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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만나는 [주민야독]

by 김 준 호

한 달에 한 번 강제로(?)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평소 책을 좋아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책 앞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한 기회가 있다. 바로 내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 [주민야독]이다. 이 모임 덕분에 나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책과 함께 멈춰 서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독서토론을 마친후


[주민야독]은 서울 은평갑 지역구의 박주민 의원실, 한 당원의 제안으로 시작한 독서모임이다. 매번 지정한 책을 가지고 모여 격의 없는 난상 토론을 펼치며, 책이 지닌 다양한 가치를 재발견한다.


최근 [주민야독]에서 함께 읽은 책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이 작품은 한강이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에 이어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인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항쟁 속 피해자가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비극을 개인의 삶 속에서 깊이 있게 조명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전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강 작가의 문체는 언제나 깊은 여운을 남기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큰 감정적 부담을 준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반복되는 시국에서 이런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마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역사적 비극을 문학으로 다시 만나는 일은 묵직한 무게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나는 끝까지 책을 읽기 위해 애썼다. 몇 년 전 『채식주의자』로 처음 접했던 한강 작가의 문체가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문학을 통해 역사와 마주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제주 4.3 사건을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그 비극 속에서 살아가던 개인의 감정과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를 그 시대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삶과 연결된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것이 문학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본다. 문학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지금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와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사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몇 년 전 한강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으며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녀의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수상 경력은 분명 작가와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지만, 그 권위가 독자를 압도하게 되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쳐버릴 수 있다. 책이 가진 본질적 메시지보다는 ‘노벨상을 받은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읽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한강은 비극적인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만 접근하지 않고, 인간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거대한 비극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의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작가의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 아니라, 깊이 있는 인간적 탐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독서모임에서 각자가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주민야독]은 단순히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책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특히 최근 탄핵 시위를 함께하며 거리에서 외쳤던 사람들과 책을 읽으며 나눈 대화는 더 깊은 공감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번 독서모임을 통해 ‘문학이 주는 힘’을 다시금 느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책은 우리가 시대를 돌아보게 하고, 삶의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드는 가장 유력한 도구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우리가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문학은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불러오고, 그것을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 속에 새긴다. 내 주변에 [주민야독]이라는 소중한 독서모임이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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