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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골목길에서 피어나는
‘정치의식’

by 김 준 호

골목길은 작고 평범한 공간이다. 아침이면 길 가 빵집에서 빵 굽는 냄새가 은은히 퍼지고, 오후에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곳. 특별할 것 없어보이는 각자 일상의 무대다. 하지만 작은 대화 하나로 골목 주민이 한 마음으로 뜨겁게 타오르곤 한다.


“시위에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요?”


작은 카페,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손에 쥔 그녀가 말을 꺼내자, 카페 사장은 커피 머신에서 눈을 떼고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 눈길에는 호기심도, 염려도, 그리고 작은 응원도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사장은 카운터 아래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이거 핫팩이에요. 날씨가 추울 텐데요. 제가 오늘은 못 가니까, 이거 거기 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세요. 그리고 제 몫까지 힘껏 외쳐 주세요.”


그녀는 웃으며 상자를 받았다. 망설이던 마음이었는데 용기를 얻었다. 손난로를 품에 안은 그녀는 카페 문을 열고 광장으로 나섰다. 바람이 싸늘하게 불었지만, 마음은 뜨거웠다.


그녀는 내 아내이다. 그녀는 매주 토요일에 마다 열리는 탄핵지지 집회 소식을 내게 늘 전하고 형편 닿는대로 집회에 나간다. 나와 함께 가는 날에는 목소리에 힘이 더 난다. 어느 날 아내는 집회에서 받은 종이 손팻말을 사무실 창문에 부착했다. 작은 골목길에서 비상계엄을 반대하는 문구가 쓰여진 손팻말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토요일 광화문 광장에서 아내는 골목길에서 가끔 마주치던 통장을 만났다. 매일 아침 주민들에게 안부를 묻고 민원을 처리하던 그녀가 이제는 주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창문에 붙이신 손팻말 보면 힐링이 돼요.”


KakaoTalk_20250122_150447123_01.jpg 1인1책 사무실 창문에 붙인 손팻말


평소 고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던 통장은 골목길에서 본 1인1책 사무실 창문의 손팻말을 보며 광장으로 나갈 용기가 더 생겼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 손팻말을 붙이는 골목 골목의 작은 불씨들이 광화문 광장에 뜨거운 열기로 모인 것이다.


은평구 응암역 너른마당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주민들이 모여 작은 집회를 열었다. 손난로를 쥔 사람들, 손팻말을 든 사람들, 그리고 그저 두 손을 모으고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 그날의 추위는 유난히 매서웠지만, 그들의 눈빛은 뜨겁게 타올랐다.


“윤석열을 탄핵하라”


각자의 목 소리가 한데 모여 하나의 물결이 되었다.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분노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에서 비롯된 절박함이었고, 다음 세대를 위한 희망이었다.


집회가 끝난 후, 사람들은 한 줄로 행진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스피커를 들고, 누군가는 이웃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라는 구호가 은평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발걸음은 녹번역을 지나 광화문까지 이어졌다.

473674055_18367406176189906_5886156030066115565_n.jpg 응암역에서 녹번역까지 행진중인 은평주민들. 신현일 의원 제공


나 역시 업무를 마치고 광화문에 도착하였다. 광화문 잔디광장은 이미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깃발들, 직접 꾸며 만든 손팻말들이 큰 바다의 물결처럼 파도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토론에 참여하고 있는 무리에 들어가 보았다.


“질문 있습니다! 12.3 비상계엄 이후 한시도 마음 편한적이 없었어요. 탄핵은 정말 이뤄질 수 있나요?”


한 중년 여성이 용기를 내어 마이크를 잡고 물었고,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성의있는 답변이 이어졌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 의견으로 나오면 광장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날 밤, 그곳에서 사람들은 알았다. 정치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민주주의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실천이라는 것을.

20250111_155330.jpg 은평 민주 닭띠 모임 멤버들

닭띠 친구들도 그곳에 있었다. 은평구에서 동갑내기 친구들끼리 작은 모임으로 시작했던 그들은 이제 매주 광장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한 친구가 떡꼬치를 건네주었다. 광화문 역 근처에 해외동포를 비롯해 각계 사람들이 탄핵 가결에 동참하면서 후원한 푸드 트럭들이 줄지어 있는데, 거기에서 가져온 음식이었다. 이렇게 삼삼오오 모인 마음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골목길에서도 작은 대화가 따뜻한 응원을 힘입어 광장으로 나오는 불씨가 되었듯, 응암역 너른마당에서, 녹번역에서, 광화문에서 사람들은 하나둘 손을 맞잡았다.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거대한 행진을 이루었다.

오늘날의 골목길은 단지 사람들이 지나가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각성과 실천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함께 목소리를 내며, 세상을 바꿔나가는 공간. 작은 골목에서 피어난 정치의식은 점점 더 큰 울림이 되어,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쓰고 있다.



20250111_161700.jpg 해외동포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후원으로 이뤄진 푸드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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