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작가, 내가 강연 마치고 신사2동에 잠깐 들르려고 해."
고정욱 작가님이 전해온 메시지였다. 지난 2006년 처음 만나 멘토가 되어 주신 분. 한 살 때 소아마비를 겪어 1급 지체장애인이 되었지만, 끊임없이 문학 활동을 이어가며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같은 작품으로 장애 동화의 새 지평을 연 선구자다.
그와 나는 18년간 인연을 맺어왔고, 몇 년 전 구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구청 홍보과에서 일하며 보도자료와 기고문 등을 작성하고 있었다. 구청에서는 직원들이 부서를 자주 옮기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외부에서 영입된 임기제 6급 공무원으로 홍보과에 채용되었다.
임기제 6급 공무원은 고위직에 속하는데, 일반 공무원이 9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려면 20년가량의 경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외부에서 바로 6급으로 채용되었기 때문에 홍보과에서는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팀장은 내가 팀장과 동급으로 입사한 것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홍보업무를 하다 보니, 문화 콘텐츠와 지역이 결합되면 새로운 시너지가 생겨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를 연재 중인 고정욱 작가님이 떠올랐다. 아직 고향이 정해지지 않은 재석이의 이사지를 은평으로 정하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작가님께 연락을 드렸고, 우리는 재석이네 가족이 은평으로 이사 오는 설정에 합의했다.
문제는 내부에서 생겼다. 팀장은 이 프로젝트가 홍보과의 일이 아니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주임님,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죠? 공무원들은 이런 거 제일 싫어해요. 이런 식으로 하면 공무원 생활 힘들 거예요.”
팀장은 이 프로젝트 때문에 내 공무원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걸 대놓고 암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칠한 재석이’의 은평 이사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추진되었다. 시리즈의 8번째 책 <까칠한 재석이가 소리쳤다>에서는 재석이네 가족이 은평구 불광천 근처로 이사를 오고, 진관사 같은 은평의 명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는 10권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재석이네 가족은 은평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재석이네는 영원히 은평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역과 문화 콘텐츠가 결합하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그 이야기는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외지인들은 그 이야기에 끌려 그곳을 찾아오게 된다. 내가 추진한 프로젝트도 그런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가 그 좋은 예다. 방천시장 인근의 작은 골목이었던 이곳은 한국의 전설적인 가수 김광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고, 그의 음악과 생애를 주제로 한 벽화와 조형물들이 설치되었다. 그 후 이 골목은 다양한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는 장소로 발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구의 독특한 문화 명소가 되었다.
‘까칠한 재석이’의 은평 이사 프로젝트도 이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이해하고 관련 이벤트를 열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나의 공무원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팀장은 이 일로 인해 더욱 나를 불편하게 대했고, 결국 나는 2년 4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일반인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