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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02년 6월은 우리에게
어떤 해였을까?

대한민국 전체가 붉은 악마로 뒤덮였던 날들을 사이로 홈쇼핑이 시작되던 해

by 명랑처자
25년 2월 15일 새벽 6시

oo 홈쇼핑이 첫 방송을 하고 상담원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아갈 때쯤 미싱을 돌리는 공장처럼 상담원들은 쉬지도 못하고 전광판의 대기 숫자들을 소화해 내기 위해 전투 중이었다. 당연히 급한 볼 일도 그때 우리들은 메신저에 이름을 남긴 후 순서대로 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이러다 병이 생기는 거 아닌 지 염려됐다. 특히 상품설명부터 상품선택 그리고 배송지 확인과 결제까지 모두 상담원들이 한콜로 소화해야 하기에 어떤 때에는 본인 순서여도 콜이 끝나지 않아 참으면서 응대를 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200 콜이상 하게 되면 우린 '입에서 단내가 난다'라고 말했었다.


매일 매 순간도 너무 힘든 야간업무였지만 교통비를 지원해 주기에 힘들어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응원하러 갔지만 우리도 응원하고 싶었지만 체력이 안되고, 에너지는 바닥이니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요령 껏 해야 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편성표가 짜이면 팀장들조차 목에서 피 나올 정도로 큰 목소리로 전광판의 숫자들을 외치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요령껏은 '멍멍이에게 주기'도 힘들었기에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oo홈쇼핑의 표지모델 때문인 지 아니면 홈쇼핑의 최초여서 그런 건지 홈쇼핑은 역시 oo 홈쇼핑이라며 상담원들에게 각 팀장들은 자신감을 갖게 만들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수당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직도 아니고 영원히 파견직이고, 갑자기 콜센터 위치 또한 현재도 회사가 밀집되어 있는 구로디지털단지역 근처로 옮기게 됐다. 그러자 4년 넘게 다닌 직장이지만 점점 마음이 불편 해 지기 시작하고, 일은 너~무 하기 싫었고, 회사에 대한 아주 작은 정 조차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 돼버리니 서랍 속의 사직서를 어느새 내밀고 있었다.



-제1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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