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을 만나다
광화문 집회 현장에서 이 ‘점심 뭐 먹지’ 깃발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의아했다. 평범한 일상의 고민처럼 보이는 문구가 왜 시위 현장에 걸려 있을까?
호기심에 깃발 주인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30대 IT 업계 종사자인 Linea(89년생)였다. 그는 원래 몇몇 지인들과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은 새로운 ‘목적’을 위해 모이고 있었다.
“깃발을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계엄’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고민했죠.”
Linea와 그의 친구들은 처음부터 적극적인 시위 참가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2024년 12월 7일, 여의도 집회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깃발이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우리만의 정체성이 필요했어요. 근데 너무 무거운 메시지는 싫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문득 ‘점심 뭐 먹지?’라는 말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농담처럼 시작된 깃발이 어느새 상징이 되었다.
과거 대학생 시절, Linea도 집회에 나간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학생회나 단체가 조직해서 움직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SNS가 정보를 빠르게 확산시키죠. 특정 단체를 따르는 게 아니라 각자가 판단해서 모이고, 행동해요.”
특히 실시간 정보 공유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장에서 ‘어디에 경찰 배치가 늘었다’거나 ‘이쪽 길이 막혔다’ 같은 정보가 빠르게 공유돼요. 예전처럼 ‘그냥 당하는’ 상황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대응이 가능하죠.”
또한 SNS를 통한 물품 지원 역시 과거와 다른 점이다.
“남태령 시위 때 ‘물이 부족하다’는 글이 올라오면, 사람들이 바로 물을 보내줬어요. 푸드트럭을 선결제하는 문화도 그렇게 시작된 거죠.”
Linea는 이러한 흐름이 시위의 지속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봤다. 시위에 참여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여성 참가자들의 비율이었다.
“노래를 부를 때 남성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더 커요. 숫자로 봐도 확실히 많고요.”
그렇다면 왜 2030 남성들은 비교적 소극적인 걸까?
“공감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으면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여요. 그리고 이기는 쪽에 붙으려는 심리도 있는 것 같고요.”
그는 본인이 ‘시각장애인’이라서 더 민감하게 느낀 부분도 있다고 했다.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위 때도 그런 걸 많이 봤어요. ‘출근길에 방해받았다’는 이유로 시위 자체를 적대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시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광화문과 여의도 집회에서는 ‘점심 뭐 먹지’ 외에도 다양한 깃발이 눈에 띄었다. ‘정대만’, ‘단두대’, ‘파란 하늘 지부’ 등, 마치 하나의 유행처럼 깃발이 등장하고 있었다.
“박근혜 탄핵 때 ‘배후설’이 돌면서, 개인이 깃발을 만들어 오는 문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실용적인 역할도 해요.”
깃발은 단순한 메시지 전달 수단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기능을 한다.
“집회 현장에서는 핸드폰도 잘 안 터질 때가 많아요. 그런데 ‘어디야?’ 했을 때, ‘점심 뭐 먹지 깃발 근처’라고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죠.”
이러한 실용성과 함께, 깃발 문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우리는 원래 맛집을 찾아다니던 사이였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Linea는 문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원래 3개월에 한 번 정도 모이는 맛집 탐방 친구들이었어요. IT랑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여기 맛있다더라’ 하고 가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시위에 나오게 될 줄은 몰랐죠.”
‘점심 뭐 먹지’라는 깃발은 단순한 농담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2030세대의 시위 문화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온다.
“오늘 집회 끝나고… 점심 뭐 먹죠?”
광화문, 여의도, 용산 탄핵 찬성 집회 현장에 나가면 각종 깃발이 눈에 띄었다. 내가 만난 ‘점심 뭐 먹지’도 있고, ‘고양이 사진 강도단’이라는 독특한 이름을 내건 모임 등 다양한 이름의 깃발이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참여를 넘어 창의적이고 유쾌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각자의 방식으로 연대와 변화를 외친 이들의 열정은 집회 현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시위 문화의 세대교체는 진행 중이다. 기꺼이 그들에게 공간과 자리를 내어주고 난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 참여해 돕고 싶다.
이 인터뷰는 이를 위한 작은 실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