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여인

「배부른 생각」

by 미녕
8.PNG


쑥쑥 자란다. 감동이가 아닌 품은 자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옆으로만 자라니 이 일을 어찌할꼬. 확연히 움직임이 줄어드니 살이 차오름에도 속도가 붙는다. 테스터기의 붉은 결과 선과 조우한 후, 미묘히 몸이 동글동글해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체중계 위의 숫자는 앞자리가 바뀌었고, 입던 옷을 걸치면 이상스럽게 예전만큼 태가 나질 않는다. 손이 가는 옷가지의 수가 줄어 외출 시 걸치는 복장은 단순한 조합으로 한정된다. 병원 진료 외에는 딱히 나갈 일이 없었으므로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아기를 가지게 되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배로 지방이 몰린다던데, 이미 에어백을 충분히 두르고 있어 지방을 더 늘려야 하나 싶지만 자연 이치에 따라 육신이 알아서 할 터. 초기에는 몸의 변화가 그리 큰 스트레스가 될지 몰랐다.


가슴 통증이 생겼다. 생리 전 증후군처럼 양쪽 가슴 전체가 땡땡해져 살짝만 스쳐도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아픔을 느낀다. 나날이 팽창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옷을 입고 벗을 때는 몰랐으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웃통을 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커졌다. 복부와 엉덩이만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녀석도 뒤질세라 재빨리 덩치를 키우고 있다. 생리 때처럼 잠시 부풀어 오르는 정도가 아니라, 여태 보지 못한 형태로 마구 커가고 있었다. 공짜로 부푼 가슴이 좋지 않았냐? 천만의 말씀. 변화된 상반신에 심히 난감했던 건, 그 형태가 과히 보기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앞가슴은 주인의 취향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 임산부의 심미안에서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다. 온몸이 동글동글해지기로 약속이라도 한 걸까? 모든 것이 적당했던 왕년의 내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꼈던 레이스 장식 가득한 속옷은 더는 몸에 맞지 않았다. 억지로 후크를 잠그면 입을 다물긴 했지만, 명치도 함께 졸리니 숨을 쉬기가 어렵다. 옷장을 뒤져 미처 버리지 못한 낡고 늘어난 브래지어를 하나 찾았다. 홈쇼핑에서 여러 세트를 함께 샀던 것 같은데,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버려졌거늘 홀로 용케 살아있었구나. 지난 세월만큼 보풀이 잔뜩 나 있던 그 속옷만이 어찌 몸에 맞아 숨쉬기가 수월했다. 하나, 그것도 임시방편. 한동안 함께하던 녀석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흉통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인 순간이 대번에 찾아왔다. 혹, 임산부들이 따로 입는 속옷이 있나 검색한다. 과연. 같은 고민을 한 이들이 제법 많다. 미리 수유 브라를 착용하라는 답변을 확인, 며칠 뒤 온라인 상점을 뒤져 수유 브라라는 걸 샀다. 고백한다. 사실, 그 물건을 들이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요리보고 조리 봐도 기능에만 치중한 명명. 예전엔 속옷을 고르는 기준이 ‘예쁨’이었거늘, 지금은 가슴통을 조여오지 않는 내의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수유 브라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택배로 맞은 녀석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편하게 가슴 쪽에 천이 한 장 더 덧대어져 있고, 전면 후크로 쉽게 풀었다 잠글 수 있는 구조다. 내가 알던 브래지어는 가슴을 보호하고 교정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째서 임산부의 속옷은 젖먹이에게 젖을 주기 용이한 장치로 둔갑해버렸는가. 아, 사고 싶지 않다. 입고 싶지 않았다. 당장 걸칠 내의가 없음에도 수유 브라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아 며칠을 주저한다. 이걸 입으면 소가 되어 버릴 것만 같다. 흔한 장식 하나 없는 밋밋한 빛깔, 부드럽기는 또 왜 이리 보드라운가. 아기를 위해 속옷까지 챙겨 입어야 하는 임산부의 취향은 대체 어디에서 존중받는가. 그걸 착용하는 순간, 목덜미에 ‘나는 임산부요.’ 글씨가 새겨질 것만 같았다.

