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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Jul 10. 2022

주간 씀 모음 4

낮잠


  버스가 왔다. 내 앞에 커플이 먼저 올라탔다. 여자가 나 1등 하면서 올라탔다. 뒤따르던 남자는 그럼 난 2등 하면서 올라탔다. 그 뒤를 그럼 나는 3등 이라고 마음속으로 조그맣게 속삭이며 올라탔다.




낙엽


  아직 낙엽은 멀었다.

  이제 막 추석이 지났을 뿐이니까. 아직도 한낮의 태양은 뜨거웠고 높은 가을 하늘은 뭉게구름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런 위로가 필요했던 시점에서 나는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이 오리란 것을. 이리저리 엉키기만 했던 우리 사이도 이제 그 결말을 맞이하리란 것을.




박수


  “점점 일을 할 수록 말이야, 내 인성이 얼마나 박살나 있는지 깨닫는거 같아.”

  내 말에 그녀는 박수치며 좋아라 웃었다. 그리고 잔을 들어 안에 들어 있는 술을 조금 마셨다. 나도 따라서 잔을 들고 살짝 그녀에게 잔을 부딪히는 시늉을 한 뒤, 마셨다.

  진저 하이볼. 비율이 좋았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나도 그래. 그러다보면 이런 생각도 해. 매일같이 이렇게 인성이 터지다보면, 나중에는 나도 저런 진상인간들 처럼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는 깊은 공감을 표하며 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제대로 잔을 부딪혀 주었다. 우리는 사이좋게 술을 마셨다. 술이 맛있는 밤이었다.




괴리


  인간의 몸을 이루는 세포는 약 7년을 주기로 모두 교체된다고 한다. 그 사실이 그의 뇌리에서 번뜩였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억으로 이어진 나 자신과 이 현실 간의 괴리는 무엇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기억 속에 있는 이 과거가 정말로 나의 과거가 맞는가?

  기억 속 그 어떤 순간조차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듯이 그는 그렇게 말했다.




책방


  골목 한 켠에 있는 작은 책방에 지폐 몇 장 들고 달려갈 땐 어찌나 설레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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