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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Dec 19. 2018

남산풍경

일하는 마음

  충무로에 자리한 회사에서는 서울타워가 잘 보인다. 나는 이따금 일에 지칠 때면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 끝 먼지 낀 유리창 앞에 서서 타워를 바라본다. 그 것이 나에게 더이상 ‘데이트’나 ‘야경’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지 못하고 다만 일상의 병풍이라고 여겨질 때, 겨울 오후는 가만히 나를 찾아온다.   

  노을 밑으로 까맣게 타들어가는 산의 능선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노라면 산 아래는 지붕들이 논밭처럼 펼쳐졌다. 보나마나 커피점이거나, 밥집이거나, 인쇄소일 그 지붕들은 하나같이 늙고 낡았다. 나는 타워가 생각보다 낮지 않은가, 그리고 저 지붕은 은근히 높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는 참 작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타워를 바라보며 사회 초년생으로 보낸 나의 지난 8개월을 돌아봤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지, 내가 어떤 꿈을 꾸는지에 대해 나만큼의 관심은 없었다. 다만 밥을 사주거나 얻어먹고, 명함을 받아 지갑에 고이 넣고 다음에 만날 약속을 잡았을 뿐이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보이는 삶의 매무새에 크게 절망하거나 자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내 속의 열망을 살피고 그 불을 묵묵하게 지켜내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한참 타워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았던 풍경이 보인다. 가령 내 뒤로 철컥철컥 박자를 맞추며 돌아가는 인쇄기들의 노동요와 볼품없는 벤자민 화분이 만드는 그림자 그리고 그 풍경의 일부인 나, 소영 소룡 이소룡. 나는 ‘저 소리에 대해서 그리고 이 풍경에 대해서 무엇보다 내 느낌에 대해서 쓰지 않을 거야. 그냥 갖고 있을 거야.’라고 다짐하며 돌아선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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