불쾌한 기분으로 며칠 착용해봤으나, 이내 서랍에 처박아 버리고 만다. 다행히 프리사이즈라 표기된 꼬리표와는 달리 몸뚱이는 그 안에서 자유롭지가 않았다. 갑갑함에 몸부림치다 결국엔 엄마가 보내준 시장표 속옷 두 벌에 가까스로 숨통이 트인다.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소박한 디자인이지만, 임산부 전용 속옷이 아니라는 점이 꼭 마음에 들었다. 간신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점점 살이 붙고 배가 불러오면서, 바지 입기는 도전조차 않는다. 평소 긴 치마를 자주 입고 다녔기에 초기까지는 예전에 입던 옷들로 어찌 버티고 다녔으나, 누가 봐도 임산부라는 걸 알아챌 시기부터는 새로운 옷이 필요했다. 배가 동그랗게 솟아오른 후 매번 옷을 입을 때마다 막막했던 점은 허리선을 어디로 맞출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느슨한 고무 밴드로 된 하의를 입는다. 밴드를 배 아래로 둘 것인가, 아니면 가슴까지 끌어올릴 것인가. 하복부에 두자니 혹 아기에게 압박을 주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됐고, 명치까지 끌어올리려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다고 진짜 허리에 맞춰 입으려니 고무 밴드의 탄력이 버티질 못한다. 애초에 허리에 맞춰 입게 디자인된 옷이니 내려 입던 올려 입던 단정치 못해 어정쩡하기도 하다. 어찌할 텐가. ‘임부복’을 검색해본다. 미처 알지 못한 세계, 생각보다 임부복을 전문으로 파는 온라인 상점이 즐비했다. 이리도 수요가 많은 물품인가. 아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능성 의류를 입을 의무가 있는 것처럼 정신을 홀렸다.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링크를 두고도 그대로 창을 꺼버렸다. 역시, 쉽지 않다. 도저히 임부복에 몸을 끼워 넣진 못하겠다.

온라인 구매, 많이도 해봤다. 사이트에 접속에 분류된 범주를 보라.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통상 그게 전부다. 임부복을 구분해 놓은 곳은 드물어 찾기 힘들다. 굳을 애를 써 임부복이라 이름 지어진 옷을 찾아 입기 싫었다. 달라진 체형으로 인해 입지 못하게 된 허리가 잘록하게 드러나는 의상과 짧은 치마들. 평소 품이 넓고 긴 옷을 좋아해 굳이 사 입지도 않았을 부류의 여성복을 더는 입지 못하게 되자 대상 없이 화가 나 분했다. 임부복은 변한 체형에 꼭 맞아 만만할진 모르겠으나, 모가 난 별난 임산부에게만은 안정을 주질 못한다. 임산부가 임부복을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괜한 감정이 상하는 걸 어쩌겠는가. 여성에서 ‘임산부’로 정체성이 바뀐 것만 같다. ‘임산부’로 분류되는 것에는 규정하기 어려운 반항심이 있다.


나날이 쌀쌀해지는 날씨에 레깅스와 스타킹을 주문한다. 치마를 즐겨 입으니 필요했다. 두 녀석 모두 몸에 밀착되는 재질로, 혹 배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임부용 레깅스와 스타킹으로 선택한다. 일반용도 종일 착용 후 벗어놓으면 허리에 움푹 팬 자국을 남기니, 임산부가 입었다간 여간 불편함을 겪지 않겠나 싶은 우려다. 적당한 타협. 치마 밑에 받쳐 입는 용도니, 이번만큼은 임부용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지워본다. 그냥 입어도 배가 졸리는 옷들이었기에 임부용이 조금은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틀쯤 지나 택배 상자가 현관 앞에 도착했고, 바닥에 앉아 종이상자를 뜯었다.


‘이게 뭐야?’


