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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쭌터뷰 03화

12월 국회 앞 정문으로 달려나간 우선미씨

쭌터뷰 - 한국 민주주의를 지킨 사람들

by 김 준 호

12월 3일 계엄이후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이제 새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우리들의 친구, 가족을 비롯한 우리 국민들이 앞장섰다. 이들을 한켠에서 기록하는 일은 매우 유의미한 일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2024년 12월 3일, 한겨울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광경. 갑작스레 선포된 계엄에 사람들은 국회를 에워싸고, 스스로를 ‘최후의 방패’로 국회 정문을 지켰다. 누군가는 정문 앞에서 밤을 새웠고, 탄핵 정국이 계속되면서 누군가는 햄버거 수십 개를 싸들고 키세스가 지키고 있는 한남동으로 향했다.

우선미 씨, 그는 국회의 정문을 지키다 헬기를 목격했고, 탄핵 정국에서 매일 목소리를 높였다.

깃발을 든 우선미씨

Q. 12월 3일, 국회로 향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A. 갑작스런 계엄 소식이 돌기 시작했죠. 그때 남천동 유튜브 방송을 보다가, 뭔가 심상치 않다 싶어서 집에서 여의도까지 20분 만에 달려갔어요. 도착하니 헬기가 막 떠오르고, 국회 정문 앞은 경찰로 가득했어요.


Q. 국회 앞에서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나요?

A. 정문 앞에 시민들이 모여 있었고, 경찰이 문을 막고 있었죠. 어떤 여성 국회의원이 막 문 앞까지 갔는데도 못 들어가고 밀려났어요. 저도 직접 목격했고요. 바로 옆에 있던 한 시민은 “이건 내란에 동조하는 거예요!”라고 경찰을 설득하더라고요. 정말 뜨거운 현장이었어요.


Q. 그날 밤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A. 거의 꼴딱 새웠어요. 정문만 지킨 게 아니라 국회 주변 문들마다 시민들이 포진해 있었어요. 해제 소식이 퍼졌지만, 군이 실제로 철수할 때까지 다들 긴장한 채로 자리를 지켰어요. 핸드폰 인터넷은 느려서 정보도 늦게 전달됐죠.

Q. 그 이후에도 계속 거리에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A. 네, 다음 날도, 그 주 토요일도, 그 후 매일 시위에 나갔어요. 남태령, 서울대, 안국동, 광화문까지 안 간 곳이 없죠. 서울대 시위 때는 특히 충격이 컸어요. 극우들의 욕설과 성희롱이 난무했고, 탈북민까지 동원된 걸 직접 목격했어요. 너무 분노했죠.


Q. 그렇게 매일을 시위로 채우셨군요. 지치는 순간은 없으셨나요?

A. 많았죠. 몸도 상하고, 감기도 걸렸고요. 그런데 그런 가운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해병대 부인 교사분은 50일 넘게 헌재 앞에서 밤샘을 하셨어요. 저는 오히려 새 발의 피라고 느껴졌어요.


Q. 4월 4일 헌재 판결 날, 어떤 기분이셨어요?

A. ‘이제 뭐하지?’ 그 생각부터 들었어요. 너무 바쁘고 치열하게 살다가 갑자기 일정이 사라지니까요. 3개월 넘게 매일 저녁 일과처럼 조선일보 폐간 시위, 안국동 시위, 노무현 재단에 가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이 루틴이었거든요. 그래도 아직 내란 종식은 안된 듯해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죠.


Q. 윤석열이 관저에서 나오지 않아 구속 수가가 늦어질 때, 한남동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요?

A. 눈도 많이 오고 비까지 왔던 날이었어요. 키세스 군단이 밤을 새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래도 이틀 연속으로 버티긴 힘들잖아요. 저도 몸이 좋진 않았지만 먼저 나간 분들을 생각해서 나갔죠.

Q. 그날을 위해 준비하신 게 많다던데요?

A. (웃음) 살림살이 싸들고 갔어요. 롯데리아에서 많은 양의 햄버거를 포장해갔고, 라면도 마트에서 싹쓸이했어요. 뜨거운 물 끓일 수 있게 버너, 가스, 냄비, 물통, 수저까지 다 챙겼죠. 이 물품들을 <서울의 소리> 쪽에 다 기부했고요.


Q. 이 모든 걸 한 이유가 궁금해요?

A. 뭐 대단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너무 추운 날, 밖에서 고생하는 사람들한테 따뜻한 거 하나라도 건네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작은 후원의 결과들이 같이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눔이 되어서 기뻤죠.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그날 정문에서 만난 시민들, 죽을 각오로 나왔던 분들이 잊혀지지 않아요. 어떤 할아버지는 “차라리 날 죽여라” 하셨고, 어떤 할머니는 손주에게 유언하고 나오셨대요. 우리가 상식으로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면 안 돼요. 그들은 비상식적인 정권에 맞선 사람들, 그 상식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거예요.


12월 3일 이후 우리의 겨울은 참 많이 추웠다. 하지만 우선미 씨처럼, 누군가는 조용히 자기 것을 내어놓고 누군가는 말없이 곁을 지켰다. 햄버거를 싸들고, 손난로를 챙겨온, 밤을 새우며 불을 지킨 손들. 그 모든 손끝에서 전해진 건 단순한 음식이나 물품이 아니라, 함께 버티자는 마음이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날 거기에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너무 춥고 외로워 보였기 때문에. 그 작은 따뜻함이 모여서 결국 그 겨울을 견디게 해줬다. 우선미 씨의 선행은 그런 마음을 상징한다. 그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한국 민주주의는 지켜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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