반갑던 손에 들린 음식은, 그리 손꼽아 기다렸음에도 삼키고 나면 말짱 도루묵. 먹을 때는 그리 속이 뻥 뚫리고 좋더니, 막상 수저를 놓자마자 꽉 얹혀 불쾌감이 위장을 휩싸고 돈다. 재석이는 매번 식탁에서 눈치를 봤다. 함께 식사한 후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겠지. 두통까지 동반되어 험악한 인상을 쓰는 게 버릇이 됐다. 입덧에 시달리는 동안 부엌 근처는 얼씬도 못 해, 재석이는 아침도 저녁도 홀로 차려내고 치우며 외로운 주방 생활을 연명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근하는 남편을 보기도 차츰 힘에 부쳤고, 그가 알아서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하루 대부분을 소파 위에서 보냈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바로 누워있을라치면 울렁거림이 더했기에 쿠션을 여러 개 쌓아둔 채 ‘눕는다’라고 표현하기 애매한 정도까지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는 게 일과가 되었다.


소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히 TV 보는 시간이 는다. 평소 TV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속 안의 어지러움 대신 다른 어딘가로 정신을 쏟아야만 했다. 한창 재미를 붙여 배우고 있던 재봉틀을 돌린다거나 촘촘한 책을 읽기에는 머리가 핑핑 돌았기에, 기력 없이 할 수 있는 TV 시청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네 명의 코미디언이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그들은 한 주제의 음식을 독하게 파고들어 웃고 떠들며 맛있게도 먹는다. 꽂혔다. 임신 전 누구보다 잘 먹던 대식가, 입덧으로 인해 봉쇄된 식욕이 눈과 귀로 터졌다. 매일 매일 그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다시 보기까지 동원해 먹을 수는 없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가며 시청한다. 하루에도 몇 편씩 몰아보며, 입덧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었다. 그들 곁에 앉아 함께 수저를 뜨는 상상을 더했기에, 어떤 편은 속이 역해 볼 수 없는 먹거리도 있더라. 감탄한다. 이리 공감각이 발달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친근함을 느낄 만큼 몇 주간 정말 많이도 본 것 같다. 이렇게라도 대리 섭취를 하니 다행인 건가. 어느 날에는 지나치게 먹는 생각만 하는 머릿속이 한심하게 여겨졌지만, 다른 일은 시도할 기운조차 없다.


언제 끝날까. 눈을 뜨면 속부터 살핀다. 누군가는 일상이 불가할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고 하는데 고맙게도 내게 찾아든 입덧은 가장 나쁜 단계는 아닌 듯하다. 묘하게 못마땅하고 어지럽지만 참으려면 또 참아진다. 단지 끝을 알지 못하니 지쳐갈 뿐. 어찌할 수 없으니 힘을 뺀 채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다.


‘정말 16주쯤 되면 잦아들까? 엄마는 열 달 내내 입덧을 했다던데 나도 막달까지 좋지 않으면 어떡하지? 입덧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그래도 토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가만히 시간만 보내니 상념이 늘어간다. 뭘 먹지 고민하는 하루가 슬슬 지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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