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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번개팅'을 아시나요?

옛날옛날에 천리안 혹은 하이텔 시절 많이 했던 급만남

by 명랑처자


얼마 전부터 일자리 검색을 했다. 그런데 '정부 24'에서도 이런 걸 하는 게 있는 건지는 이번에 알았다. 여성복지센터와 구청과도 연결이 되어 있어서 편리하지만 나는 사회복지 쪽으로는 무경력에 '위치와 조건'을 알아보면, 일자리는 한 군데뿐이었다. 당연히 연락은 안 왔다. 하지만 여성복지센터에서는 얼마 전에 전화가 왔는데 "면허만 있으면 당장 가능한데 면허 따고 다시 구직활동 하시면 어떨까요?"라고 말씀하셨다. 아동복지센터 쪽은 거의 없고, 만약 면허가 없는 상태로는 '가정요양원' 뿐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도 고민 중이다. 만약 운이 좋아서 규모가 큰 '요양병원'에서 연락을 준다면 좋을 것 같은데 병원도 자리가 거의 안 난다고 한다. 일단 '배움 카드'도 이 김에 사용하고 싶고, 나중을 위해 '바리스타'도 따고 싶은데 어떻게 사용한 지 알아봐야겠다. 콜센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는데... 계속 고민 중이다. 고민하다가 '급'으로 생각 난 옛날이야기 하나 풀어볼 까 한다.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게 된 나의 절친의 집은 우리 집에서 뛰면 1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비록 집에 '컴퓨터'가 없었어도 매일 '천리안 혹은 하이텔'을 할 수 있었다. 요즘 친구들은 모를 것 같지만 간단히 설명드리면 그냥 단순하게 '채팅도, 간단한 단순오락도, 전자사서함 등등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싶다. 조금 더 생각하니 드라마 '응답하라'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위와 같은 '천리안과 하이텔' 요놈들을 이용해서 채팅을 하다가 최대한 빠른 급만남을 하는 게 '번개팅'이라는 거다. 생각해 보니 그다지 특별하게 지금과 다른 점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굳이 기억을 떠올려 봐도 말이다. 함께 '번개팅'을 하려고 베프를 꼬시기도 했었는데 베프는 워낙 '귀찮은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라서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떠올려보니 이 시기에 그다지 심심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아무래도 '풍요 속 빈곤'이라고 난 곁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래도 그리웠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대가족인데도 집에서 기댈 사람이 없었다' 그다지 내 거라고 할 수 있는 물건들도 없었다. 공간마저 말이다.' 그래서 베프네 집에서 거의 생활을 했었나 보다.




나의 기억에는 참 많은 사람들을 '번개팅'으로 만났다. '수원에 사는 연하동생'부터 '서울음대 다니던 그 시절 오빠'까지 이름은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식의 수식어를 붙이면 살짝씩 기억은 난다. '연하동생이랑은 놀이동산을 같이 갔던 기억이 나고, 음대오빠랑은 그냥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대학교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과 비교했을 때 뭐 별 다른 건 없다. 음... '소개팅'과 비슷한데 천리안 혹은 하이텔'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당일에 만나는 거다. 미룰 수도 있지만 대부분 갑자기 빨리 만나는 경우가 더 비일비재했다. 나는 돈이 없었던 시절이니까 대부분 상대방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나도 어떻게든 마련한 돈으로 밥값을 냈지만, 그 마저도 나눠냈던 거라 만남 자체가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번개팅'으로의 만남이 질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냥 안 했다.



'여의도에 사는 친구' 같은 경우에는 나의 베프랑도 친구가 되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나이를 먹을수록 배울 점이 많았던 친구로 기억한다. 아무튼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다. 나의 '번개팅'은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만남 중 하나라 묻어 놨다. 그런데 이제 보내줘야 할 추억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을 기점으로 삭제하려고 한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던 '번개팅'에 대한 추억 폴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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