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은평 보건소에서 알코올 의존증을 치유하다

책 읽는 내숲길

by 김 준 호

나는 작은 골목에서 내 삶을 바꾸는 정보를 발견했다.


동네 주민센터에서 우연히 펼쳐 본 ‘은평 소식지’에는 다양한 지역 소식이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은평구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건강 프로그램들이었다. 그 정보를 통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


"내가 정말 알코올 의존증일까?"


스스로에게 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결국 나는 은평 보건소 불광지소에서 진행하는 ‘알코올 의존 극복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기억이 끊긴 밤, 그리고 깨달음


2024년 11월, 결혼 13주년을 맞아 아내와 함께 포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바비큐가 익어가고, 분위기는 점점 따뜻해졌다. 평소처럼 술을 마셨다. 여행을 오면 기분이 들떠 막걸리 두 병쯤은 가볍게 마시곤 했다. 그런데 포천 막걸리는 서울에서 마시던 것보다 컸다. 술병이 비어갈수록 기분도 더 좋아졌다.

그러다 기억이 끊겼다.


241110포천여행.jpg 필름이 끊긴 필자의 모습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문 너머로 아내의 깊은 한숨이 들렸다.


"당신, 알코올 중독 치료 받아보는 게 어때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지만 그 말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용히 휴대폰을 열어 ‘알코올 중독’을 검색했다.


‘반복적인 음주로 인해 가족과 갈등을 겪거나,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고 느끼는 상태.’


짧은 정의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 문장 안에 내가 있었다.

처음 보건소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느 순간부터 술이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상담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셨다면, 변화의 시작은 이미 반쯤 온 겁니다."


나는 술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20대에는 친구들과, 30~40대에는 직장 회식과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으로. 그것이 ‘남자답다’고 배웠고, 어른이라면 당연한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나를 천천히 병들게 하고 있었다.


"단주와 절주의 차이는 뭘까요?"


"단주는 술을 완전히 끊는 것이고, 절주는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죠."


나는 결심했다. 조금씩 줄여보자. 술 대신 물을 마시며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나에게 두 명의 멘토가 배정되었다. 한 사람은 20년째 금주 중인 선배였고, 다른 한 명은 8년째 절주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과 상담을 받으며 나는 ‘고도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는 개념을 접했다.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지만, 알코올 의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 나는 그 유형에 속했다. 일도 하고, 가족도 지키고 있지만, 술 없이는 일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사람.


한 달에 한 번씩 AA(Alcoholics Anonymous) 모임에도 참석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알코올 의존증은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절주에 성공했다. 이제 술을 마셔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더 이상 술을 갈망하지 않는다.


완전히 술과 결별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술이 나를 지배하지 않는다.


체중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적은 69kg까지 줄었고, 저녁이 되면 술이 아닌 가벼운 식사와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온전한 나 자신과 마주한다.


2.JPG 은평구 소식지


이 모든 변화가 시작된 곳은 작은 골목 속 보건소였다. 우연히 펼쳐 본 ‘은평 소식지’ 한 장이 내 삶을 바꾸었다.


2025년, 가장 큰 축복을 만났다.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6화나폴리의 골목에서 짝퉁 피자집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