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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만난 재건축의 명암

책익는 내숲길

by 김 준 호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지어진 지 40년 가까운 이곳은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 새기고 있다. 벽면에는 금이 가고, 배관은 잦은 누수로 속을 썩인다. 비좁은 주차장에서는 종종 이웃 간의 언성이 오간다. 오래된 풍경 속에 불편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나는 재건축 설명회장을 찾았다.


“이제는 재건축을 해야지요.”

회의장 한쪽에서 들려온 단호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낡은 집을 새롭게 바꾸자는 데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KakaoTalk_20230317_150000395_01.jpg 신사1구역 제건축 현장


재건축은 단지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 운영되는 조합도 견고해야 한다. 절차 또한 만만치 않다. 주민 동의를 모아 동의서를 신청하고,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데만 최소 1년 반. 이후 정비구역 지정, 추진위원회 결성, 조합 설립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빠르면 7~8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는 말에, 설명회장은 순간 한숨 섞인 정적으로 잠긴다.


“새 집에 들어가려면 애들이 대학 갈 무렵이겠네요.”

누군가의 말에 묘한 웃음이 퍼졌지만, 모두가 마음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설명회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는 단연 분담금이었다.

“34평 기준, 몇 억 원 정도는 각오하셔야 합니다.”

그 순간 공기가 묵직해졌다. 은퇴한 노부부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본다.


“우린 그 돈을 어디서 구하나…”

반면 젊은 세대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다. “그래도 신축으로 바뀌면 최소 두 배는 하겠죠.”

재건축과 재개발은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사다리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된다. 이곳의 사업성은 ‘중간 수준’이라는 평가다. 지형 단차가 커 공사비는 늘고, 공원과 도로로 기부채납해야 하는 면적도 작지 않다.


그러나 놓쳐선 안 될 기회도 있다. 주변 지역은 이미 재개발로 들썩이고 있다. 흐름을 함께 타지 않으면, 우리만 뒤처진 낡은 단지가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학세권·숲세권이라는 입지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개발이 마무리되면 인근 신축 아파트처럼 시세도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숲길 골목 끝, 신사1구역도 곧 준공을 앞두고 있다. 11월이면 공사가 마무리된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예전 그 골목 어귀에서 사진을 찍고, 작은 책을 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의 풍경은 이렇게 바뀌어 간다.

도시는 언젠가 낡는다. 집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주택은 결국 새 옷을 입게 된다. 그러나 새로움의 이름으로 골목을 지우고, 추억을 밀어내는 것이 재건축의 숙명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할까.


언젠가 이 아파트도 다시 서게 될 것이다. 말끔한 외벽과 넓은 주차장, 어린이 놀이터가 조성된 새 단지. 하지만 그 골목을 따라 쌓였던 이웃들의 웃음과 오래된 이야기는 어디로 갈까.


재건축과 재개발의 명암 속에서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벽돌과 철근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살아온 시간과 관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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