손에 잡힌 물건은 기존에 알고 있던 놈들의 형태가 아니다. 배 부분이 말도 못 하게 길어 거꾸로 들자면 귀가 굉장히 긴 토끼 같아 보였다. 충격적인 현대 미술품처럼 이상한 형체다. 용기 내 눈에 익지 않은 그것을 들어 발을 넣어봤다. 세상에, 여태 보지 못한 탄력. 끌어올리니 가슴팍까지 올라온다. 그렇다. 임부용은 밑위 길이가 넉넉해 배를 모두 덮어주는 형태였다. 하, 좋다.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인정. 레깅스나 스타킹은 다리만 보이니까. 복부를 감싸는 게 뭐라도 좋으니까 이렇게 나왔겠지.


그런데도 여전히 포기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임부복에만은 매섭게 등을 돌린 채 고집을 꺾지 않았다. 평소 즐겨 입던 브랜드로 가 최대한 넉넉한 형태의 옷을 골라 샀다. 배가 나와 웬만한 옷은 들려 올라갔기 때문에 제법 긴 길이의 옷이 적당했다.


‘그래. 임신해도 달라질 것 없잖아. 임부복은 입지 않겠어.’


굳세게 저항한다고 임산부라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아기를 갖게 됨으로써 반복되던 보통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었다. 부모 둘 중 하나에게만 적용되는 몸의 변화에 자꾸만 억울한 마음이 드는 바람에 수월히 지나갈 법한 순간도 일일이 불러 세워 딴지를 걸게 됐다.


/


재석이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책을 몇 권 구해왔다. 이미 속도 머리도 복잡한지라 꼼꼼히 살피기는 포기. 어찌 눈이 가는 내용은 시기에 따른 임산부의 신체 변화뿐이다.


‘피부 색소 침착, 임신선, 체모 증량, 기미, 튼 살, 사마귀, 체중 증가, 부종, 다리 저림, 변비, 치질, 요실금….’


그만! 이건 심각한 질환이다. 모든 게 사실이라면 임신은 축복이 아니라 중한 형벌에 가깝지 않나. 수많은 임산부가 남몰래 이 끔찍한 경험을 하고 있다니. 책을 덮었다. 더는 알고 싶지 않았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간 매체에 비친 임산부를 보라. 눈처럼 새하얀 뜨개옷을 입고 동그랗게 부른 배를 온화한 미소로 쓰다듬으며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불러대던 그녀들은 가짜였는가. 아니면 아기를 만날 기쁨과 설렘으로 모든 걸 숨긴 채 홀로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걸까. 앞으로 마주할 현실은 더욱 암담할 거란 걸 이제야 안다. 생전 가져보지 못한 신체 변형에 적응하느라 나날이 피폐해져 가겠지. 벌써 눈 밑이 퀭하다.


급속한 외모 변화에 우울감이 더한다. 거울 앞에서 옷을 까뒤집으며 자꾸만 전신을 비춰보는 나에게 재석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맘을 달래주려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 본인 배가 이만큼 나와도 같은 소릴 할 수 있을까. 몸뚱이 여기저기서 전쟁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데도 태평할 수 있으려나. 정작 조금만 과식해도 배가 나왔다며 온 집안을 종종 걸어 다니면서.


‘오빠는 임신하지 않았으니 몰라!’


숭고함, 고귀함, 아름다움. 임신을 그리고 임산부를 수식하는 그럴싸한 말들. 실제 존재할지도 모르나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빙산의 일각이다. 거북함, 낯섦, 두려움, 불쾌함. 편치 않은 말들이 실제 열 달을 꼬박 메운다.


거울 속, 낯선 자신을 주체못해 어찌할 바 모르는 커다랗고 동그란 여인이 있다. 여인은 그간 살아온 세상에서 쫓겨나 울타리가 두껍게 쳐진 임산부 섬에 ‘툭’하고 떨어진 기분을 느꼈다. 그녀를 둘러싼 만물에는 임부용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지금은 당장 나갈 방법이 없다. 사실을 잘 아는 여인은 힘이 빠진다. 젖어버린 베개 위에서 부풀어 오른 배를 안은 채 오늘도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이 든다.

keyword
이전 07화하고재비 은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