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이른 가을, 때론 몸으로 느껴지는 온도가 늦은 여름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퇴근한 재석이와 다과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날따라 체한 기분이 더해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하다 과일이나 실컷 깎아 먹지 싶어 작은 쟁반 위 사과와 감을 가득 쌓아 올렸다. 성한 소파를 두고도 번번이 거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담소를 나누던 여느 날의 일상과 같다. 엉덩이가 콕콕 쑤시는 통에, 폭신한 쿠션을 깔고 재석이의 하루가 어땠는지 묻는다.
‘꿀렁’
아래에서 무언가 새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가지게 되면 분비물이 많아진다던데, 대수롭지 않은 거라 여기며 자세를 고쳐 앉아 다시금 상대의 말에 집중해본다.
‘꿀렁’
또다시 무엇인가가 나왔다. 제법 양이 많은 기분에 혹시 잠옷이 젖지는 않았나 슬쩍 깔고 있던 쿠션을 살폈다. 피다. 피가 새어 나왔다. 임신하게 되면 자연히 생리는 멈춘다. 그리 붉은 피가 나왔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뜻밖의 장면에 순간 두려움을 느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튕겨나듯 일어나 화장실로 달렸다. 통증이 있다거나, 소변이 마렵지는 않다. 본능적으로 변기에 앉았다.
‘왈칵’
궁둥이를 붙이기 무섭게 엄청난 양의 액체가 쏟아졌다. 연이어 이전보다 많은 양의 뭔가가 몸 밖으로 터져 나온다. 금방 쏟아낸 것이 오롯이 붉은 피일까. 짧은 순간 의심한다. 설마. 떨리는 가슴은 담대해 보려 애를 쓰지만 불안함은 잦아들지 않았다. 겁이 나지만 확인해야 했다. 직접 마주해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있으리라. 눈을 뜨자 사정없이 떨리는 손과 다리가 먼저 보인다. 복통이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출혈일 리 없다는 기대를 잠시나마 가져봤지만, 바로 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변기 속은 선명하디 선명한 붉은 피로 가득했다. 어찌나 급하게 퍼부어 댔는지 여기저기 핏방울이 많이도 튀었다. 난생처음 보는 장면, 심히 충격을 준다. 그리 많은 피를 본 적이 있었나. 몸소 확인하자 온몸의 떨림은 더욱 격해져 사고를 정지시켰다. 끔찍했다. 낯선 광경이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버거웠다. 옷을 제대로 추스를 정신도 없이 재석이를 부른다. 무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오빠….”
겁을 먹었다. 별일에 놀라지도 않던 가슴이 두근거려 터질 것만 같다. 그리 당황한 기억이 없다. 변기 레버를 미처 내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으니 재석이가 달려왔다. 대화 중 상대가 갑작스레 화장실로 내뺐으니 그도 영문이 궁금했을 게다. 재석이 역시 예측하지 못한 상황. 벌벌 떨며 서 있던 내 모습에 그도 적잖게 당황한 듯 보였다. 붉은 피로 가득한 변기만 바라본다. 새빨간 피는 누구라도 얼어버리게 만드나 보다.
이상 신호다. 병원에 가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몇 분간 쓸모없는 적막이 흘렀다. 지체할 틈이 없다. 당분간은 사용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생리대를 꺼내 들고,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사정을 토해내고, 응급실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출발. 특별한 일이 없고서야 늘 평일 이른 시간에 진료를 봐왔다. 통상 15분이면 도착하던 거리, 아직도 퇴근 중인 이가 많은지 도로는 제법 많은 차로 가득했다. 길이 막혀 타는 속에 기름을 붓는다. 머릿속 멈춰있던 회로는 가동을 시작했고, 이내 눈물이 터졌다. 조용히 울지 못한다. 숨이 막힐 듯 울음이 났다.
‘감동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대체 왜 이런 거지? 바닥에 마구 주저앉아서 그런가? 좀 더 조심스레 행동했어야 했어!’
