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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Aug 07. 2022

주간 씀 모음 8

그때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늘 필요한 선택을 해왔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삶은 필요한 선택만 해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타러 가자.”

한가로이 찾아간 놀이공원에서 너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무서운 건 질색이라고 내가 답했지만, 너는 설레는 표정으로 롤러코스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롤러코스터는 좋은 거야. 처음에 올라갈 때,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잖아.”

“처음에만 그렇고, 이후로는 떨어지기만 하잖아.”

일렁이는 마음을 감추며 반박하는 나였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거야.”



운동장


“운동장 아래엔 시체가 묻혀 있다.”

“뭐?”

갑자기 들린 뒤숭숭한 말에 내가 얼빠진 소리를 내자 너는 그게 자못 유쾌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몰라? 유명한 추리 소설의 도입부잖아.”

그런 소설은 모른다. 아니, 설령 내가 그 소설을 이미 읽은 데다가 네가 말한 도입부를 바로 알아맞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네가 운동장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나를 향해 일부러 그런 말을 던지고자 마음먹은 시점에서부터 이미 충분히 악질적이었으니까.

시체라는 단어에 내가 무엇을 떠올릴지 너도 잘 알고 있으면서.



나중에


“나중에 같이 봐요.”

아쉬운 마음을 감추자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중에.

흔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나눈 사람 사이에서는 수많은 전제가 함께 나뉜다.

나중에도, 우리는 지금과 같은 일상을 누리고 있겠지.

나중에도, 우리 사이의 관계는 지금과 비슷하겠지.

나중에도, 지금 안타깝게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기회가 꼭 다시 찾아오겠지.


그러나 그 전제는 상투적인 말에 담긴 가벼움만큼이나, 혹은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하는 알량한 태도만큼이나 어처구니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



공책


공책에 담은 작은 글 하나.


세상에 전해질 리 없는 마음이건만,

그 사실에 개의치 않듯 공책은


오늘도 세월을 막아서며 버틴다.

빛바랜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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