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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을 사랑해내고야 말았다

스스로 자책했던 I

by 다소다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외향적인 사람

내향적인 사람


재미있게 표현하면

외향적인 사람의 특징은

'밖에서 에너지를 얻고

집에서 에너지를 쓴다'


내향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집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밖에서 에너지를 쓴다'


사회(밖)에서의 삶에 대해

이 특성을 비유해 보면,

외향이 자가발전기라면

내향은 사용기한이 정해진 건전지랄까


나는 건전지다

그것도 사용기한이 아주 짧은.



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것이 사회에서 원하는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래서인지 내면의 행복을

원동력으로 하는 나의 세상은

항상 자책하는 삶 그 자체였다.

밖에서의 내 사용 횟수는

정해져 있는데

사회의 기준은 너무 높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두루두루 지냈으나

내가 원하는 것만큼의 위로나

만족은 이뤄지지 않았다.

소수의 친구들만이

나와 함께 했던 것이

그 이유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외향적인 사람이기 위해

애써 학습한 인간관계 방법도

활용해 보았으나 ,

활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지침, 힘듦 그리고

공허한 영혼의 갈증만이 남곤 했다.


왜 나는 외향적이지 못할까?

스스로 자책하고 상처 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향적인 게 나쁜 걸까?'

사회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걸까?


답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내향적이면 좀 어떠하랴?

누가 뭐라든 결국 내 인생이었다.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것은 나의 삶,

나의 내면에는 생각의 우주로 가득 차 있다.


외향적인 사람은 그 자체로 삶이며

내향적인 사람도 그 자체로 삶이다.


내향의 삶 그 자체로 인정하고 난 뒤

난 나로서 존재했다.

나 자신을 탐구하고 휴식하며

안정감을 느꼈다.

책을 읽고 사색, 명상하며

행복감을 느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흥미를 느꼈고

역사를 보고

가슴으로 울기도 했다.

사회의 옷에는 맞지 않았지만

내 마음의 옷은 꼭 맞았다.


자신이 내향적이라고 자책하지 말자

온전히 살아내면

그것도 인생 아니겠는가?


휴직을 결심하고 나서부터 든 생각은

내가 만족하는 마음의 옷을 입고

내향 그 자체를 누릴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때 비로소 나는 나의 내향을

사랑해 내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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