울고 있는 자의 머릿속엔 자신의 결함을 따져 묻는 힐난의 말들만 가득하다. 자동차 바퀴는 굼뜨게 굴러가고, 자책의 바퀴는 쾌속 질주. 곁에서 운전대를 잡은 재석이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옆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꽤 차분했다. 급하디급한 성미에 펄쩍 뛰어오를 때가 많은 자는, 그런 재석이의 느긋함이 좋았다. 웬만해선 화가 없고, 감정이 북받쳐 일어나질 않는 그에게 붙어 있으면 덩달아 내면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나, 지금은 그런 여유가 밉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떻게 저리 태연할 수 있지. 잠시나마 책망의 화살을 재석이에게로 돌려본다.
“괜찮아, 울지마. 응? 별일 없을 거야.”
품지 않은 자는 모른다. 영원한 이별까지 상상하다 황급히 되돌아온 처절한 마음을 절대 알 수 없을 거다. 등을 토닥이는 그의 말은 폭발 직전의 불안을 달래보지도 못한 채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모든 감각을 뱃속에 집중한다. 여전히 통증은 없고, 출혈은 계속되는 듯했다.
주차타워에 차를 넣어야 하는 재석이를 두고 홀로 응급실로 달려간다. 간호사 분들과 마주쳤고, 유선으로 전했던 증상에 대해 그들이 잘 알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자세히 밝혔다. 횡설수설에 가까운 진술에 전문가인 그들도 꽤 놀란 눈치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서였을까? 찰나의 정적이 흘렀으나 이내 질문이 날아든다. 출혈의 양을 물었다.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거리니, 생리대를 몇 개나 사용했는지 물음의 내용을 바꾼다. 병원으로 달려오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피가 새어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병원에서 건네준 여분의 생리대를 사용했어야 했으니까.
곧 당직 의사를 만났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초음파를 통해 뱃속을 살핀다. 의사는 오늘 하루 무리한 활동은 없었는지 묻는다. 종일 집에 머무르다, 짧은 시간 마트에 다녀온 일이 떠올라 그랬노라 답했다. 몇십 분간 야단법석을 피웠던 데 비해 권위자의 소견은 담담했다. 아직 뱃속에 핏덩이가 보여 추가 출혈이 있을 수 있으니 놀라지 말고, 아기는 잘 있으니 시일 내로 담당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겠단다. 출혈의 이유는 무엇이라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최종 진단. 일단 흐르는 피를 닦아 냈고, 병원에서 제공한 커다란 패드를 착용했다. 출혈이 대수인가, 어떤 말보다 아기가 무사하다는 말에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했다.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싶을 정도로 진료 결과는 무미건조했기에, 들어오지 못하고 입구에서 기다리던 재석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의사의 말을 그대로 전했고, 재석이는 다시 등을 토닥거려 준다. 이번엔 그의 위로가 제 역할을 한다. 다행이다 싶어 한결 차분해졌다.
출혈이 계속되어 조심스레 차에 올랐다. 감동이가 잘 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돌아오는 길, 여전히 울고 있다. 이번엔 제법 차분한 울음. 무서웠다. 꼬박 몇 달을 함께 하던 아기가 한순간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수월하게 찾아온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고, 한때 버겁다 생각까지 했으니 귀히 여기지 않은 것만 같다. 모든 게 내 탓일까 봐 겁이 났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기에 불안했다.
울음을 끊어내지 못하자 재석이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부산집으로 전화를 건다.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익숙한 엄마의 목소리. 재석이는 평소처럼 저녁 식사는 하셨는지 인사를 여쭙고는 이러저러해서 병원에 들렀다 집으로 가는 길이라 전했다. 평소 같은 안부 전화라 생각했던 엄마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크게 아팠던 이후로 딸내미의 건강 문제에서만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사람.
“무슨 일이고?”
“엄마…. 저녁 먹고 있는데 피가 막 나잖아…. 그래서 병원에 갔다 왔는데, 아기는 무사하단다. 피가 고여 있긴 한데 확실한 이유는 모른대….”
엄마 앞에서 눈물 보이기를 멋쩍어하는 무뚝뚝한 딸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정신도 없더라.
