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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May 06. 2022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오른 산

10년 만에 다시 보는 계곡


아빠가 한국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다시 함께 모이게 되었다.

시간은 어느덧 3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지나간 시간에 어색할 만도 했지만 막상 얼굴을 다시 보니 생각보다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함이 컸다. 분명 긴 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이었을 텐데, 다시 만나니까 늘 같이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함이 금세 느껴졌다. 이래서 가족이라고 하나 보다.


아빠는 못 보던 새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계셨다. 매일 스쿼트를 100개씩 할 정도라고 하셨다. 늘어나는 체중이 늘 걱정이었던 몇 년 전 아빠가 어느새 이렇게 운동을 열정적으로 하시게 되었을 줄은 예상도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건강을 걱정하던 자식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운동의 효과를 몸소 겪으신 덕인지 나와 동생에게도 열심히 운동을 하라는 잔소리가 늘었다는 점일까.


그렇게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결국 산을 오르기로 했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이어서 어릴 적부터 자주 올라가곤 했던 산이었다. 나는 최근에 산을 타본 적이 없었지만, 어릴 적 하도 많이 오르곤 했던 산이라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산은 만만치 않았고, 나는 얼마 가지 못해 숨이 턱까지 차올라 헉헉대고 있었다. 30대가 되더니 체력이 진짜 많이 떨어지긴 했구나. 나이가 느껴진다는 말이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던 아빠는 그런 나를 앞장서 성큼성큼 산을 올랐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하던 아빠였는데, 놀라운 변화였다. 운동이 좋긴 좋구나. 운동의 필요성을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만에 다시 찾아온 산이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놀라울 만큼 그대로였다.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등산로에 예전에 비해 깔끔하게 정비되었다는 점 정도일까. 그마저도 산의 입구 부분만 그렇고 올라갈수록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어릴 적, 이 산에 와서 얼마나 많이 놀았던가. 개울에 들어가 바위를 뒤집으면 가재가 나왔고, 올챙이와 송사리가 수 없이 몰려다녔다. 어린 손으로 그 작은 것들을 잡아 채집함에 넣고 집에 와서 관찰할 때는 어찌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그 시절 느꼈던 순수한 재미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즐거웠지만, 아련한 향수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산 중턱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오르자 익숙한 동네와 그 뒤로 펼쳐진 서울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탁 트인 풍경을 어린 시절에도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산에 오르는 날에는 꼭 이 바위까지 올라오곤 했었다. 낯익은 등산로가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는 점이 신기했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변함없었다. 우리 동네는 지난 세월에 힘입어 많은 건물이 새로 생기고 높은 빌딩도 올라갔지만 그건 작은 변화였다. 적어도 산 위에서 내려다보기에는 아무것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산은 그대로였다. 등산로 너머로 펼쳐진 숲도,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도, 자연이 속삭이는 듯한 바람도, 폐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흙내음도. 앞서가는 아빠의 등을 쫓아 오른 산은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 잊고 있었던 것도 떠올려 보고, 달라진 가족의 모습과 나의 모습도 돌이켜 보고. 산행을 하며 얻을 수 있는 경험 중에 이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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