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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쭌터뷰 04화

쭌터뷰 - 은평구 세월호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서윤

광장을 지킨 사람, 민주주의를 지탱한 삶

by 김 준 호

윤석열 파면이 이뤄졌지만 거리의 외침은 끝나지 않았다. 10여년 전 세월호를 가슴에 품은 시민들이 외친 것 처럼 이번 탄핵 국면에서 광화문에서, 이태원에서 외친 시민들의 진실과 정의는, 어느 한 시점의 분노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지독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은평구 세월호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서윤은 그 현장을 지켰다. 2025년 탄핵 정국 속에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그녀의 삶은, 시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진한 증언이다.

KakaoTalk_20250415_132324835.jpg 2025 광화문

Q. 2024년 말부터 올해 4월까지, 탄핵 정국을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A. 정말 말 그대로 ‘견뎠다’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12월 3일 이후로는 저뿐 아니라 많은 시민들이 일상에서 벗어나 있었죠.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리고, 낮에는 온몸이 긴장된 상태였어요. 헌재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회사일도, 집안일도, 모든 게 멈춘 듯한 시간이었어요. 윤석열 탄핵 인용 여부에 전국이 숨을 죽이고 있었잖아요. 저도 그 흐름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Q. 거의 매일 탄핵 집회에 참여하셨다고요. 그 현장은 어땠나요?

A. 처음에는 주말만 나갔어요. 그런데 판결이 미뤄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의 매일 광장에 나가게 됐죠. 날씨가 어떻든, 몸이 좀 안 좋아도 나갔어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할 이유가 분명했거든요. 혼자 있을 땐 불안하고 지치지만, 현장에 가면 오히려 힘이 나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살아 있음을 느꼈어요.


Q. 그런 현장 참여는 오랜 시간 이어온 활동이기도 하죠?

A. 네. 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해 왔어요. 당시 광화문에서 매주 피케팅을 했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누군가 저를 ‘광화문 선녀’라고 불렀어요. 이름이 아니라 그저 마음 하나로 서 있었던 시간들이었죠. 그 후 박주민 의원이 은평갑 지역구에서 세월호 특별위원회를 만들 때 합류했고, 지금까지 계속 활동 중입니다.


Q. 올해 세월호 추모 행사는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하셨다던데요.

A. 네, 너무 아쉬웠어요. 4월 16일을 앞두고는 헌재 판결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어요. 원래는 3월쯤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데, 판결이 미뤄지다 보니 정신없이 4월이 흘러가 버렸죠. 결국 문화제는 열지 못했고, 거리 현수막만 설치했습니다. 대신 6월쯤 소규모 간담회를 계획하고 있어요. 올해는 예외적인 해였지만, 기억을 멈추지 않기 위해 계속 이어갈 겁니다.


Q.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당일에도 현장에 계셨다고요.

A. 평일이었지만 반차를 내고 무조건 나갔어요. 위험하다는 얘기도 있었고,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조심하라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 자리에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태극기를 품고 나섰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이 자리에 있었다는 걸 제 자신에게 남기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행히도, 탄핵이 인용됐고, 광화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습니다.


Q. 그런 순간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힘이었을까요?

A. 네.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대신 지켜주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몫이 있는 거죠. 저는 거리에 나섰고, 누군가는 집에서, 일터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었을 거예요. 그 다양한 목소리와 역할이 모여서 결국 변화가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Q. ‘광장에 서지 않은 사람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존재’라는 말씀, 인상 깊었습니다.

A. 정말 그래요. 모두가 광장에 나올 수는 없잖아요.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들을 비난할 수 없고, 오히려 그분들의 책임감 역시 민주주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포용하는 민주주의, 다양한 국민이 함께하는 정치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Q.다른 인상 깊었던 순간도 있었나요?

A.박주민 의원의 버스킹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여러 사안들이 있었는데, 헌법 위반 사례가 많았고, 그래서 많이 답답했죠. 그런데 시사 콘서트에서 전문가들이 나와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주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어요.


Q.시민들과의 소통 방식으로서 의미가 있었겠네요.

A. 네, 맞아요. 평소에 궁금했던 점들이 자연스럽게 풀리면서, 소통이 이렇게도 가능하구나 싶었어요. 정치가 멀게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계기였죠.


Q. 마지막으로,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우리는 늘 정치에 실망하지만, 동시에 거기서 희망도 찾아요. 변화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세월호를 기억하고, 촛불을 들었던 그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KakaoTalk_20250415_132302320.jpg 2014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

이서윤 위원장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활동기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이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 있는 헌법’으로 존재했던 시간의 기록이다. 세월호를 가슴에 품은 한 사람의 분투는, 어느새 광장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깊은 뿌리로 남았다. 그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기억하고, 질문하고, 다시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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