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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다 Sep 02. 2023

예수의 삶을 산 사람들

故이태석 신부, 故박누가 선교사님에 대해.

 종교인으로서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이태석 신부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그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아픈 이들을 살리는 종교인으로, 울지 마 톤즈로 많이 알려져 있다. 나는 이태석 신부의 선행과 봉사를 보며, 어떻게 저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휩싸이곤 했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故박누가 선생님에 대해 유튜브 영상을 시청할 수 있었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이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


나는 종교인이었다. 그러나, 종교인에 회한을 느껴 무교로 전향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을 신의 뜻이라며 설교하는 종교인들, 돈 벌기에만 급급한 종교 지도자들, 나는 그들이 싫었다. 신이라는 존재 자체는 믿을 수 있겠으나, 도통 신의 말을 전한다는 자들은 모두 돈, 명예, 지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약한 자들의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무리들. 나는 그렇게 종교인들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종교를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내 인식에 변화를 준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TV에서 나오는 이태석 신부의 선행과 봉사를 보게 된 것이다. 자신의 죽어갈 때도 아프리카의 선행과 봉사를 이어가던 사람.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더 베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을까? 이태석 신부는 그들을 위한 질문들로 여생을 바쳤다. 남들이 뭐라 해도, 가족들이 만류해도 그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아무런 대가도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내 인식에 변화를 준 두 번째 사건은, 故박누가 선교사님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면 서다. 30여 년 동안 필리핀 오지를 돌아다니며 의술을 펼치고, 어려운 이들을 도운 종교인. 수십 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한 사람이라도 구하고자 일생을 바쳤다. 심지어 자신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치료받지 못해 죽어 갈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故이태석 신부와 꼭 닮아 있었다.


이태석 신부와 故박누가 선교사는 내가 아는 종교인과는 너무 달랐다. 돈, 명예, 지위 따위의 것들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예수께서 "행하라"라는 말대로 일생을 살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신께 감사했고, 부여된 재능을 사랑으로 베풀었다. 그러고 나서 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예수와 같은 삶을 산 그들이야 말로 나에겐 예수였다.


그들도 인간이기에 다른 종교인들처럼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욕심 낼법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고 베풀고 봉사하는데 삶을 보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런 행위를 했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이 예수이기에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으리라. 


나는 예수처럼 살 순 없겠으나, 예수처럼 살아가는 종교인들의 숭고한 가치를 본받고 싶다. 따라서, 조금이라도 선행을 베푸리라 생각되는 밤이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려 했으나 오히려 생각이 많아진다. 선행, 봉사의 가치는 이해하기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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