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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Oct 29. 2022

공책

  떠나간 사람이 남긴 물건. 네가 놓고 간 공책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이나 애틋한 것이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맥락 없는 문장들 속에서 나는 길을 잃을 지경이었다.

  가령, “누군가 내 책상 위에 꽃병을 올려놓았다. 그 아래로 보랏빛 수국이 꽃잎을 한 장씩 떨구었다.”라는 문장을 보았을 때. 너에게는 꽃병은커녕 책상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건만, 천연덕스럽게 써 놓은 글에서는 생동감마저 느껴졌다. 단어와 단어 사이가 만들어내는 운율이, 그 행간 사이에서 짐작할 수 있는 파문이, 내 마음까지 그대로 흔들었다.

  너는 무엇을 바라고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훗날 이 공책을 손에 들 내가 어떤 심경을 겪기를 바랐을까. 불친절한 미스터리는 그렇게 정답을 밝히지 않은 채로 멀어져 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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