“애가 무슨 소용이고. 네 몸에 이상이 없어야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니. 지금 이순만큼은 엄마에게 아기의 안위는 중요하지 않다. 머리가 띵했다. 줄곧 내가 품은 생명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했는데, 엄마는 무엇보다 딸내미가 먼저구나.
“아기는 없어도 된다. 나중에 천천히 가져도 되고.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쉬고 몸에 이상은 없는지 잘 알아봐. 네가 건강해야 한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감정이 격해졌다. 내 몸에 대해서는 한순간도 의식하지 못했다. 오직 아기에게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혹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걱정을 했다. 엄마도 행여 자식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났던 걸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아이만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엄마는 나를, 나는 감동이를.
집에 도착해 피가 묻은 옷을 세탁 바구니에 던지고는 씻은 후 자리에 누웠다. 아직은 손바닥만 할 아기. 속에 감춰져 있으니 어느 날엔 임산부라는 사실조차 망각하면서, 어느새 모성이란 게 자라났나 싶다.
‘어미가 되는 순간부터 아기를 생각하면 이리 마음 아프고 염려가 되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나? 엄마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낳고 키웠을까.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더니, 이제야 철이 들려나.’
행여 피가 새어 나올까 뒤척이지도 못한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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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담당 원장님의 진료가 잡혔다. 한낮에 병원을 찾았고, 천천히 초음파를 시작한다. 뱃속에 검은 덩어리가 보였다. 아기집만큼이나 제법 크기가 큰 핏덩이.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야기하셨다.
“출혈이 있던 날 무리하신 일은 없었어요?”
“네, 별다른 활동은 없었어요.”
“마트 다녀오셨다면서요?”
“아…. 네. 맞아요.”
일주일에 수일은 들락거리는 동네 마트. 간단히 장을 보는 일상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기를 가졌으니 유리 몸뚱이라도 된 듯 고이고이 모셨어야 했나. 게으른 탓에 한 번에 낑낑거리며 장을 봐 온 그날 하루를 되감아 보며, 그리 움직여선 안 되는 거였나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럼 난 뭘 할 수 있지?’
곧 증상에 대한 소견도 이어진다.
“아직도 뱃속에 피가 고여 있어 언제 다시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문제가 되는 건 출혈이 한꺼번에 다량으로 있게 될 경운데, 이 경우는 태반을 쓸어버려 유산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10주 이전이면 유산 방지 주사라도 놓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해 드릴 게 없어요. 피가 자연히 흡수되는 게 최선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마시고, 계속 누워 계셔야 해요. 간단한 집안일도 안됩니다.”
원장님의 입 밖으로 ‘유산’이라는 두 글자가 튀어나왔다. 혹여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한순간도 담지 않았던 무서운 단어가 머릿속으로 들어와 박힌다. 그 순간부터다. 뱃속에 얇디얇은 껍질을 두른 작은 알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 어설픈 힘에도 균형을 잃은 알이 ‘톡’하고 떨어져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매 순간 감동이를 감싼 알껍데기가 부서지지 않도록 집중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짧은 외출도 금하고, 식사와 화장실 갈 때만 일어나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여러 차례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입덧과 지겹도록 누워있기로 하루가 채워진다. 임신 주차로 따지면 자주 병원에 갈 필요는 없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매주 병원에 가 초음파 검사를 받기로 했다.
품고 있는 작은 알이 깨질까 두려워하며, 종일 침대에 머무른다. 잠시 일어나 소파로 자리를 옮길 뿐, 여전히 쭉 뻗은 자세는 그대로다. 출혈은 잦아들었으나, 언제 또 피가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무서움에 꼼짝할 수 없다. 이리저리 돌아눕는 행위도 핏덩이를 자극할까 싶어 천장을 바로 보고만 있다.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근심은 보이지 않는 올가미가 되어 전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똑바로 들고 이리저리 자세를 잡아 보지만 이내 팔이 저려 쉽지 않다. 금세 포기. 책도 눈에 들어올 리 없다. TV도 마찬가지.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시도하고 싶지 않더라.
그렇게 누워지내는 일상이 시작됐다. 몸도 마음도 어딘가에 갇힌 듯 갑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